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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35>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아름다움과 관계하는 법

이경규 계명대 교수

책
책 '어린 왕자'(열린책들 펴냄)의 표지.
이경규 계명대 교수.
이경규 계명대 교수.

'어린 왕자'는 어른을 가르치는 아이 현자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현상에 매몰되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른 말이다. 책이 출판되자마자 세계의 독자들은 어린 스승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어린 왕자 자신의 배움이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배움이다.

어린 왕자는 쓸쓸하고 슬플 때 석양을 바라보곤 한다. 위안을 주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석양의 아름다움은 거리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다. 주체와 대상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가 없다. 장미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미적 차원이 열린다. 어린 왕자는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에서 피어나는 장미꽃에 감탄한다. 아름답고 특별하다. 물을 주고 바람막이를 세워준다. 둘 사이에 사랑하는 관계가 싹튼다. 그러나 장미는 꽃(꼴)값을 하는지 허영심이 강하고 까칠하다. 심지어 거짓말까지 하며 언행의 모순을 드러낸다.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석양과는 다른 아름다움이다.

말하자면 어린 왕자는 장미의 아름다움과 가시의 공존을 이해하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에 집을 떠나 여행길에 오른다. 세속에 물든 어른들의 별 여섯 개를 거쳐 지구별에 도달한다. 여전히 장미를 사랑하고 있기에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그러다가 어떤 정원에서 장미 오천 송이를 발견한다. 유일하고 특별한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장미가 수많은 장미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때 여우가 나타나 한 수 가르쳐준다.

여우는 '길들이기'(apprivoiser), 즉 관계론을 설파한다. 관계란 서로에게 길듦으로써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한다. 길든다는 것은 자아를 내리고 상대를 올리는 것이다. 길들어진 관계는 상대의 미를 심화하고 확장한다. 예를 들면, 여우가 금발의 어린 왕자와 관계를 맺게 되면 노란 밀밭에서도 어린 왕자가 생각나고 그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이 사랑스러워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인내심과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기꺼이 시간을 들여야 한다. 둘만의 시간은 추억을 만들고 추억은 권태를 막는 아름다움이 된다. 이제 어린 왕자는 관계 맺음 없이 막연히 존재하는 정원의 수천 송이 장미는 공허할(vid) 뿐이라고 선언한다.

여우는 다시 아주 단순한, 그러나 중요한 비밀 하나를 말한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민한 어린 왕자는 이것을 바로 아름다움에 적용한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이고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샘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아름다움은 여리고 파손되기 쉽다. 그래서 보호받을 필요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 왕자는 불현듯 고향에 두고 온 장미를 떠올린다. 귀향을 서두른다. 누구든 자신이 왔던 곳으로 가장 빨리 되돌려보낸다는 뱀에게 물려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사과나무 밑에서 나온 뱀은 에덴의 뱀처럼 치명적이지만 인식을 매개한다.

어린 왕자는 어른의 선생 노릇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 자신이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지구를 떠난다. 그는 배운 대로 정성껏 장미를 돌보고 양을 키우며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그럴수록 그의 작은 별은 더욱 빛난다. 뱀에게 물려 흔적 없이 사라진 어린 왕자의 마지막에 대해 논란이 많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소설의 메시지를 생각하면 그의 주검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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