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민생과 빈자일등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말 많은 세상이다. 이른바 '셀럽'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뭔가를 터뜨린다. 정치인, 기업인 누구랄 것도 없다. 그중에도 몇몇 정치인은 더 유별나다. 이슈가 될 만하면 어디든 뛰어든다. 사안이 무엇이든 쉽게 판단하고 상대가 누구든 함부로 공격한다. 그럼에도 SNS에 한마디 툭 던지기만 하면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받아쓴다.

그렇게 그 한마디는 '의미심장'해진다. 혹시라도 누가 반박하면 더 거센말로 되받아친다. 그러면 다시 반박하고, 이런 일이 잦다 보니 이젠 그저 그러려니 할 때가 많다. 그런데 민희진 어도어(ADOR) 대표는 좀 달랐다. 기자회견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힙함'에 열광했다. 그가 착용한 모자와 티셔츠는 품절이 되었고 대중의 정서는 일순 민 대표에게 기울었다. 그리고 여기에 언론이 주저 없이 올라탔다.

그 덕에 기자회견장에서 2시간이 넘도록 울고 웃은 것이 '퍼포먼스'가 되었다. 욕설과 비속어를 남발한 것 또한 기존의 틀을 깬, 프로보커터(Provocateur) 민희진의 '멋진 도발'이 되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마땅히 지켜야 할 선이 있음에도 말이다. 아무튼 주장의 진위는 차치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또한 두고 보더라도 사람들을 움직인 건 그 '힙함'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얼마나 간절하면 저렇게까지 할까?" 대중의 눈에 비친 건 그의 '절실함'이었다.

얼마 전부터 거리 곳곳에 '민생부터 살리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물론 중앙당에서 내려온 문구이겠지만 볼수록 공허하다. 군인이 나라부터 지키겠다는 말과 다를 게 뭔가? 오히려 지금까지 민생의 우선순위가 몇 번째였는지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이라는 말을 무척 자주 했다. 지난 연말 국무회의에선 '해외순방이 곧 민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달 뒤엔 '민생을 챙기기 위해' 불과 나흘 앞둔 독일 국빈 방문을 취소한다고도 했다. 올해 들어선 전국을 돌며 24차례의 '민생토론회'를 주재했고 14번째 민생토론회 자리에선 '원전이 곧 민생'이라고 했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또한 모두 발언을 민생으로 시작해 민생으로 끝냈다. 이렇듯 뭐든 다 민생이다 보니 가끔은 말할 때마다 갖다 붙이는 뻔한 말같이 들린다. 클리셰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 국민(民)의 삶(生)은 진짜 힘들다.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코로나 때의 2배에 달하고 가스비, 전기료 등 민생 물가는 안 오르는 게 없다. 과일 하나를 마음 놓고 사 먹어 본 게 언제인지도 까마득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외교, 국방,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정책이 훌륭하고 나라도 옳은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다만 정책의 속도가 좀 느려서, 세심함이 부족해서 아직 민생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건 없다. 그건 정책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자꾸 국민과의 소통을 이야기하는데 소통은 서로가 통하는 것이지 '51분 담화'처럼 어느 한쪽이 더 자주, 더 길게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G7의 초대를 받지 못해도 외교는 '심리적 G8'이라 치고, 말마따나 국방도 '심리적 핵보유국'이라 치자. 그러나 민생은 그렇게 될 수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해외순방을, 원전을 민생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오늘은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코살라국 사위성의 가난한 여인 난타는 종일을 굶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구걸한 끝에 겨우 등불 하나를 공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석가세존께 자신의 처지를 살펴 달라 기도하지 않았다. 대신 '모든 중생의 어둠을 없애게 해 주소서'라는 서원을 세웠다.

아침이 되자 다른 모든 이의 등은 꺼졌으되 난타의 등만 홀로 환하게 타고 있었다. 익히 알려진 '빈자일등' 이야기다. 민생을 말하려면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게 얼마나 무겁고도 무서운 말인지, 함부로 해선 안 되는지부터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런 후에라야 그 '민생'이 국민에게 '내(民) 삶(生)'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릴 것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시장(市場)이 못 하는 일을 하라는 것에 있다. 한 세기도 더 전의 야경국가처럼 시장 논리만 앞세우지 말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민생은 힘센 자의 '내리 소통'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일 온몸으로 겪는 것이 민생이다. 그러니 자꾸 국민에게 알아 달라 할 필요도 없다. 진짜로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네발 달린 짐승도 알아본다. 하물며 국민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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