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에 '밥 잘 주는 쾌활한 수학선생님'이 운영하는 무료 공부방이 있다. '참스승'이나 아름다운 사제관계가 귀해지는 각박한 세태 속 좋은 본보기로 사람들의 관심과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서구 내당동에서 무료 공부방을 운영하는 구독자수 13만 유튜버 '한닭쌤'(한모 씨·30대 중반)이다. 한씨는 재능기부로 공교육과 사교육이란 이분화된 틀에서 벗어난 제3지대를 꿈꾼다.
그는 10년 이상 수학 과외를 해온 베테랑 선생님이자, '한닭쌤과 삐약이교실'이라는 유튜브와 틱톡 계정을 운영하는 콘텐츠 제작자다. 자택에 정원 10명의 공부방을 꾸리고 매일 아이들에게 무료 과외에 숙식까지 제공하며, 지역사회에서 청소년 돌봄과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대학교를 입학한 20살부터 개인 수학과외를 해온 한씨는 8년 전 공부방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 일을 생업으로 삼았기에, 수업료를 받고 아이들 공부를 봐주며 간간이 밥을 해다 먹였다.
그러다 재작년 4월 우연히 틱톡 개인 채널에 올린 간식 모음 영상이 유명세를 타며 전환점이 찾아왔다. 당시 들어온 콘텐츠 수익으로 무료 공부방 운영의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한씨는 마음을 굳힌 뒤 지역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돌려 '무료로 수학과외를 하겠으니 열심히 공부할 아이를 찾는다'며 도움을 구했다.

기획 당시에는 저소득층에 한정해 무료 수업을 하려고 했지만, 주 수입원인 영상 콘텐츠에 아이들이 일부라도 노출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방향을 틀었다. 자발적으로 공부하러 온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상을 '공부할 의지가 있는 모든 아이'로 넓혔다. 그렇게 재작년 9월부터 2년 가까이 무료 공부방을 운영해온 한 씨는 현재 초등학생 1명, 중학생 8명, 고등학생 1명과 동고동락 중이다.
지난해 5월 공부방에 오기 시작한 박정섭(14) 군은 "친구 추천으로 오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재밌어서 공부도 재밌다"며 "여기 다니고 난 이후로 주말에도 공부하러 오고 하니까 부모님도 좋아하신다"고 했다.
정섭 군을 공부방에 데려온 권아영(14) 양은 "학교 복지 선생님 소개로 오게 돼 1년 반 정도 공부했다"며 "공부하는 게 힘들 때도 선생님이 늘 웃겨주셔서 웃으면서 공부할 수 있어 좋고, 중학교 1학년 때에 비해서 평균 점수가 30점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권 양은 "학교 수업은 진도가 느려서 조금 답답하고 재미가 없는데 여기 와서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하면 일대일이라 바로 이해 되는 면도 있다"며 "고등학생 때도 선생님이랑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씨가 운영하는 공부방은 매일 제공되는 '특식'급 식사를 제외하고도 간식과 놀거리로 가득 차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밤늦게까지 머물기도 하고 하룻밤을 자고 돌아가기도 한다. 공부방이 아이들의 '아지트' 형태를 띠게 된 것은, 한씨가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며 정부와 지자체에서 꾸려나가는 복지의 한계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부는 아이들에게 급식카드를 줘버리고 마는 식인데, 밥은 먹을 수 있게 되더라도 식사를 제외한 아동의 주변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는 설명. 한 씨는 아이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돈보다는 돌봄이나 감정적인 교류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삐약이 교실'의 좋은 취지 덕분인지 관련 영상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가족보다 더 따수운 한닭쌤' 같은 찬사가 담긴 댓글은 물론 구독자들이 식재료를 보내주는 경우도 많단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베푼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죠. 그래도 가르친 아이들이 자라 사회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베풀고 더 많은 이들의 삶이 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한씨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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