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사랑에 속고 돈에 울어도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누군가 인생의 책 3권을 묻는다면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내겐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있으니까. 한 번쯤 들어본 문학사의 유명한 첫 문장을 가진 소설이자 매년 전 세계에서 50만권이 팔리는 메가 스테디셀러. 그러나 의외로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위대한 개츠비'의 생명력이 늘 경이로웠고 또 부러웠다.

작가 피츠제럴드는 판사의 딸인 젤다와 약혼했다가 파혼하지만 결국 결혼에 이른 반면, 개츠비는 데이지를 그리며 사는 운명에 머물렀다. 피츠제럴드와 개츠비가 공유한 동력이자 핸디캡은 돈이었다. 데이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여(돈 때문에 데이지를 뷰캐넌에게 빼앗겼다고 믿었기에) 데이지의 집 건너편에 저택을 짓고는 파티를 열었던 개츠비. 한편 아내 젤다의 헤픈 씀씀이를 감당하기 위해 피츠제럴드는 MGM에서 각본가로도 수입을 얻었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각색하다 잘린다). 1920년대는 내로라는 작가들이 영화사에 소속되어 쏠쏠한 부수입을 챙기던 시절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워너브라더스에 살바도르 달리는 디즈니에서 작업을 했다.

당대 미국은 1차 대전 승전국의 지위를 누리며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국가와 개인의 부가 넘쳐나던 '흥청거리는 20년대'. 동부에는 신흥부자가 속출했고, 올드 머니와 뉴 머니 사이에는 시대의 피로를 온몸으로 떠안은 재의 언덕과 힘겨운 노동이 있었다. 너도나도 먹고 마시며 사치향락으로 치닫는 동시에 도덕성이 추락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시작한다. 그리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던 한 남자는 쓰러진다.

누구도 개츠비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데이지마저 조문은커녕 조화도 보내지 않았고, 가족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은 사물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돈이나 경솔함 뒤에 숨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말끔히 치우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초록의 꿈을 향해 몸부림치다 쓰러져간 한 남자에게 보내는 헌사이자, 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에 보내는 조종(弔鐘)이 '위대한 개츠비'이다. 작가 피츠제럴드가 개츠비에게 위대한, 이라는 수식을 붙인 까닭일 것이다.

교회에 열심이었던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매년 전도상 수상자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틈만 나면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지를 돌린 친구가 아니었다. 이 녀석을 만년 2등으로 만든 수상자는 명문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친구였다. 요컨대 현실에서 자기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말한다. "신은 천둥 벼락처럼 오지 않는다. 신은 빗방울처럼 우리에게 온다." 개츠비는 어떤 위대한 일도 한 적이 없지만, 순수한 이상을 품은 채 평생 한 사람을 소망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했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위대한 개츠비'와의 만남은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 나름의 대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읽을 때마다 다른 답을 찾고 싶었으나 언제나 결과는 같았다. 다만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마지막 문장에 마음을 얹는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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