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의 한 무료급식소. 할머니가 배식을 하면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어린 손자는 요구르트를 나눠준다. 경북 수해 현장에선 할머니는 물을 퍼냈고 엄마와 아들은 흙범벅이 된 장판을 씻어냈다. 홀몸 노인을 챙기는 일도 함께다. 할머니가 쌀이며 이불이며 생필품을 집안으로 옮기면 딸은 준비해온 반찬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홀몸 노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손자가 있다.
3대에 걸쳐 약 1만 시간 동안 봉사활동에 참여한 가족이 '적십자 봉사명문가'로 선정됐다. 주인공은 대구 달서구에 사는 조옥수 씨(67) 가족. 조 씨의 영향으로 딸 이경실 씨(44)와 이경남 씨(42), 손자 정연준 군(14)도 적십자 봉사원이 돼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말한다. "가족들과 함께 하니 더 힘이 납니다. 좋은 일은 같이 해야 더 좋은 법이죠"
-올해의 '적십자 봉사명문가'로 선정됐다. 이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대한적십자사에서는 2012년부터 봉사원들의 헌신을 기념하기 위해 '봉사 명문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직계 3대(代) 중 최우수 가문을 선정해 표창하는 것인데 매년 한 가문을 뽑는다. 그게 우리 가족이라니 놀랍고 신기하다. 이런 제도가 있는지 우리도 이번에 알았다. 어떤 상인지도 몰랐는데 받고 나니 너무 큰 상이다.
-봉사 명문가의 시작은 1대 조옥수 씨였을 테다. 20여년 째 봉사를 해오셨다고 들었는데, 자녀들에게 그리고 손자에게까지 어떻게 '봉사 전도'를 한 건가.
▶손자 이야기부터 해도 되겠나. 연준이가 어릴 때부터 내가 봐줬다. 그런데 연준이를 키워야 한다고 나의 기쁨이던 봉사활동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연준이를 업고 봉사를 나갔었다. 갓난쟁이 때부터 연준이는 할머니를 따라 봉사를 다닌 것이다. 그러다 연준이가 5살쯤 됐을 무렵 본인도 봉사를 돕겠다며 나서더라. 복지관 가서 식사대접을 하면 연준이가 숟가락을 놓고, 무료급식을 나가면 어르신들에게 요구르트를 나눠줬다. 손자의 봉사 참여는 자연스럽게 이뤄 졌던 것 같다.
-보고 자란 것이 봉사이니 연준 군에게는 봉사가 익숙했겠다. 함께했던 봉사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2019년 영덕 수해 현장을 방문했던 일이 기억 난다. 연준이가 3학년 때였는데 내가 봉사 간다고 하니 따라 나서더라. 그래서 수재민 집을 정리하는 봉사에 데려갔었다. 방이 세 개였는데 물 퍼내고, 닦고, 쓸고, 씻어내고. 3시간여동안 봉사를 했다. 다 하고 나니 집주인 분이 깜짝 놀라시더라. 어린 아이를 데려와서 도와준다길래 별 기대도 안 했는데 이렇게 다 치워주니 너무 고맙다고 하시더라. 여태 몇몇 봉사원들이 왔지만 이렇게 말끔하게 치워주고 간 일은 없었다고 했다. 연준이가 아무리 어려도 할머니 따라 다닌 봉사 경력이 제법이지 않나. 그 노하우로 함께 쓸고 닦고 했던 봉사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딸들 보다 손자가 먼저 봉사에 입문했다니 꽤 놀랍다. 그렇다면 딸들의 봉사 계기도 듣고 싶다.
▶한 12년 전쯤. 둘째 딸이 나한테 묻더라. "엄마는 우리가 여행을 보내 드려도 늘 피곤해만 하시더니, 노란 조끼 입고 어디를 다녀오시면 왜 이렇게 얼굴이 좋아보이는 거냐"며 같이 한번 따라가보겠다고 하더라. 적십자 봉사를 나갈 때 입는 노란조끼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 둘째 딸은 김장 봉사를 같이 했다. 하루종일 서서 김장을 했어야 했기에 사실 조금 걱정도 됐다. 봉사라는게 몸이 정말 힘든 일이기에 초짜인 둘째 딸이 도망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봉사 내내 둘째 딸 표정이 참 밝았다. 그리고 봉사가 끝나고 나에게 와서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 표정이 왜 밝았는지 알겠네. 내가 힘든 만큼 남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하니 참 뿌듯하다. 앞으로 나도 좀 데려가줘~"
-첫째 따님도 비슷한 계기로 입문하셨겠다. 첫째 따님은 연준 군의 엄마이지 않는가. 사실 요즘같은 시대,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교육에 열 올리는 부모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맞다. 연준이는 봉사시간을 못 받는 시기부터 봉사를 해왔다. 그러니 주변 아이들과는 '봉사'를 생각하는 마음가짐부터 다른 것 같다. 점수를 받기 위해,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닌 것이다. 내가 연준이 데리고 봉사 다닐 때 큰 딸은 한번도 뭐라고 한 적이 없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더 중요하다는 걸 우리 가족은 알았던 것이다. 사실 다른 아이들은 그 시간에 학원 가고 책 한 자 더 읽고 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딸들에게 고맙다. 엄마가 봉사하는 걸 싫어하지 않고 이해해주며, 말없이 같이 활동해줘서 참 기쁘다.
-이정도면 우리 가족들에게는 봉사 DNA가 장착 돼 있는게 아닐까.
▶하하. 그런게 어딨겠는가. 할머니가 하니까 손자가 따라하는거고, 엄마가 하니까 딸들도 같이 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DNA는 있는 것 같다.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그 DNA가 우리 가족을 봉사의 삶으로 이끌어 준 것 같다.
-3대 봉사원을 바라보는 반응도 뜨거울 것 같다.
▶항상 같이 다니는 건 아니다. 시간이 맞으면 함께 봉사를 가지만, 아니면 따로 활동을 한다. 봉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게 봉사다. 그렇기에 때론 흩어지고 때론 뭉쳐서 봉사를 한다. 3대가 봉사를 한다고 하면 신기하다는 반응도 많다. 본인들도 딸이나 아들을 데리고 봉사오고 싶은데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다. 연준이를 보고 놀라는 분들도 많다. "그때 업고 다녔던 애기가 이만큼 컸냐"며 커서도 봉사하는 게 대견하다고 용돈 쥐어 주시는 본들도 계시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은 3대 연준 군에게 하고 싶다. 어릴 때야 할머니 손에 이끌려 봉사를 갔겠지만, 연준 군이 커오며 그리고 주관이 생기면서는 스스로 봉사를 선택할 수 있었지 않는가. 왜 여태껏 봉사를 해오고 있는건가.
▶내 첫 기억은 3학년때. 그러니가 10살 때다. 할머니와 재난재해 지역 자원봉사를 몇 번 갔었는데 그때는 사실 버스타고 먼 곳에 간다는게 마냥 좋았었다. 나는 놀이처럼 물 뿌리고 물건을 옮겼을 뿐인데 어른들이 기특하다고 하니 신이 났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중학생이니 기자님 말씀대로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내 의지다. 나는 봉사가 재밌다. 희망풍차라고 봉사원 2명과 수혜자 1명이 결연을 맺고 매월 주기적으로 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걸로 꽤 오래 홀몸 노인을 찾아가고 있다. 이분들을 보면 그냥 우리 할머니 같다.겨울이면 이불을, 여름이면 수박을 갖다 드리며 할머니 집에 놀러가듯 있다가 온다.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하니 얼떨떨하다. 그냥 내가 재밌어서 하는 거다.
적십자 봉사원으로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인터뷰에는 꼬마 손님 2명이 더 참석했다. 연준 군의 동생 정연호 군(10)과 봉사원 이경남 씨의 딸 이아현 양(8)이다. 사실 이들도 엄연한 꼬마 봉사단이다. 할머니와 엄마를 따라 제빵 봉사와 무료 급식을 다니며 고사리 손으로 작지만 귀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특히 연호 군은 열 번째 생일을 맞아 좋은 일을 계획 중이다. 이는 조 씨 가족의 연례 행사이기도 한데, 10살·11살·12살 생일이 되면 파티 대신 좋은 일을 한다는 나름의 규칙이다. 10살이면 갖고 싶은 것이 한창 많을 나이.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연호 군은 씩씩하게 답했다. "우리 형도 10살 때는 급식 기부, 11살 때는 빵 나눔, 12살 때는 제빵 봉사를 했었대요. 선물 받고 싶지 않냐고요? 봉사하는 게 선물인데요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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