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책임 행정, 실명 공개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기초자치단체 홈페이지들이 직원 실명을 가리고 있다. 해결이 난망하거나 무리한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속칭 '민원 갑질'이 빈발하면서다. 대구에서도 동구청, 남구청, 달성군청이 최근 실명을 비공개 전환했고 수성구청은 부서장급 이상의 실명만 공개하도록 했다. 경기도 김포에서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병폐가 끊이지 않은 탓이 크다.

진작에 추진했어야 했다. 조직 내부에서도 실명 비공개 요구는 꾸준했다. 책임 행정과 거리가 멀다는 반론도 있지만 사회적 공기나 마찬가지인 공무원에 대한 일부의 저열한 시민의식은 도를 넘었다. 전화 욕설은 약과다. 실제로 찾아와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커뮤니티에 일방적 주장을 게시하는 '좌표 찍기'도 횡행한다. 화풀이에 가까운 작태들이다. 이런 일을 겪은 공무원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책임 행정은 공복으로서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게 기본이다.

이런 몰상식한 행동의 기저에는 빗나간 주인의식이 있다. 자신이 낸 세금으로 공직사회가 운영되므로 당연히 그래도 된다는 식이다. 주권 의식의 그릇된 소모다. 민원 갑질은 통상적인 시민 불편에서 비롯됐다 보기도 어렵다. 몇 안 되는 이들의 감정 배설을 받아주다 선량한 시민 불편이 가중되면 합리적이고 선량한 민원마저 도매금으로 취급받게 된다. 기초자치단체들이 악성 민원 전담대응팀을 발족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는 이유다.

홈페이지에 조직도만 있어도 관련 업무 책임자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직원 사진도 굳이 게시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공무원이 악의적 모함에 휩쓸리지 않도록 방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악성 민원 상습 제기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강제 규정 등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다. 악성 민원 내용을 밝히고 명명백백하게 항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도입도 고민해야 한다. 썩은 사과 한 알이 상자 속 사과 전체를 썩히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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