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보 연출의 두 번째 작품은 <단명소녀 투쟁기>이다. 연출은 올해 1월 경기도극단 예술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제3회 장막 희곡 공모 당선작인 <부인의 시대>(이미경 작)와 <우체국에 김영희 씨>(박강록 작) 두 편을 낭독극과 입체낭독극으로 선보이면서 경기도극단 작품개발에 시동을 걸어왔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제1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현호정 작, 소설을 오세혁 작가가 각색한 공연이다. 소설은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의 구전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 '북두칠성 단명소년' 설화와 여성서사<단명소녀 투쟁기>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설화는 소년이 등장한다. 신승이 소년의 관상을 보고 열아홉 살에 단명 할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죽음과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과 인간 생사(生死)를 관장하는 남두칠성이 운명을 쥐고 논쟁하는 장면도 등장하고 살고 싶어 하는 소년의 절박함도 보인다. 죽음을 돌파해 운명을 연장한 소년의 남성 중심 설화에서 < 단명소녀 투쟁기>는 여성 서사로 치환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소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 구수정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예언한 사람의 이름은 북두(北斗)다. 북두칠성의 북두를 쓰는 그는 근방에서 가장 용한 입시 전문 점쟁이였다. 종이에 사주를 풀어 확률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진실을 선언하는 반신(半神)이었다. 북두는 점괘로 인간의 사주팔자를 예측하는 점술보다 인간 형상을 하면서도 사바세계 신적 존재다.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반신반인(半神半人)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도 등장한다. 신이면서도 완전체의 신이 될 수 없는 신화속 인물들의 운명은 대체로 비극적으로 끝난다. 스무 살 이전에 단명할 것이라는 예언도 기가 막히지만 '싫다면요?' 하며 예언을 단칼에 거부하고 반신 무당과 맞짱을 뜨고 여행을 떠나는 구수정도 보통이 아니다. 북두는 구수정한테 한마디 한다. "살고 싶으면 남동쪽으로 걸어." 걸어가는 세계는 죽음과 삶이 교차되어 있다. 남동쪽으로 뛰고, 달리고, 걸으면서 만나는 세계는 사후세계를 체험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다. 삶을 개척해 나가는 구수정도 등장하지만 죽음을 택한 이안(이은 분)도 등장한다. 삶과 죽음의 양가적인 여행을 떠나는 세계에 저승 신도 등장하고 사자만큼 커다란 개 '내일'의 등에 올라타고 이계(異界)의 공간으로 연결되는 세상은 우화적이다. 넓은 들판, 저승세계, 저승의 바위 사막, 환상의 섬과 바다를 유람하며 배고파하는 아이들, 노인과 허수아비 인간들, 악사, 청소부, 눈(目,인간), 모기(인간) 등을 만나며 이들을 죽이기도 하고 저승 신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한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구수정의 운명적인 죽음 예언과 이안과 여행을 떠나며 그들 스스로 인간의 형상(모기, 눈, 허수아비)을 닮은 수많은 죽음으로부터 연결되고 있다. 연결의 통로의 끝은 희망의 삶이다.
◆ 김광보의 연극적 형식과 구조, 오세혁의 놀이성
연극은 소설과 서사가 동일하다. 열아홉 살 소녀 구수정(연주하 분)은 반신 북두(北斗)로부터 스무 살 전에 단명할 운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극은 시작된다. 점신으로부터 들은 죽음의 운명을 구수정은 "싫다면요?"라는 한마디로 미신의 운명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환타지 여행으로 헤쳐 나가는 성장드라마 같기도 하고 불교 윤회(輪廻)사상의 의미도 담고 있다. 죽음은 삶으로 연속되기 때문에 <단명소녀 투쟁기>는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소녀의 투쟁기이다. 죽음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마지막 장면처럼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의 투쟁(여행)기에서 꽃상여(황금마차)를 타고 죽음의 길로 떠나는 이안의 죽음으로부터 구수정의 삶도 연속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소멸하면서도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소설의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오세혁의 놀이성으로 스토리 구조를 무대화할 수 있도록 각색을 한 것이 특징이다. 무대는 원형의 공간으로 마당이다. 원형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윤회사상을 공간으로 드러낸다.
연극적인 놀이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했고, 무대 우측으로는 악사들의 공간이다. 악사는 반신 무당의 예언으로 구수정과 이안의 삶과 죽음, 저승 신들을 이어주는 굿판을 벌이는 역할이다. 반신 무당 같은 존재다. 악사들의 소리와 타악 리듬은 현실과 저승세계로 극 중 인물들을 인도하는 소리굿이다. 굿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명부를 쥐고 있는 이계 세상을 현실처럼 쥐락펴락한다. 연극 무대로 옮겨진< 단명소녀 투쟁기>가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길은 환상 동화의 리듬을 여행하는 것처럼 구현된다. 시공간의 변화는 극적 전개의 개연성이 없다. 뛰고 걷다 보면 저승이 되고 현재가 되는 식이다. 북두, 저승 신들의 극 중 인물들 캐릭터는 전통 색동의상으로 반인반수 이미지들을 살려냈다. 연출은 무대 뒤편의 샤막공간을 저승세계로 처리해 이승과 사바세계를 분리하면서도 저승 신들의 놀이 굿판은 현실을 넘나들고 구수정과 이안이 유람하는 바닷길은 푸른 천으로 파도와 바람, 물길을 만들며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커다란 개(犬)는 두 배우( 장정선, 이진혁 분)가 반신(半神)으로 한 몸이 되어 우화적으로 형태화시킨 것은 견공도, 인간도, 육도윤회(六道輪迴)에 따라 윤회 되기 때문이다.
죽음의 캠핑 장면도 현대적으로 장면을 무대화한 것도 두드러졌고, 뱃길이 우화적이면서도 설화적인 이미지로 구현된 장면도 공간을 장면으로 이미지화하는데 연출의 시선이 명확했다.무대에서 백설기 떡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부적처럼 관객석으로 던지는 것도 < 단명소녀투쟁기>가 현대적인 놀이 굿판이기 때문에 그렇다. 고등학생 단명소녀(구수정)은 열아홉 살 운명을 거부하고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며 저승 신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며 투쟁해 나가는 서사는 현실과 환상(죽음의세계 )의 공간을 넘나드는 구수정의 이야기는 청소년들이 성장기에 그 어떠한 시련과 아픔, 운명이 닥쳐도 인생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향을 알려준다. 비법은 "싫다면요?" 라는 한마디다. 김광보 연출의 강점은< 지상으로 20미터>부터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뙤약볕>, <인류 최초의 키스>, <웃어라 무덤아>, <그게 아닌데>, <사막 속의 흰개미>, <물고기 인간>, <벚꽃동산> 등 작가적 서사를 연극적인 구조와 형식으로 무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단명소녀 투쟁기>에서 김광보는 무대를 열린 공간으로 개방화하고 연극적인 놀이로 전진하며 연극구조를 이탈하면서도 구수정과 이안이 만나는 저승세계 공간은 연극적인 형식으로 무대를 확장했다. 이 작품은 김광보의 구조, 오세혁의 놀이성, 단명소녀 투쟁기를 현재화하려는 드라마터그 전강희의 분석과 장점들이 드러나면서도 구수정과 이안이 뛰고 달리며 연결되는 현실과 전생을 체험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세상이 통일성 있는 연출의 형식으로 모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놀이에도 규칙이 있다. 정해진 규칙의 구조 안에서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놀면서도 규칙이 보이는 것은 연출의 불안함이다. 규칙은 연극의 구조이고 놀이는 무대의 개방성이다. 연출은 놀이형식으로 무대를 확장하는 장면들에서 안정적인 구도를 이탈해 불안해 보이고, 김광보를 드러내는 연극적인 구조(저승신)와 악사 장면에서는 연출로 돌아온다. 드라마터그의 작품 시각과 오세혁의 놀이성을 김광보는 무대로 밀착시켜 청소년 처럼 감각시키지 못했고, 각색자가 설정해 놓은 <단명소녀 투쟁기> 놀이의 규칙은 오세혁만이 풀 수 있는 구성이지 않았을까. 희곡을 김광보만의 형식으로 무대화 시켜온 연출로써는 <단명소녀 투쟁기>가 김광보의 무대 투쟁기로 느껴 질 만큼 무대 원형(마당) 구조를 뛰고, 달리는 속도감만큼 놀이로 무장하는 개방적인 무대에 정점(頂點)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청소년 연극을 이처럼, 진지하게 풀어내는 연출도 없다. 경기도극단이 <단명소녀 투쟁기> 작품을 발굴해 가족의 달에 선보이고 있다는 것도 신선한 변화다. 경기도 극단은 8.31~9.8일까지 박주영 연출로 <매달린 집>(미셀트랑블레)로 선보이고 오세혁 각색 김광보 연출로 < 우리 읍내>를 11.6~24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기예술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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