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박민규 작가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경험한 만큼 보이는 게 세계'라고 썼다. 그는 인상 깊게 본 만화로 '메이드 인 경상도'를 꼽은 적이 있다. 대구 출신 김수박 작가가 송현동, 달성공원 등 대구의 이곳저곳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그린 작품이다. 예컨대 1980년 5월의 광주를 대구가 어떻게 인식했는지도 실려 있다. 대구에서는 광주를 알기 어려웠다.
대도시에서 살다 보면 시골의 진면목을 알기 어렵다. '메이드 인 경상도'라는 동명의 타이틀로 제작된 유튜브 영상도 그렇게 기획된 듯했다. 구독자 수 3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연재물이다. 최근 경북 영양을 소재로 제작한 이들의 35분짜리 영상이 호된 비판을 받았다. 소멸해 가는 지방 소도시를 조명한다는 기획 의도와 거리가 멀었던 탓이다. 혹평만 늘어놓다 3시간 만에 돌아갔다. '도파민 제로 시티'라는 부제도 붙였다.
이들의 도파민 분출은 음식에서 막혔다. 영양군에서 유명 체인점의 입점을 금지한 게 아님에도 햄버거 체인점이 없다는 둥,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둥 다소 공격적인 언행이 이어졌다. 노이즈 마케팅도 홍보라고 우겨본들 모멸감만 커진다.
영양은 산나물의 성지다. 식당에서 산나물 무침 몇 가지는 기본 반찬이다. 알고 갔다면 어수리나물 한 접시쯤은 거뜬히 받았을 것이다. 주로 봄철 어린 순을 먹기에 요즘이 제철이다. 유명 유튜버가 특산물을 알고 왔다면 영업시간 이후라도 금세 무쳐 내 홍보하려 했을 것이다. 영양의 산나물 인심이 그 정도는 된다.
이들은 "지역 명소가 많음에도 한적한 지역이란 콘셉트를 강조해 촬영했고 콘텐츠적 재미를 가져오기 위해 무리한 표현을 사용했다"며 영상을 올린 지 일주일 만에 사과했다. 개그맨이 직업적 굴욕을 맛볼 때는 못 웃겼을 때다. 자료 조사가 부실하면 콘텐츠는 부실해진다. 콘텐츠 하나에 몇 날 며칠 기획 회의를 거치고 애쓰는 유튜버들의 악전고투를 익히 들은 터라 기이하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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