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0월, 대구 남산동 향교 북편 길 건너 한 술집. 대구 문인과 피란 온 문화예술인 10명 안팎이 모여 '학원'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학원 터는 남산동 657 교남(嶠南)학교로 정했다. 시인 구상·조지훈, 소설가 박영준·최정희 등은 전임강사, 소설가 최인욱은 교무 담당을 맡기로 했다. 초대 학원장엔 아동문학가 마해송을 선임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 전문 교육기관 '상고(尙古)예술학원'이 탄생했다. 피란 예술인들의 후원자 역할을 해온 시인 구상과 대구 유지들이 뜻을 모아 만든 사립 교육기관이다. 여기엔 당대 최고의 문화예술인 9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박종화 김기진 유치환 이은상 박목월 박두진 양주동 유치진 등 문인, 국문학자, 연극인, 음악가, 화가 등을 망라했다. 학원 이름은 해방 전 작고한 대구 출신 시인 상화(尙火) 이상화와 고월(古月) 이장희의 아호 머리글자를 땄다. 이 학원의 설립 취지문도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예 초창기의 시인 이상화와 이장희의 뜻을 기린다'고 했다. 또 '선인의 업적과 민족예술의 전통을 깨우치게 하여 뒷날의 대성이 있게 하고자 한다'는 목적도 담았다.
상고예술학원 설립을 전후한 한국전쟁기는 '대구의 문예 부흥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전국에서 몰려든 문화예술인들이 대구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꽃피운 독특한 문화가 바로 '전선문화(戰線文化)'다. 이 전선문화의 기록을 오롯이 담은 곳이 바로 '한국전선문화관'이다. 대구시는 피란 문단을 주도했던 구상 시인이 후배들과 자주 들러 전쟁의 아픔을 달래고 문화예술을 논했던 공간인 '대지 바'(중구 향촌동 14의 5)를 매입, 문화관으로 조성한 뒤 올해 문을 열었다. 1층 전시 공간에는 미디어북과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1950년대 문인의 작업실을 재현했고, 2층 실감형 미디어아트룸은 1950년대 대지 바를 재현했다.
상고예술학원 터였던 교남학교는 이상화 시인이 1930년대 교편을 잡았던 곳이고, 한국전선문화관의 옛터 대지 바는 구상 시인과 대구 문인들의 흔적이 밴 곳이다. 남산동과 향촌동 일대에 대구 문화예술의 역사와 흔적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 문화예술 부흥기의 흔적과 기억을 더듬어 보기 원한다면 한국전선문화관을 둘러보길 권한다.
댓글 많은 뉴스
"촉법인데 어쩌라고"…초등생 폭행하고 담배로 지진 중학생들
대구경북 대학생들 "행정통합, 청년과 고향을 위해 필수"
"죽지 않는다" 이재명…망나니 칼춤 예산·법안 [석민의News픽]
[매일춘추-김미옥] 볼 수 있는 눈
이재명 사면초가 속…'고양이와 뽀뽀' 사진 올린 문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