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1시쯤 찾은 구미 도개면 신라불교초전지. 완만한 산줄기를 배경으로 한옥 서너 채가 띄엄띄엄 서 있었다.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거나 정자에 모여 쉬는 관광객 두세 무리가 보일 뿐, 주말인데도 한적했다. 최소 5인 이상 신청해야 이용할 수 있는 사찰음식체험관은 문이 닫힌 채 운영하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옥마다 의(衣)·식(食)·주(住)를 테마로 꾸며 놓은 체험장이 나왔다. 처음 들어간 '의' 공간의 신라인 옷 체험 코너엔 정작 옷은 온데간데없이 텅 비어 있다.
그다음 방문한 '식' 공간. 신라 식문화와 생활상을 체험하는 곳이라는 소개와 달리 제기차기, 캐치 바운스, 고무공 배드민턴 등 신라와 상관없는 놀이도구가 나란히 놓여있다. '주' 공간은 콘텐츠 없이 텅 빈 것도 모자라 전통 가옥에 걸맞지 않은 현대식 장판이 깔려 있었다. 마당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투호 세트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2017년 문을 연 3만6천㎡ 규모의 신라불교초전지는 '신라불교 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간 조성'이라는 취지와 달리 불교문화와 관련성이 적은 콘텐츠가 채워져 있었다.
특히 신라불교의 역사를 전시한 기념관은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안내판 위주여서 가독성이 떨어지고 지루했다. 또 사진을 촬영하면 화면 속 연등 이미지와 합쳐서 보여주는 키오스크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출시된 2G폰으로 찍은 사진 화질 수준이었다.
단체방문 전 사전답사를 온 구미의 한 학원 원장은 "기념관을 둘러봤는데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며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등 학생들이 다른 곳에서도 흔하게 접하는 체험들뿐이라 식상했다"고 말했다.
콘텐츠 매력도가 낮은 기념관은 무료임에도 유료 숙박 체험보다 찾는 사람이 적다. 구미시에 따르면 지난해 한옥 숙박 이용객은 5만6천명이었다. 같은 해 기념관을 찾은 사람은 3만1천명에 그쳤다.
정태흥 구미시 관광인프라과장은 "지금 당장 콘텐츠 리뉴얼 계획은 없다"면서도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진 않았지만 초전지 주변 빈집들을 매입한 뒤 장기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라불교초전지처럼 3대 문화권 사업 45개 중 전시·체험관이 있거나 조성할 계획인 경우는 82%(37개)에 달한다. 그야말로 3대 문화권 콘텐츠의 핵심은 전시·체험이다. 이들 사업 내 전시·체험관 수는 모두 41곳이고, 이중 현재까지 36곳이 문을 열었다.
문제는 식상하고 부실한 콘텐츠로 사업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운영되는 전시·체험 시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시물 상당수가 '낡은 것'이 돼 간다는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2018~2020년 사이 23곳이 집중적으로 문을 열었는데, 공교롭게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에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경상북도 관계자는 "도내 사업들 가운데 대대적인 리뉴얼을 추진하는 곳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콘텐츠가 빈약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리뉴얼을 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원안의 사업 취지와 달라질 수도 있어 문체부에선 승인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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