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 (평일 18:30~19:30)
- 진행: 이동재 매일신문 객원편집위원
- 대담: 김근태 국민의힘 의원(이하 김근태)
▷이동재 객원편집위원(이하 이동재): 뉴스캐비닛 2부 시작합니다. 저희 뉴스캐비닛은 숨겨진 사연의 주인공을 좋아합니다. 석 달 전에 국회의원이 돼서 이제 보름 후면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1990년생 김근태 의원인데요. 근데 더 흥미로운 건 국회의원이 된 후에 결혼식을 했는데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하게 치렀다고 합니다. 축의금을 포기한 건데 이러기가 쉽지 않아요. 김근태 의원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저희가 오늘 의원님 모시면서 물어볼 내용이 많아요. 저희가 모셨던 분 중 지지난주에 나오셨던 박충권 당선인이 있거든요. 그분하고 같이 학교에서 공부를 같이 하셨더라고요. 네 맞습니다. 서울대에서 같이 연구하시는 거예요?
▶김근태 국민의힘 의원(이하 김근태): (박충권 당선인과) 같은 재료공학 출신이고 그래서 저도 정치에 들어오기 전 그리고 그분이 또 전 탈북하셨는지도 몰랐어요. 자그마한 프로젝트 같이 한 경험이 있거든요. 연구실은 다르긴 했는데. 그래서 인재 영입 발표로 이제 처음 제가 인지를 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박충권 박사님 여기서 뵙다니.
▷이동재: 인연이 또 그렇게 이어집니다. 근데 21대 국회의원 선거 그러니까 지난 4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이었죠. 당시에는 그때 이제 거기서 비례 4번을 받으셨어요. 근데 바로 앞에 3번까지 끝났어요. 3번에서 딱 끝났어요. 그러고 나서 공직선거법상 지난 1월30일까지만 의원직 승계가 가능한데 하루 차이로 여의도행 막차를 타신 거예요. 국회의원 될 줄 아셨어요? 어떠셨어요? 안 됐을 때 어땠고 그다음에 나중에 됐을 때 어떠셨어요?
▶김근태: 사실 좀 '얼떨결에 정치권의 제도 정치권에 들어왔다'라고 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에 안 됐을 때도 사실 제가 오랜 시간 정치를 위해서 준비한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어쨌거나 또 이과생이기 때문에 사실 그 당시에 국회의원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지금 받아들이는 것만큼 또 생각하지도 못했었어요. 그래서 떨어졌을 때도 사실 그렇게 많은 힘듦이랄지 이런 것들이 있지는 않았었어요. 그 이후에 정치 활동들도 이어가면서 조금 더 정치라는 게 뭔지도 알게 되고 좀 더 세상도 넓게 볼 수 있게 되고. 또 제 자신도 좀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던 차에 제가 작년 말에 좀 정치라는 업에 대해 장기적으로 제 자신이 어떻게 이것들을 받아들여야 될지에 대한 좀 고민을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요. '그때 간단한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일단 밥벌이부터 할 줄 알아야겠다' 그런 생각에 아버지가 자그맣게 공장 하시는 게 있는데. 거기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이동재: 그러면 어떤 일을 하신 거예요?
▶김근태: 공장이 엄청 작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 남동생 그리고 직원 한 분. 딱 이렇게 5명이서 하는 자그마한 공장인데요.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있어요. 근데 지금은 '랩 다이아'라고 해가지고 보석 다이아도 합성을 하긴 하는데.이제 전통적으로 이제 합성 다이아몬드는 가루 형태로는 쉽게 만들 수 있었어. 그래서 그 가루들을 이용해서 쇠막대기 같은 데 이제 그것들을 코팅하면 까실까실하잖아요. 그런 것들로 이제 연마할 수 있는 그런 공구를 만드는 자그마한 공장입니다.
▷이동재: 그런 공구를 만드는 자그마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화가 왔을 거 아니에요. '국회의원 될 수도 있겠어' 이런 전화가 왔을 것 같은데, 그 과정이 좀 궁금해요.
▶김근태: 사실 제가 그러니까 마음을 내려놓은 거죠. 사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일단은 장기적으로 세상 사람들한테 저라는 사람이 이제 정치인으로서 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가 채워야 될 것들이 더 많구나'라는 생각에서. 이제 내려놓고, 이제 '정치권에서 약간 떨어져서 그 이력들을 쌓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가, 출근하다가 사실 교통사고가 한 번 났어요. 고속도로에서 뒤에서 받쳐가지고. 사실 여기 흉터가 좀 보이실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세게 받쳐서 병원에 갔거든요. 병원에 입원을 해서 누워 있는데 그 다음 날 오전에 아침밥 엄청 일찍 주더라고요. 아침밥 먹고 그러고 있는데. 전화가 오는 거예요. 권은희 의원님 전화가 딱 찍힌 거예요. 근데 좀 연락 안 드린 지 좀 꽤 됐거든요. 근데 직감했죠. 권은희 의원님이 지금 나한테 전화를 하신다는 것은 승계밖에 없다.
▷이동재: 기회가 오는구나.
▶김근태: 근데 '기회가 오는구나'보다도 한편으로 마음을 정리했었으니까, 이제 막 공장 일도 좀 벌려놓은 것들이 있고 그래서 약간 좀 싱숭생숭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동재: 이거 그럼 그때 그런 생각 드셨을 거 아니에요? 해야 돼, 말아야 돼. 주변에 또 입장이 좀 엇갈리고 그러지 않으셨어요?
▶김근태: 그래서 주변의 입장은 명확했습니다. '무조건 해'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셨고. 저도 고민을 길게 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어쨌거나 제가 4년 반 정도의 시간을 이제 정치권으로 두고 온 건데요. 이제 이 하나의 챕터를 21대 시간이 끝날 때 이제 하나의 챕터가 마무리된다라는 느낌을 저도 가지고 있어요. 근데 '이 챕터의 마무리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4개월을 선물을 받았다'라는 생각에 좀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어요.
▷이동재: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권은희 의원이 있었던 국민의당이 합당을 하면서 국민의 힘이 된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 권은희 의원이 비례대표 3번이었으니까 그거를 4번으로 이제 의원님이 물려받았다. 간단하게 이런 내용이죠. 알겠습니다. 근데 어쩌다가 국회의원이 되셨는지 그러니까 어쩌다가 정치 활동을 시작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좀 궁금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김근태: 사실 저는 30살 때까지도 그냥 완전히 공돌이였어요. 이과 공돌이였는데 제가 전자현미경 전공을 했거든요. 전자현미경이 굉장히 비쌉니다. 한 100억원대가 넘는 장비들인데. 서울대에서도 당시에 최신 장비가 들어왔었고. 근데 그것들을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좀 빡셌어요. 그러니까 전교생들이 이거를 쓰고 싶어 하니까. 저는 그걸 연구하는 연구실임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이제 이걸 쓰려면 밤을 새워서 새벽에 쓴다든지 이제 이런 식으로 썼어야 되는데. 미국 출장을 한번 갔어요. 왜냐하면 미국에 또 비슷한 스펙의 좋은 장비가 있어서 오하이오 주립대학교를 갔는데요. 거기서 보고 충격을 먹은 거는 그 비슷한 급의 장비를 5명이서 쓰는 거예요. 그리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물론 좋은 학교지만 사실 미국에 얼마나 날고 기는 학교들이 많습니까? 그래서 제 생각엔 MIT 스탠포드, 하버드 이런 애들은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거기에 좀 충격을 먹고. '내가 좀 우울한 개구리였구나' 하면서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한 생각을 좀 어떤 정책적인 방향에서 그때부터 좀 하기 시작했거든요.그러면서 들여다보니까 이제 문재인 정권의 어떤 방향성이랄지 이런 것들에 대한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됐고. 그러면서 경제 정책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게 또 외교 정책이랄지 안보 정책, 복지 정책이랄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이 증가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어쨌거나 결론을 내린 거는 이게 방향성이 '저들이 얘기하는 방향성이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는 방향성이구나'라는 결론을 한편으로 내렸고. 그리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서 궁금해졌어요. 사실 지인 중에 이제 좀 어르신이 있었어요. 운동을 굉장히 빡세게 하셨던 분이셨어요. 그래서 화염병 사고로 반신에 화상이 있는 그런 지인분이 계신데, 그분이 제가 어렸을 때 기억에 술을 한 잔 하고 정치 얘기가 오고 갔을 때 어른들끼리 있는데 제가 낀 거예요. '당신들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냐' 이제 약간 좌성향의 분들에게. 그게 생각이 나서 뭘 알고 계시길래 그 때 그랬을까. 그래서 다짜고짜 찾아갔습니다. 강원도에 계셨었는데 당시 오토바이 타고. 그때 말씀 주신 게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체제 전복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이제 실제 언더 조직들의 이제 분포, 대중 조직 이런 것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고. 그 당시에 자신과 사상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실제 정치권에서 어떤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고 이런 것들을 밤새 소주 마시면서 들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과거에 굉장히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구나'라는 것도 인지를 하게 되고. 그러고 나서 곧바로 조국 사태가 터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게 정치적 방향성도 잘못됐고 과거에 가졌던 생각도 잘못됐고 그리고 이제 위선까지 떨고 있구나. 이게 딱 한 번에 인지가 되니까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죠. 서울대에서 이제 집회를 주도해가지고 하게 되고.
▷김하나 매일신문 기자(이하 김하나): 국회의원 목표를 가지고 시민운동 전개했나? 아니면 하다 보니까 된 건가.
▶김근태: 그건 전혀 아니었어요. 당시에 그냥 좀 못 참았던 거죠. 그리고 정치라는 제도권 정치라는 것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그러다가 이제 일이 너무 커졌죠. 일이 너무 커지고 이제 매스컴도 타고 그러다가 '안철수 대표님한테 연락을 받고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라는 연락을 받고. 그렇게 국민의당을 통해서 제도권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이동재: 안철수 의원님, 저희 첫 방송 게스트였어요.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러면 이번에 국회의원 당선이 되셨을 때 그 주변에 같이 이제 그때 활동했던 친구들 주변 사람들 반응은 좀 어땠습니까? 이게 우리가 그래도 해보니까 또 된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거 아니에요?
▶김근태: 네. 근데 사실 저도 그렇고 같이 활동했던 친구들도 많은 상당수의 친구들이 뭐가 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우리의 목표 자체가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기존과 어떤 제가 느끼는 분위기랄지 생각이랄지 그런 게 큰 차이는 크게 느끼지 못했고요.
▷이동재: 저는 이게 좀 궁금해요. 국회의원이 되고 안 되고의 차이. 어떻게 보면은 이제 낙선이 된 그냥 일반인의 삶에서 하루아침에 바뀐 거잖아요. 네 국회의원이 딱 되고 나서 인생에 뭐가 좀 달라집니까?
▶김근태: 아무래도 근데 기존에 알던 분들한테 드라마틱한 어떤 변화가 있지는 않았고요. 그러니까 제가 기존에도 사실 처음 정치를 시작한 것도 좀 멋도 모르고 시작한 측면이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소위 이제 '뽕 맞는다'고 하죠. 좀 그런 게 별로 없었어요. 네. 출마 이제 4번을 받았을 때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런 연장선상에서 저랑 이제 가깝게 지냈던 분들은 그냥 평소처럼 똑같이 대해주시는 거고 새롭게 이제 뵙게 되는 분들은 뭐랄까 '좀 어려워한다'라는 느낌을 좀 받기는 하죠. 어떻게 보면 그리고 평소 제 성격이나 이런 것도 잘 모르시니까. 그래서 어쨌거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국회의원 직위라는 것에 대한 존중이 저한테 느껴지고 그러면서 저도 동시에 이게 진짜 무거운 일이구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동재: 무거운 일이죠. 보좌진들은 그러면은 대부분 의원님보다 어리세요?
▶김근태: 네 그렇습니다. 저보다 누나가 두 분. 처음에는 그렇게 세팅됐었고. 그리고 한 분이 이제 바뀌어서 저보다 나이 많은 분이 세 분입니다. 아주 화기애애하고.
▷이동재: 120일이지만.
▶김근태: MZ방입니다.
▷이동재: 원래 그러면 국회의원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그런 것도 있었을 거 아니에요?
▶김근태: 그래서 어떤 정치권에서 또 4년 반의 시간을 보내면서 가깝게 본 측면들도 있지만 실제 국회의원의 어떤 입법 프로세스랄지 어떤 문제 해결을 해 나가는 그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들을 했었어요. 그래도 좋은 기회를 받았고 근데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이 R&D 예산 이슈에 관련해서 빠르게 준비를 해서 저희가 전문가 의견 청취도 하고 R&D에서 토론회도 열고 그다음에 대정부 질문도 하고 그 이제 입법까지 이어지는 그래도 일련의 어떤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한번 좀 밟아봤고. 그런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재: 좋네요. 최근 보니까 연금 개혁 관련해서도 또 입장 내고 그러셨더라고요.
▶김근태: 네. 맞습니다. 그런 부분이 좀 아쉬운데요. 좀 오랜 기간을 두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제가 숙지하고 여기에 있어서 중간중간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사실 이제 선거 직전에 들어왔고 선거 때까지는 또 이제 정신없었고. 또 그 이후에 이제 연금 개혁 이슈가 갑자기 또 부상하고 그래서 거기에 있어서 '목소리를 내야겠다'라는 이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동재: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안 하세요?
▶김근태: 있죠. 그런 생각이 그런 생각이 있는데. 조급해하지는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더 커서.
▷김하나: 그럼 이번 총선 때는 출마를 안 했는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근태: 당에서 사실 총선 출마를 하는 게 어떻겠냐라고 제의를 해 주셨었어요. 근데 제가 출마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이 세상이 사실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정치 이런 것들도 물론 이제 다들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모여 있고 하지만. 제가 4년 반의 시간을 겪으면서 좀 부끄러웠던 순간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고. 네 근데 그런 '부끄러움들을 추가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라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제가 어떤 내재적인 힘이 없이는 계속해서 정치를 젊은 나이에 이어간다라고 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부끄러운 선택에 휘말리게 되는 일들이 많을 것 같다라는 하나의 직감이 좀 있었고요.
▷이동재: 본인의 신념과 다른 일을 해야 되거나
▶김근태: 국회의원이라든지 직위 주는 힘이 있지만. 저는 그거는 위탁받은 힘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거 플러스 저 자신이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힘이라고 한다면 경제적인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지식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제 내면의 어떤 여유랄지 이런 것들이 있을 수도 있고. 좀 그런 것들을 채우는 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 더 바람직한 길이 되겠다, 이런 생각에서 불출마하는 걸로 결정을 했었습니다.
▷이동재: 알겠습니다. 근데 아까 처음에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고 산업 현장 R&D 이런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 산업 현장이라는 게 본인이 그러니까 공장에서 겪어본 그런 내용들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도 좀 살리고 싶었던 어떻게 보면 우리가 국회에서 모르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공장 일을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국회에 그런 부분들도 좀 잘 아실 것 같아요.
▶김근태: 저는 아버지 그 공장이 사실 1층은 공장이고 2층이 집이에요. 그래가지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제 아버지랑 같이 고등학교 때부터도 일손이 필요하면 일을 했었고. 이렇게 살아왔는데 사실 산업 현장이라고 하기에는 어떻게 보면 좀 거창할 수 있죠. 이제 굉장히 조그만 공장이니까. 근데 제가 좀 해보고 싶었던 것은 정치가 아닌 영역에서의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김근태라는 사람은 좀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이력을 쌓고 싶은 게 있었고. 거기서 제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그 공장을 통해서 자수성가의 느낌으로써 물론 아버지가 먼저 하셨지만 이걸 성공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향후에 정치를 함에 있어서도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동재: 아까 다이아 관련 공장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다이아는 구분을 잘 아시겠네요. 이게 랩 다이아인지 아니면 원래 다이아인지.
▶김근태: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랩 다이아도 천연 다이아랑 사실 특성 자체가 다를 건 하나도 없고요. 그리고 보석을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공업용으로만 좀 접근을..
▷이동재: 공업용 다이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그러면은 정치권이 이제 이번 임기는 이제 보름 정도 남았잖아요. 제조업이라든가 소상공인 이런 부분들은 좀 어떻게 앞으로 지원을 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필드에서 느끼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 아니에요.
▶김근태: 우선적으로는 또 코로나라는 힘든 시기를 또 지나왔잖아요. 그런 것들이 '아직 회복됐다'라고 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정부에서 어떤 정책 금융을 펼치고 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좀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일단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고용이에요. 그래서 이제 기술이 어느 정도 있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그 고용이 쉽지 않기 때문에 왜냐하면 요즘 또 3D 업종을 기피하는 정서가 있고. 그리고 최저임금이랄지 그리고 4대 보험이라 이런 것들도 굉장히 부담이 되고.
▷이동재: 거기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하는 것도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김근태: 그 말도 잘 안 통하고. 사실 어느 정도 숙련을 시켜가는 또 교육 과정들이 필요한데. 업종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지속가능한 고용을 하기가 좀 쉽지가 않죠. 어느 정도 가르쳤다 싶으면 좀 나아갈 수도 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물론 요건은 구체적으로 설정을 해야겠지만. 그런 고용을 할 수 있는 4대 보험이라는 것을 좀 국가에서 지원해 준다든지 아니면 신규 채용을 했을 때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보상을 좀 보충을 해준다든지. 이런 부분들을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여기에 덧붙여서 민주당에서 25만원 얘기를 하면서 소상공인 어렵다 이런 얘기들 하잖아요. 근데 사실 그런 식으로 한 번에 전 국민적인 지원을 하게 됐을 때 물론 필요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인플레이션이 지금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그런 움직임이잖아요. 그런 정책이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섬세하게 고민을 하고 정책들이 펼쳐져 나갔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이동재: 오늘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까 '조금 더 국회의원이 일찍 되셨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좀 있지 않아요?
▶김근태: 조급해야지 안 하려고 합니다.
▷이동재: 알겠습니다. 그럼 결혼 소식 한번 또 저희가 여러 가지 좀 다뤄보려고 하는데요.
▷김하나: 안 그래도 오늘 모신 이유가 2월에 결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데요. 진짜인가요?
▶김근태: 네. 그래서 혼인 신고를 2월21일에 했습니다.
▷이동재: 당선되고 며칠 후에요.
▶김근태: 한 20일 후죠.
▷이동재: 20일 후 근데 결혼을 하셨는데 결혼식을 따로 알리거나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게 보통 우리가 결혼식 그냥 일반인들도 많이 알리는데 국회의원이면 더 알리고 싶을 거 아니에요.
▶김근태: 결혼식을 안 했습니다.
▷이동재: 사모님이 아쉽다 이런 얘기 안 하셨나요
▶김근태: 근데 그전에 사실 2월에 우리가 혼인 신고를 하자라고 이미 결정되어 있던 사안이었어요. 승계랑 상관없이. 그래서 이제 원안대로 갔던 거고. 물론 다른 분들 이제 결혼을 하시는 다른 분들이 택하는 방식에 대해서 제가 비판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저희들이 같이 생각했던 거는 어떻게 보면 허례허식일 수 있는 여지들이 너무 많고. 결혼식을 진행한다는 것에 있어서 하다 보면 또 한도 끝도 없이 추가해야 될 것들이 많이 생길 텐데 그런 것들이 하다 보면 '축의금을 받으면 되지'라는 합리화를 통해서 또 이렇게 하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남의 돈으로 허세부리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 것들을 저희가 원치는 않았었고. 추가적으로 이제 승계가 됐을 때 저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국회의원 신분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면 또 많은 분들께서 물론 축하하는 마음을 저한테 이제 전달해 주시겠지만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현재 제 그릇으로 담을 수 없는 그런 너무 거대한 감사함일 것 같아서 일단 저희가 친한 분들한테만 이렇게 결혼 소식을 알리고 마음만 받고 이렇게 진행을 하자 이렇게 했었습니다.
▷이동재: 그럼 아직 식은 안 치르신 거네요. 가족들하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근데 제가 국회의원들 결혼식 자제분들 결혼식도 많이 가보고 여러 가지 국회 결혼식에 가봤는데 항상 이제 기사도 내고 초대 문자도 하고 계좌도 적어놓고 해요. 이게 그런 거 있잖아요. 사실 국회의원들도 여기저기 돈 나가는 데가 많이 있으니까 속된 말로 됐을 때 '땡긴다' 이런 말 많이 하는데 좀 아쉽다, 아니면 아내분께서 이거 좀 그래도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얘기 안 하셨어요?
▶김근태: 근데 아내의 여동생이 있거든요. 결혼을 했는데 거기도 사실 식을 안 했어요. 그래서 아내의 집안 자체가 이제 결혼식을 안 하는 것에 대한 어떤 장벽이 크지 않았었고.
▷이동재: 아내분이 먼저 제안을 하셨다 이렇게 이해를 해야 되는 거예요?
▶김근태: 그렇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결혼 얘기를 하게 됐을 때 '여동생도 결혼 안 했었고, 자기도 허례허식 이런 거 싫다' '나는 안 하는 방향이 나는 더 좋은 것 같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 저는 '이 여자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동재: 그렇군요. 그러면 정치 활동에 대해서는 아내분이 어떻게 좀 바라봐주고 계세요?
▶김근태: 제가 정치 활동을 하던 중에 만났었어요. 근데 이제 많은 친구들이 그전부터도 이제 소개를 시켜주려고 했을 때 많은 여성분들께서 이제 다 좋은데 '정치는 좀' 이제 그런 반응들을 보이셨다고 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저는 그것도 이제 좀 내려놨었죠. 지금 정치활동에 일단 집중을 하고. '내 짝을 만나는 거는 언제든지 기회가 있겠지' 이런 생각으로 있었는데. 아내는 제가 철학 학교를 6개월 과정을 간 게 있었는데 거기서 같은 수강생을 이제 만났고요. 거기서 이제 서로 만나기로 결정을 하고 또 정치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얘기를 해줬던 게 교수님께서 이제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근태는 이제 당분간 혁명은 좀 힘들다' 유머러스하게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나 봐요. 그래서 이제 끝나고 나서 저를 따로 불렀는데. '오빠 행여라도 나 때문에 하고자 하는 거를 방해되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라고 얘기를 해서 그때도 '이 여자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동재: 제가 이제 갑자기 생각이 드는 게 청년 정치인들이 노총각이 좀 많아요. 장가 가기가 어렵나요?
▶김근태: 아무래도 그 정치 활동이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들이 힘든 길이라는 인식들이 있으니까.
▷김하나: 힘든 길이라는 게 배고픈 길이다?
▶김근태: 배고픈 길이다도 있고 또 신경 써야 될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또 정치라는 게 본인 혼자만 또 하는 게 아니라 그 주변에 가족들이 또 서포팅을 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부분들의 합의를 보는 게 일반적으로 쉽지는 않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동재: 지금 저희 댓글창을 보니까 어떤 분이 결혼 축하드린다고 슈퍼챗쳇을 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리고. 그러면 저희 또 처가 친가 설득을 해야 될 것 같은데 처갓집은 일단 그런 분위기인 것 같고. 친가에서는 부모님이 좀 아쉽다 이런 말씀 없으셨어요? 그래도 (아들이) 국회의원 됐는데.
▶김근태: 저희 아버지는 크게 신경 안 쓰셨고 어머니가 좀 많이 아쉬워하셨습니다.
▷김하나: 뿌린 돈이 있는데.
▶김근태: 그런 측면이라기보다는 내가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웠다는 거를 좀 주변 분들한테 이 결혼식이라는 기회를 통해서 좀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동재: 사실 이렇게 잘 키우고 국회의원까지 됐는데 한번 (주변에) 보여주고 싶은 그런 부분도 물론 있겠죠.
▶김근태: 그래서 잘 설득해서 이제 가족들끼리 그리고 가족 이제 친척들 플러스. 어머니가 진짜 친한 몇 분 그 정도 해서 식사 한번 모시고 그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이동재: 알겠습니다. 그런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도 우리나라 결혼식이라는 게 축의금 회수, 신혼 자본금 축적 이런 게 필요하다 그래서 결혼식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결혼식을 안 했으니까 이제 자본금 축적이 안 됐잖아요. 신혼집 같은 건 어떻게 장만을 하셨어요?
▶김근태: 그래서 이제 부모님 도움을 받은 측면이 있고요. 근데 아직 신혼집이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어요. 왜냐면 이제 원래는 3월 정도에 이제 경기도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승계를 받게 돼서 일단 임기 이후에 그거를 또 생각을 해야 되는 측면이 있고. 부모님 지원을 좀 받을 것 같습니다. 그거 외에도 사실 저도 친구들 축의금 많이 내고 했지만 제가 축하하는 마음에서 한 거지. 넌 언젠가 또 꼭 나한테 좋아해 이런 마음으로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이동재: 저도 여기저기 나간 돈은 많은데 아직 회수를 못하고 있어요. 결혼을 못해가지고 그러고 있는데. 저희 그 부분도 좀 여쭤보고 싶어요. 이제 앞으로 임기가 보름 정도 남았잖아요. 보름 정도 딱 보름 정도 남았죠.
▶김근태: 네 맞습니다.
▷이동재: 끝나면 어떻게 복귀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다시 원래 있던 부모님 일을 도울 건지 아니면 지금 박사를 취득을 하신 거예요?
▶김근태: 박사 수료입니다. 아버지랑 함께 공장을 키우는 일에 좀 집중을 해볼 생각이고요. 근데 정치에 대한 열의는 계속해서 갖고 살아갈 생각입니다. 다만 이제 조금 더 제가 제 소신에 맞게끔 저 내재적인 힘을 가지고 정치를 할 수 있는 시기를 준비해야겠다라는 마음가짐이고요. 학위 같은 경우는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 한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제가 5년 차때 중간에 이제 나오게 된 건데. 한 1년 정도 앞두고 있었어요. 졸업을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2년 정도는 투자를 해야 될 것 같은데 공백기가 있었으니까. 근데 그 학위라는 것만을 위해서 2년의 시간을 온전히 거기에 쏟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 그 2년을 학위를 받는 과정보다 더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길이 충분히 있겠다라는 생각이 있어서. 딱히 미련 두지 않고 이제 산업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 볼 생각입니다,
▷이동재: 박충권 당선인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게 "박사 과정 너무 힘들었다"고 "다 영어라 알아듣지도 못했다. 30%밖에 못 알아들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공부 오래하신 분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공학 발전을 위해서 공부하신 분들.
▷김하나: 어떻게 보면 요즘 청년들이 결혼식은 오히려 좀 성대하게 하고, 오히려 신혼 전에 혼인 신고서를 안 내는 관행이 있잖아요. 근데 정반대로 혼인 신고는 하고, 집은 아직 안 구하시고 식은 오히려 안 한 게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 같은데.
▶김근태: 이게 식을 안 하다 보니까 혼인 신고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좀 강했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혼인 신고를 해버리면 대출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있어서 그렇죠. 좀 유리하지 못한 측면들이 있는 것도 인지는 하고 있는데. 그래도 우리가 식도 안 하는데 혼인 신고까지 안 해버리면 우리의 결혼이 좀 뭐랄까 가벼워지지 않을까. 이제 그리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있어서. 혼인 신고로 하자.
▷김하나: 혹시 청년들에게 결혼식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해보니 이렇더라' 좀 추천을 하시나요?
▶김근태: 추천을 하죠. 저 같은 경우는 그래요. 근데 각자의 또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또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제가 추천한다라고 말씀드리기엔 그렇죠.
▷김하나: 결혼식을 하지 않았을 때 좀 좋은 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김근태: 귀찮은 일이 없죠. 사실. 그러니까 둘만의 관계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고, 사실 주변 얘기들 많이 들어보면 결혼식 준비하면서도 또 굉장히 많이 싸우잖아요.
▷이동재: 그렇죠. 그런 것들도 좀 피해갈 수 있고. 그럼 친구들 만나면 "사실은 나 결혼했어. 유부야" 이렇게 한 명씩 유부남이라고 밝혀야 되는 거예요?
▶김근태: 그렇죠. 웬만하면 좀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또 승계를 받고 나서 연락들이 이제 많이 또 오게 되고. 그때 결혼 소식도 같이 얘기하고.
▷김하나: 결혼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신혼여행은 가시나요?
▶김근태: 아내는 조금 인도 쪽을 가고 싶어 했었는데. 사실 아이도 바로 생겨서. 가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아서 이제 일본에 잠깐 다녀올 생각입니다.
▷이동재: 알겠습니다. 청년 정치인 중에 결혼을 못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고. 그다음에 우리나라 또 청년들이 지금 혼인도 많이 안 하고 아기도 많이 안 낳고 그러잖아요. 청년 정치인들및 우리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에게 결혼에 관련해서 좀 하고 싶은 말, '해라' 아니면 '하지 말아라.'
▶김근태: 근데 사실 제가 이런 말씀을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제 말씀드리기가 참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제 스스로도 제가 일반적인 성격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는 걸 좀 알고 있어서. 저는 사실 좀 어떤 대책 없이 그냥 행동하는 성향들이 있고. 그리고 좀 걱정이라는 것을 많이 안 하는 그런 타입이기도 해서. 저의 길이 무조건적으로 옳고 편하다라고 말씀드리기는 좀 어렵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인생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결혼이라는 것이 주는 이점이 훨씬 더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동재: 그러면 앞으로 남은 보름간의 의정활동 혹시 생각하시는 방향 있으십니까? 법안이라든지.
▶김근태: 그래서 법안은 사실 이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과가 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이제 법안을 내는 것일 테죠. 근데 그런 상황 속에서 진짜 의미가 있는 게 있다면 급하게 준비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계획된 건 없고요. 원래 상임위가 이제 열리기로 예정이 돼 있었는데,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이제 준비는 해놨지만 열리지 않았어요. 그래가지고 남은 시간 동안 이제 저희가 의원실 식구들이랑 원래 스터디를 좀 따로 하고 있었거든요. 각자 책 하나씩 해가지고 돌아가면서 이제 리뷰하고 이런 것들을 하고 있었는데. 일단 그런 시간들 이제 조금 더 집중해서 우리가 지적 콘텐츠를 좀 쌓을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치 현안들 앞둔 것들이 있잖아요. 여기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될지 그리고 어떤 입장을 가져야 될지에 대해서 의원실 직원들이랑 열심히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동재: 최근에 이제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다른 당 의원님들 보면 외유를 하는 경우도 좀 있잖아요. 외국에 이제 여러 가지 연수 같은 걸 다녀오거나. 의원님은 안 가세요?
▶김근태: 가라는 얘기들을 사실 많이들 해주시기도 하는데. 사실 해외여행에 대해서 막 그렇게 큰 욕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좋게 보이는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아무래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도 딱히 미련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동재: 멋있네요. 청년 정치를 하고자 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좀 있으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김근태: 제가 사실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저는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근데 운이 또 작용할 수 있었던 거에 결정적인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도 많이 고찰하는데 좀 몸이 가벼웠던 것이 유효했던 것 같아요. 몸이 가볍다는 것은 무엇이냐면 좀 여러 가지 사람이라면 갖게 될 욕심들이 있고 욕구들이 있고 하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을 저는 좀 가볍게 털어낼 수 있는 성격을 타고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몸을 가볍게 했을 때 조금 더 정치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활동들이 가능해지는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본인들이 가진 방향성은 어떻게 됐든지 간에 본인들의 철학들을 굉장히 공고히 해 나가는 시간을 갖고. 그리고 그런 의미들을 담아낼 수 있는 본인의 어떤 가벼운 몸 이런 것들을 잘 갖고 가시면 의미를 남기는 정치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제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럴 것 같아요.
▷김하나: 네, 저는 좀 위선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좀 인사이트를 많이 받지 않았나 이렇게 전반적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결혼식도 그렇고 정치적인 활동도 그렇고. 위선이란 단어에 대해서 어떻게 좀 보시는지 궁금합니까?
▶김근태: 결국 본인이 느끼는 어떤 부끄러움에 대한 민감도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그 부끄러움을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고 싶어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하고.
▷이동재: 네 그런 것 같아요.
▶김근태: 보다 많은 정치에 계신 분들이 그런 부끄러움에 대해서 무뎌지지 않게끔 자기 자신들을 잘 지켜내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이동재: 앞으로 국민의힘 청년 정치는 잘될 것 같아요?
▶김근태: 응원합니다.
▷이동재: 알겠습니다. 그러면은 저희 시청자 여러분께 짧게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근태: 네, 짧은 4개월의 임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국회의원 김근태입니다. 저를 그전에 보셨던 분들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오늘 이렇게 또 처음 만나게 된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저 같은 경우 앞으로의 삶도 충실히 잘 살아가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언젠가 꼭 정치 영역에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 방송을 통한 간접적인 만남이 좋은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있고요. 언젠가 다시 뵙게 되면 꼭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동재: 알겠습니다. 오늘 출연하신 김근태 의원님이 김근태 전 의원보다 더 유명해지고, 더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런 정치인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김근태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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