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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군 면제? “너 뭐 돼?”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기원전 221년 중국 첫 통일왕조 진(秦)이 통일 직후 먼저 실시한 것 중 하나는 도량형 통일이었다. 길이의 도(度), 부피의 량(量), 무게의 형(衡)은 공정의 상징이었다. 세제(稅制)의 근본이 되는 단위를 통일하지 못하면 각종 민란의 원인이 될 게 뻔했다. 공정에 민감한 건 어느 시대나 비슷하다. 2천 년 뒤인 1789년 프랑스혁명 후에도 국민들은 도량형 통일을 가장 반겼다고 한다. 미터법을 제안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도량형의 난맥상이 정신을 혼란시키며 상거래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준은 특혜 여지를 없앤다. 예외 없이 군 복무를 했던 과거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프로 스포츠 스타들이 군에 입대했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4할 타자 테드 윌리암스를 비롯해 숱한 선수들이 이역만리 한반도에서 터진 6·25전쟁에 참전했고 제대 후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다. 강군의 전력을 유지한 배경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상 획득 등으로 군 복무를 면제받는 건 합법이다. 월드컵 4강 진출이 군 면제 혜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드디어 정부가 체육·예술 요원을 포함하는 병역 특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기식 병무청장은 병역 특례가 도입 당시와 비교해 여러 측면에서 변화가 있었다며 개편 방침을 밝혔다. 1973년 대한민국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때 시행된 제도였다. 50년이 지난 이상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스포츠의 경우 일부 경기 참여로 혜택을 챙기기도 해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던 터였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 성적이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국제 스포츠 대회 입상이 국위 선양과 직결되는 시대는 지났다. 대한민국의 존재감은 충분하다. 메달 하나 덜 따낸다고 존재감이 옅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병역 자원 추이가 염려스러운 지경이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 명. 남녀를 절반으로 나눈다면 20년 뒤 군 복무 가능 자원은 10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군대에 가면 능력이 사장될지 모른다는 불안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 우리 군이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하면 된다. 군 복무 이후 기량이 늘어난 이들도 적잖다. 뜻밖의 재능을 찾아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입대 연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계적 팬덤의 BTS 멤버들도 입대했다. 국위 선양에 이보다 더 우위에 있을 만한 이가 있나 되물어도 이상할 게 없다. 가장 먼저 입대한 멤버 '진'은 다음 달 제대한다. 복무 기간도 18개월로 길다고 보기 어렵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국제 대회 84연승의 일본 유도 간판 스타 다무라 료코(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이승엽과 함께 활약한 다니 요시토모의 부인, 남편의 성을 따라 현재 이름은 다니 료코)를 꺾고, '일본이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만 딴다면 그건 다무라 료코일 것'이라 했던 일본 언론을 합죽이로 만든 17세의 북한 계순희는 인터뷰에서 이 세상에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0대 소년이 무적의 일본 선수를 꺾고 드라마 같은 승리로 금메달을 따 국민적 감동을 안겼을지라도 평등한 군역이 실현돼야 할 때가 왔다. 영원불변한 군역 기준은 없다. 북한과 이마를 맞대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군 면제를 바란다면 요즘 MZ 세대의 표현 "너, 뭐 돼?"에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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