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모두 까기' 원조를 만나다

우신예찬
에라스무스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대항해 시대. 인쇄술의 보급으로 지식 전파가 가능했던 15세기 중엽 이후, 인류의 보편적 질서가 흔들린다. 종교의 중재 없이 신을 인간에게 되돌려주려는 시도, 즉 인문주의는 마르틴 루터가 아흔다섯 개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쇠망치로 때려 박았을 때 정점에 올랐고, 그 일은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문학적·인문주의적 포장술을 빌려 종교개혁의 폭발물을 수도원과 영주의 궁정에 밀반입하면서 벌어졌다.

에라스무스의 반짝거리는 정신 유희가 살아 숨쉬는 '우신예찬'은 당대의 권력자를 향한 풍자문이다. 에라스무스는 검열과 종교재판의 시대를 '어리석은 신'의 입을 빌려 반어와 풍자로 돌파하는데 1508년 토마스 무어에게 보낸 서문에서 "나는 실명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문체도 눅였기에 내 의도가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오직 즐거움을 주는 데 있음을 알 것"이라고 밝힌다.

이런 즐거움을 준 자신은 찬사 받아 마땅하다고 추켜세우면서 (무지와 태만과 경솔과 망각과 아부 등을 시종으로 삼아) 시작하는 '우신예찬'은 적절한 풍자와 비유가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예컨대 결혼은 경솔에서 비롯되고 출산은 망각이 능력을 발휘한(출산의 아픔을 잊은) 결과라는 것이다. 같은 비판이라도 현자 입에서 나왔다면 목숨이 위태롭겠으나 바보의 입술을 넘으면 불가사의한 즐거움을 동반한다면서 "사람들은 거짓에 속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 합니다만, 실은 거짓에 속지 않는 것이 가장 불행입니다. (중략) 행복은 허상에 달렸습니다."고 말한다. 이러한 풍자는 속칭 '모두 까기' 신공으로 화룡점정을 찍는데 그 대상은 신과 교황에서 학자까지 성역이 없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이 어떻게 풍자하는지 들여다보자.

신은 중생들이 펼치는 다채로운 소동극에 적잖이 가담하고, 시인은 전혀 쓸모없고 실없는 이야기로 어리석은 자의 귀를 간질이며 이들에게 어울리는 시종은 자아도취와 아부라고 규정한다. 글쟁이는 서로의 칭송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치켜세우는 그래서 불쌍히 여겨야 할 존재라고 규정하더니, 궤변론자는 싸움에 이기려 할 뿐 진실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이들인데 이들의 아류로는 철학자가 있다고 말한다. 종교로 갈수록 풍자 강도가 높아지는데, 수도사는 호칭부터가 잘못되었으니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수도 생활과는 거리가 멀고 세상 도처에 이들만큼 싸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다. 추기경은 옛날 사도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으며 낙타 한 마리를 덮고도 남을 외투를 펄럭이는 자들이라 힐난하면서, 결국 이 모든 혐의에서 교황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견해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당대 석학 에라스무스라면 이쯤은 능히 쓸 수 있을 거라 싶겠지만, 때는 1511년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었고 종교인과 학자들은 지식 독점을 위해 라틴어와 희랍어로 성경을 만들던 시기였다. 에라스무스가 '우신예찬'을 둘러싼 논란의 해명으로 당시 23살인 마르탱 반 도르프를 위대한 신학자라 칭송하면서 보낸 편지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에라스무스를 거치면서 유럽에선 이전의 모든 시대를 능가하는, 그리스와 로마보다 더 숭고하고 더 많은 것을 알며 더 현명한 인류를 형성할 수 있다는 자기신뢰가 처음으로 생겨난다.

'우신예찬'이 주장하는 바, 절대적이고 유일하게 유효한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진리란 당대 지식과 권력의 야합으로 이루어진 일시적 사고체계'라는 미셸 푸코의 원류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폭력을 거부하고 웃음으로 시대를 질책한 최초의 세계주의자, 에라스무스를 좀 더 알기 원한다면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에라스무스 평전'을 만나볼일이다.

영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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