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문화권 사업의 중심은 테마파크형 관광지다. 예산 규모부터 남다르다. 전체 사업비의 35%가 테마파크·컨벤션 시설을 갖춘 5개 사업에 집중됐다. 특히 안동과 영주는 지역 관광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콘텐츠 경쟁력은 낮고 방문객 실적은 저조했다.
◆'맨몸 남성'의 이상한 춤이 유교·선비문화?
지난 3일 오전 10시쯤 직접 차를 몰아 안동으로 향했다. 북대구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안동나들목까지 쉬지 않고 1시간 10분을 달렸다. 요금소를 나와 국도를 이용해 안동 도산면까지 50분이 더 걸렸다. 도착한 곳은 안동의 3대 문화권 사업장인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과 한국문화테마파크였다.
지상 2층 규모로 앞면이 유리창으로 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축면적이 1만3천㎡(약 3천900평)인 가로로 길쭉한 형태였다. 바로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으로 조성된 안동국제컨벤션센터와 세계유교문화박물관이었다.
컨벤션센터 내부는 행사가 없어 한산했다. 직원 이외에 가족 단위 방문객 대여섯 명만 보였다. 2층 박물관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2m 높이의 대형 스크린이 나왔다. 화면에는 하얀 맨몸 남성의 영상이 나왔다. 남성은 발차기, 활 쏘기, 기체조를 연상케 하는 몸짓을 했다.
가족 나들이를 온 안동 주민 박진호(36·가명) 씨는 영상을 쳐다보는 다섯 살 아들의 손을 잡아 다른 전시물로 향했다. 박 씨는 "박물관이 생겨 안동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왔는데 입구부터 민망한 영상이 나와 당황했다"며 "둘러본 전시물도 한자로 가득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고, 아이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의 유교문화를 설명하는 전시물이 있었다. 나라별로 전시공간이 막혀 동선이 끊겼고, 전시도 글로 길게 설명하는 형식이어서 방문객의 시선을 오래 붙잡지 못했다.
전시물마다 QR코드를 부착해 스마트폰으로 설명을 접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일부 영상 이외에 대부분 글로 된 자료를 보여주는 수준이었다. 체험은 탁본 뜨기와 사발통문에 자기 이름을 넣는 정도였다. 유교도서관은 관람 중 잠깐 앉아서 쉬는 용도로 사용할 뿐이었다.
박물관을 위탁 운영하는 ㈜안동테마파크의 신동락 학예사는 "유교에 관한 내용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테마가 정해져 있어 당장 새로운 내용을 추가로 채우기가 어렵다"며 "현재 전시를 유지하면서 추후 개편 방안을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외딴 섬 같은 테마파크…익숙한 내용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 바로 옆에 한국문화테마파크가 있었다. 5분을 걸으니 매표소가 나왔다. 대기 줄 없이 곧바로 입장했다. 기와를 올린 한옥과 짚으로 지붕을 만든 초가집 수십 채가 눈에 들어왔다. 전체 36만7천㎡(11만 평) 넓이의 테마파크에 이용객은 거의 없었다. 전시용 민속촌 같은 풍경이었다.
서너 명 단위의 관광객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파라솔 이외에 나무 그늘이나 쉼터가 부족했다. 이날 햇볕이 따가웠고 안동의 낮 최고기온은 28.4℃까지 올랐다. 건물 그늘로 피하는 방문객도 있었다.
테마파크는 의병체험관과 선비숙녀변신방, 공연 관람(전통극공연장, 설화극장) 등 체험 중심으로 조성돼 있었다. 각각 별도로 체험료를 내야 했다. 이에 대해 방문객들은 "별로 볼 것이 없고 건물 구경만 했다. 유료 체험이 너무 비싸고 장삿속이 보인다. 너무 수익을 목적으로 한 것 같다"며 온라인 후기를 남겼다.
무료로 입장한 선비체험관에는 몸동작을 읽는 카메라 기술 활용한 게임이 있었다. 맨손 무예 익히기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동작 인식이 잘 되지 않아 체험을 끝까지 진행할 수 없었다.
하나의 관광지로 운영 중인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와 한국문화테마파크는 전체 부지 면적이 40만㎡에 달한다. 축구장(7천140㎡) 56개와 맞먹을 정도다. 하지만 진입로는 왕복 2차로로 좁다. 동쪽에는 안동호가 있고 서쪽은 경사가 가파른 임야로 둘러싸여 외딴 섬과 같이 고립된 지형이다.
무엇보다 대중교통으로는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했다. 안동 시내에서 512번이나 급행3 버스를 타고 70분을 이동한 뒤,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55분을 더 걸어야 한다. 대표 관광지인 하회마을과는 승용차로 1시간 거리여서 연계성도 낮다.
인근 한국국학진흥원과 도산서원은 물론 안동문화관광단지 내 유교랜드와 비교해 콘텐츠 차별성도 부족하다.
남상호 안동시 관광정책과장은 "킬러 콘텐츠가 부족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잘 알고 있다"며 "이를 보완하고자 안동역에서 출발하는 투어버스를 하루 2회씩 운영하고 있다. 또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드라마 촬영지로 빌려주는 등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텅 빈 '선비세상'…빛바랜 전시·체험
안동과 함께 3대 문화권 사업을 대표하는 지역은 바로 영주다. 한국문화테마파크 사업으로 순흥면 청구리에 '선비세상'을 조성해 지난 2022년 9월 개장했다. 27만5천㎡(8만3천 평) 규모로 소수서원과 선비촌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지난 4월 2일 찾은 선비세상은 평일인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용객이 너무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매표소 직원이 "안내 열차를 한번 타는 것이 어떠냐"고 안내했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취재기자 1명뿐이었다. 다른 손님이 없어서 열차는 5분 일찍 출발했다. 열차로 10분이면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었다.
선비세상은 어린이 체험공간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글 문학관과 한글 놀이터를 비롯해 전래동화 극장, 어린이 책방 등이 대표적이었다. 반면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부족했다.
오토마타 인형극을 관람했다. 무대는 18m로 커 눈길을 끌었다. 관객이 한 명뿐이어서 인형극은 정해진 시간(매시간 정각과 45분)보다 빨리 시작됐다. 작은 인형을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공연으로, 영주 도령이 장원급제해 선한 관리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3일 선비세상을 다시 찾았다. 어린이날 연휴를 앞둔 금요일인데도 관광객은 한 달 전보다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둘러보는 일행이 간혹 보일 뿐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폭 5m 너비의 길을 따라 150m가량 올라가니 원형 모양의 중앙 광장이 나왔다. 5분 정도 이동하는 동안 마주친 관광객은 10명 남짓이었다. 이날 영주 낮 기온이 27.1도까지 올라간 탓에 관광객 대부분은 반 팔 차림이었다. 그늘과 쉼터가 부족해 특히 아이들이 힘든 표정을 지었다.
김일훈 영주시 소수서원관리사무소장은 "전시·체험 주제가 안동과 겹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운영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차근차근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영화를 패러디한 영상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홍보하고 어린이 뮤지컬 프로그램도 고민하고 있다. 지역 예술인과 함께 전시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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