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힘 라이시(64)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에 이은 사실상 2인자로 꼽혀온 인물이다. 라이시 대통령 사망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가자 전쟁 등으로 살얼음판을 걸어온 중동 정세가 다시 한번 요동치는 등 파장이 예상된다.
◆안개 등 악천후 속 비행하다 추락
이란 정부는 20일(현지시간) 에브라힘 라이시 자국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란 정부는 이번 사고로 헬기에 동승했던 대통령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 타브리즈 지역 성직자인 금요 기도회의 이맘 아야톨라 알 하솀, 말리크 라흐마티 동아제르바이잔 주지사 등이 함께 숨졌다고 전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이란 내각은 이날 오전 성명을 발표하고 "아무런 차질 없이 국정이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각은 "지칠 줄 몰랐던 아야톨라(고위 성직자가 수여받는 칭호) 라이시의 정신으로 국가에 대한 헌신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 주(州)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타브리즈의 정유공장으로 이동하다가 디즈마르 산악 지대에서 변을 당했다. 사고 헬기는 짙은 안개와 폭우 등 악천후 속에 비행하다가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헬기는 추락으로 완전히 불에 탔다고 외신이 전했다.
사고 신고를 받은 이란 당국은 65개 수색·구조팀을 급파했으나, 짙은 안개와 폭우 등 악천후와 험난한 지형으로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었다.
◆강경 보수 성향의 성직자 출신
강경 보수 성향의 성직자 출신인 라이시 대통령은 2021년 8월 취임했다. 현재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1970년 팔레비 왕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이슬람 혁명 2년 뒤인 1981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에는 반체제 인사 숙청을 주도했다.
지난 2021년 8월 취임 이후 근 3년간 시아파 맹주 이란의 초강경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을 이끌어왔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이란 당국은 2022년 시작된 이른바 '히잡 시위' 국면에서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또 가자전쟁 중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영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는 등 대외적으로도 초강경 이미지를 굳혀왔다.
이란 헌법은 대통령의 유고시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50일 이내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은 이란 12명 부통령 중 가장 선임인 모하마드 모크베르에게 일단 승계되며, 그는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WP가 전했다.
◆중동 정세 살얼음판 격량 예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면서 살얼음판 같은 중동 정세에 또 한 번 시계제로의 격랑이 휘몰아칠지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물론 이란과 관계를 정상화한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도 향후 전개될 상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란과 대척점에 서며 각종 제재 등을 주도해온 미국으로서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돌발 상황이 향후 미칠 여파에 셈법이 복잡해 보인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고가 이란 내부에 불러올 영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히잡 시위 등 반정부 봉기 및 수백만명의 지난 3월 총선 투표 보이콧이 보여준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 고조, 사상 최저치로 추락한 통화 가치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 등 미국의 제재로 인한 경제 악화 등을 불안 요소로 꼽았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라이시 대통령이나 (헬기에 동승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이 사망하거나 무력화되더라도 핵 프로그램이나 가자전쟁에 대한 우려 등 뜨거운 지정학적 이슈와 관련한 이란의 입장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란이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역내 긴장을 임계점까지 몰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란은 최근 미국과 오만에서 고위급 간접 회담을 열어 역내 긴장 완화와 핵 프로그램 문제 등을 논의한 바 있다.
NYT는 지난달 미사일과 드론을 활용한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이란의 보복 공격이 대부분 실패한 것이 사실상 의도된 것일 수 있으며, 이란이 전면전으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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