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사하나요?" 간판 꺼진 대구 상권…"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다"

경기침체에 밑반찬마저 비용 걱정해야하는 식당가
지역 내 대표 젊음의 거리 경북대 북문도 곳곳에 '임대'
넘치는 빈상가 앞에서 잔치벌이는 동성로 풍경

고물가 장기화에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2일 오후 대구 시내 한 식당이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고물가 장기화에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2일 오후 대구 시내 한 식당이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안 된다. 안 된다. 아무리 안 된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9시쯤 대구혁신도시 한 돼지고기 전문식당.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주말 저녁이면 가족 단위의 고객들로 자리를 찾기 힘든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지만, 지금은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경기 악화 등으로 최근에는 예약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 방문하면 식사가 가능하다. 식당 주인 김모(62) 씨는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매출이 줄다 보니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고추, 상추 하나까지 아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식당뿐만 아니라 인근 상권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손님들로 붐비는 주말 저녁 시간이었지만, 식당가 내 상당수 점포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고, 그나마 문을 열어둔 매장에는 빈 테이블이 더 많았다.

지난 11일 오후 8시쯤 대구 동구 혁신도시 한 상가 건물. 음식점들은 문을 닫았고 인적이 드물다. 이통원 기자
지난 11일 오후 8시쯤 대구 동구 혁신도시 한 상가 건물. 음식점들은 문을 닫았고 인적이 드물다. 이통원 기자

한식당 대표 임모(48) 씨는 "점심에는 비교적 손님이 있지만, 저녁에는 배달 손님이 아니면 주문이 거의 없어 저녁에는 문을 닫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구 중대형 상가의 올해 1분기 공실률은 16.9%로 전 분기(15.9%) 대비 1.0%포인트(p) 올랐다. 이는 전국 평균 공실률 13.7%보다 높은 수준이다. 대구 지역 소규모 상가 1분기 공실률은 8.8%로 전 분기 8.9%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국 평균 7.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지역 집합상가 공실률은 2022년 4분기 첫 자료가 나온 이후 지난 분기 처음으로 10.4%로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올 1분기 10.3%로 여전히 두 자릿수로 전국 평균 10.1%보다 높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집합상가가 주를 이루는 대구혁신도시의 경우 공실률이 37.7%로 전분기(36.3%)보다 1.4%p 높아졌다.

12일 낮 12시쯤 찾은 대구 중구 서문시장. 대구 최대 시장답게 서문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주차장에 진입하기를 기다리는 차들은 한참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문시장이지만 인파가 몰리는 곳은 먹거리 노점상들뿐이었다. 옷, 신발, 커튼 등 잡화부터 건어물을 파는 상인들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만 매만지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목격됐다. 매대에 수북하게 쌓인 바지에 관심을 보이던 노년의 여성은 손으로 바지 천만 몇 번 만져 보다 매장을 떠났다.

서문시장에서 40년 가까이 커튼 천을 팔고 있다는 70대 천모 씨는 "올해 초부터 손님이 뚝 끊겨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단 한 개도 못 팔고 장사를 접을 정도"라며 "먹거리는 사람이 붐비는데 격차가 심하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같은 날 오후 1시쯤 찾은 칠성시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아예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적했다. 시장 내부는 먹거리를 찾는 손님조차 없었다. 30년 동안 칠성시장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60대 A씨는 "일요일이라 손님이 더 없는 것 같다"며 "지난해 12월에 온누리상품권으로 할인을 대폭 해줄 때 손님이 바짝 오더니 이제는 안 온다"고 푸념했다.

12일 오후 경북대 북문. 빈 점포에
12일 오후 경북대 북문. 빈 점포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우태 기자

다음 날 오후 대구 대표 젊음의 거리인 경북대 북문 맞은편.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임대'라고 써 붙인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유리 문 너머 보이는 고지서 더미가 장기간 공실이었음을 짐작게 했다. 올해 1분기 경북대 북문 지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전분기(18.0%) 대비 0.9%p 오른 18.9%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당시 타격을 입고 차츰 회복세를 보이던 상권도 침체기를 피하진 못했다. 물가가 뛰는 만큼 수익률은 상승하지 않은 것.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43)씨는 "엔데믹 이후 활기를 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침체가 찬 물을 끼얹었다. 공실이 거의 없는 상권이지만 최근 들어 빈 점포로 남은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12일 오후 두류지하상가. 문을 닫은 점포가 늘어서 있다. 정우태기자
12일 오후 두류지하상가. 문을 닫은 점포가 늘어서 있다. 정우태기자

같은 날 두류지하상가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셔터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점포가 늘어서 있었다. 그나마 문을 연 곳도 손님들 발길이 드물었다. 두류지하상가 수분양자 엽합회는 전체 점포 280곳 가운데 약 80곳이 영업을 멈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두류지하상가 수분양자 연합회 관계자는 "유통환경 변화로 상권이 침체한 분위기다. '젊음의 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활력을 잃은지 오래다"라며 "상인들은 매달 고정비용 지출에도 부담을 느끼는 심각한 상황이다.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올해 초 연합회를 구성했다. 상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대구를 대표하는 상권인 동성로는 모처럼 인파로 붐볐다. 파워풀페스티벌 기간에 맞춰 '동성로 축제'가 열렸다. 행사부스가 자리한 거리 뒤편에는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골목에는 영업을 중단한 식당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성로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 소규모 상가 9.9%, 집합상가 11.0%에 이른다.

동성로 한 잡화점 사장은 "축제 기간을 맞아 활기를 찾은 것 같지만 요즘 동성로는 예전과 다르다. 장기간 공실로 남은 점포가 크게 늘었다. 매출은 감소하고 지출은 늘어 경영난이 심하다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