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이른바 '호캉스'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하룻밤 머무는데 수십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부담이 되는 사람들도 있을 터.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단돈 1만5천원으로 호텔에 버금가는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곳. 대구 중구 ABC라운지를 소개한다.
◆ 카페야 호텔이야?
"어서 오세요."
호텔 유니폼을 떠올리게 하는 복장을 한 직원이 친절하게 인사한다. 기분 좋은 인사를 뒤로하고 주변을 찬찬히 살핀다. 카페 입구에는 가게 분위기와 어울리는 생화가 놓여 있고, 벽면을 둘러싼 책장에는 책이 가득하다. 그 뒤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걸려 있다.
고급 호텔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케이트(가명) ABC라운지 대표의 손에서 탄생했다. 과거 공간기획을 했다는 케이트 대표는 호텔에서 영감을 받아 이같이 인테리어했다고 설명한다.
"1층은 호텔 로비, 2층은 객실처럼 꾸몄어요. 대부분 호텔 로비는 어두워요. 벽을 검정색으로 칠해 호텔 로비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고급 호텔에 생화가 놓인 점에 착안해 생화를 문 앞에 뒀고요. 2층은 호텔 객실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눈이 편안해지는 녹색 벽지를 사용했어요. 손님들이 조금 더 편하게 머물다 가실 수 있도록 푹신한 의자도 뒀죠. 숙박이 되지 않는다는 점 빼고는 호텔 같죠?"
호텔을 쏙 빼다 닮은 이곳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책과 예술품이 많다는 것이다. 이곳에 진열된 책들만 1천여권으로 디자인, 패션, 소설, 비소설, 심리, 인문, 시집, 에세이, 종교, 외서 등 종류도 다양하다. 벽면에 걸린 그림은 총 12점으로 피카소 후세대 작가인 로테, 김순철 화가의 작품도 있다. 이들은 모두 케이트 대표의 소장품이다.
"공연, 연극, 그림 등 예술과 독서를 좋아해요. 전 세계에서 사 모은 그림과 책을 카페 내부 인테리어에 활용했죠. ABC라운지도 Art(예술), Book(책), Coffee(커피)에 라운지(호텔, 공항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를 합쳐서 지은 거예요. 예술, 책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오셔서 몇 시간이든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쉬었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2층 라운지에서 나만의 시간을
ABC라운지에는 비밀의 문이 있다. 여러 책장 중 한 책장을 밀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온다. 그러나 이 계단은 아무나 이용할 수 없다. 1층은 커피를 주문한 누구나 이용 가능하지만, 2층은 이용료 1만5천원을 받기 때문이다. 꽤 비싼 가격에 놀랄 수도 있지만, 서비스를 제공받는 순간 가격에 대한 생각은 사라진다.
2층 이용객은 원하는 음료 한 잔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리필 받을 수 있다. 또 스낵바를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 프린트, 팩스, 복사, 스캔 서비스도 5장에 한해 무료 이용 가능하다. 이용객은 평일 기준 3시간 동안 이러한 혜택을 누리며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면 된다. 1층에서 책을 가져와 읽는 것도, 원하는 서비스를 직원에게 요청하는 것도 자유다.
케이트 대표는 "예컨대 손님이 책을 끝까지 못 읽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남은 페이지를 기억했다가 다음에 카페에 재방문하시면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알려드리는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손님 편의를 위해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호텔에 회원권이 있다면 ABC라운지에는 회원제가 있다. 회원에게는 동반 1인 포함 라운지 무료입장, 브런치 메뉴 무료 제공, 음료·디저트 할인 등 등급에 따른 혜택을 제공한다.
회원제에 가입하면 특별 혜택도 있다. 고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케이트 대표는 "회원들 취향을 큐레이팅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회원에게는 피아노 연주회를, 독서를 좋아하는 회원에게는 문학낭독회를 계획하고 있다. 물론 3~5명 극소수에게 이 같은 혜택을 제공한다"며 "매일신문 건너편 작은 한옥을 매입해 뒀다. 회원제가 정착되면 회원들이 반나절 정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 음료 한 잔도 호텔 룸서비스 받듯
호텔 같은 라운지에서 편하게 쉬었다면, 이제는 룸서비스를 시킬 시간이다. 메뉴판을 찬찬히 살핀 뒤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익숙하게 진동벨을 찾지만, 이곳에는 진동벨이 없다.
ABC라운지는 손님이 커피 한 잔을 시키더라도 직원이 직접 커피를 가져다준다. 손님이 커피를 다 마시면 직원이 잔을 치운다. 손님이 조금 더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번거로움을 줄인다는 게 이곳의 원칙이다. 손님은 호텔 룸서비스 받는 기분을 누릴 수 있다.
커피와 디저트도 보기 좋게 차려준다. 라탄 소재 원형 테이블 매트를 가져온 직원이 익숙하게 테이블 위에 매트를 깐다. 그 위에 커피와 디저트를 예쁘게 플레이팅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 이곳 메뉴들 맛은 훌륭하다. 김한나 총괄매니저는 전 세계에서 들여온 값비싼 재료들을 아낌없이 넣는 것이 맛의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라떼 위에 올라가는 크림은 동물성 생크림을, 버터는 프랑스·영국산 최고급 버터를 사용한다. 초코라떼(6천원) 위에 뿌리는 시럽조차 미국 대표 프리미엄 초콜릿이라고 불리는 기라델리를 쓴다"고 말했다.
시그니처 메뉴는 크림이 들어간 라떼. 라떼는 총 7종류로 버터라떼, 코코라떼, 크림라떼, 흑임자크림라떼, 스누피라떼, 오렌지비앙코, 피치멜로우(각 6천500원)가 있다. 특히 오렌지, 복숭아 맛과 향이 나는 오렌지비앙코, 피치멜로우는 꼭 먹어봐야 할 메뉴다.
다른 카페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메뉴도 있다. 위스키 맛이 나는 무알코올 아메리카노 '위스키노(6천원)'가 그 주인공이다. 점심시간 술 한 잔 마시고 싶지만, 마실 수 없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한다.
ABC라운지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바로 테이크아웃용 컵 뚜껑에 바리스타의 이름을 적는 것이다. 김 총괄매니저는 "손님이 커피나 음료를 테이크아웃하면 컵 뚜껑에 그 메뉴를 만든 바리스타 이름을 적는다.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바리스타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손님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바리스타를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했다.
"집에 있기는 싫고 어딘가 나가고 싶은데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가고 싶지 않을 때 있지 않나요? ABC라운지에 오셔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힐링하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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