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의료대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던 5월이다. 의대 증원에 따른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으로 의료 공백이 발생한 지 세 달째. 다행히 우려했던 대란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란'이 일어날 걸 알면서도 치킨 게임만 하고 있는 의료계와 정부가 무섭기까지하다. 이달 중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예고돼 있어 그 결과에 따른 '5월 대란'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필요성은 일리 있다. 투명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수치 근거와 추진 과정이 문제다. 의료계도 증원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2천명 증원 근거를 모르겠다며 같이 따져보고 적정한 규모와 시기를 정하자는 것이니 이 또한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에 대한 정부의 계획도 확인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양쪽은 서로 상대에 귀 닫고 자기주장만 하고 있으니 무모하고 무한 동어반복만 하는 진흙탕 싸움이 돼버렸다.
그러던 사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법원의 결정, 대입전형 시행계획 승인 및 대학 수시모집요강이 나오는 5월이 지나면 파국이다. 전공의 3천명도 20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자격 미달로 내년도 필수의료 분야 등의 전문의가 될 수 없다. 병원들도 전공의 이탈 등 의료진 부족에 따른 적자로 무너지기 직전이다. 이는 결국 의료 서비스 저하든 치료비 상승이든 환자의 피해, 손해로 돌아간다.
그런데 양쪽 모두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는 게 문제다. 법원의 집행정지 각하 결정으로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 의료계는 벼랑 끝 투쟁에 돌입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반대로 법원이 받아들이면 정부의 올해 증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동력을 상실, 이후 증원 계획과 추진 일정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건 당사자 간의 해결이다. 증원을 하든 안 하든 직접 당사자들의 대화, 소통을 통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후유증도 적다. 그런데 의정 간 만남도 대화도 소통도 없다. 정부를 못 믿어 대정부 대화 소통창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도 의료계는 참여하지 않는다. 위원회, 협의체 더 만든다고 소통이 되고 사태 해결이 될 리 만무하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의 적극적인 소통 행보가 시작됐다. 대통령 취임 후 2년 만에 처음으로 야당 대표와 회동도 하고, 지난 2022년 8월 취임 100일 회견 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도 하기로 했다. 의료계와도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좋은 타이밍이다. 기왕이면 9일 윤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때 모두발언을 통해 또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안하면 자연스러울 거 같다.
생중계로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주재하고 해당 정부 부처, 전공의·의대생·의대교수·의사협회 등 의료계 각 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긴급 토론 형태가 돼야 한다. 누가 맞고 틀린지, 누가 승자고 패자인지 가리자는 게 아니라 정부가 고집하는 2천명 증원 정책의 근거와 현실성이 명확한지, 반대하는 의료계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는지 다 꺼내놓고 규모와 시기, 분야, 방법 등을 논하고 정하는 자리여야 한다.
단 전공의·의대생 복귀가 전제돼야 한다. 결과와 상관 없이 양쪽 모두 깨끗하게 받아들이고 화해하고 의료 사태를 곧바로 정상화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 잘못 알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쿨하게 인정하고 수정, 조정해야 한다. 고수하던 주장을 꺾는다고 욕하거나 비난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박수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양쪽 모두에 퇴로나 주장 철회 명분을 만들어 줄 필요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사와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수모도 겪었지만 지금도 '노무현'하면 떠오르는 명장면, 대표적인 모습으로 깊이 남아있다. 윤 대통령도 진짜 승부사이고, 의대 증원 근거가 분명하다면 지금이라도 직접 만나야 한다. 현재 이 문제만큼 급하고 중요한 현안도 없다.
소신도 좋고 원칙도 좋다. 그렇다고 국민보다 앞설 순 없다. 국민의 생명보다 중할 순 없다. 정부든, 의료계든, 대통령이든 중심엔 '국민'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위해 더는 의료 공백이 이어져선 안 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일 수 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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