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제 헬기 부품 못구해서?…이란 "제재 탓"에 美 반박 '신경전'

이란 "항공산업 제재가 사고 불러"…미국 "이란이 악천후 비행 결정"
최고권력층 승계 하메네이 둘째 아들 거론…국내외 상황 겹쳐 홍역 예상

20일(현지시간)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을 애도하는 시민들이 테헤란 시내에 모여 있다. 이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앞으로 5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을 애도하는 시민들이 테헤란 시내에 모여 있다. 이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앞으로 5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이 국내외로 일파만파 충격을 주고 있다. 헬기 추락 사고 원인을 두고 미국과 이란이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란 국내에선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혼란도 감지되고 있다.

◆헬기 부품 못구해?…이란·美 '신경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사망한 헬기 추락 사고가 미국과 이란의 책임 공방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미국의 제재가 노후 헬기 추락을 초래했다는 목소리가 이란 내에서 나오고 일부 서방 전문가도 연관성을 제기하지만, 미국은 이를 일축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라이시 대통령의 목숨을 앗아간 헬기 추락 사고가 "기술적 고장(technical failure)"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의 항공산업에 제재를 가한 미국이 이번 추락 사고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IRNA 통신이 전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왔는데 여기에는 이란이 서방으로부터 수십년간 항공기와 예비 부품을 사지 못하게 한 미국의 조치도 포함돼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하지만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악천후로 묘사되는 상황에서 45년 된 헬기를 띄우기로 한 결정의 책임은 이란 정부에 있다"며 미국 책임론을 반박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미국의 제재로 이번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사고 원인에 대해 "이란 사람들이 조사하고 있고, 할 것이며, 우리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 헬기는 미국의 벨 헬리콥터(현재 벨 텍스트론)가 1960년대 말부터 생산한 벨 212기종이다. 이 기종은 전 세계에서 443대가 운용되고 있으며 평균 기령은 42년이다.

20일(현지시간)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애도식이 열린 테헤란에서 여성들이 라이시 대통령의 포스터를 들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을 포함한 이란 고위 각료들은 전날 아제르바이잔 국경 지대에서 탑승한 헬기가 산악 지대에 추락하면서 사망했다.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애도식이 열린 테헤란에서 여성들이 라이시 대통령의 포스터를 들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을 포함한 이란 고위 각료들은 전날 아제르바이잔 국경 지대에서 탑승한 헬기가 산악 지대에 추락하면서 사망했다. 연합뉴스

◆최고권력층 승계 놓고 홍역 전망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이란이 최고권력층 권력승계 때문에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20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동 안보 전문가들은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를 두고 이란 체제에 불안정성 및 유동성이 심화할 것으로 진단했다. 사망한 라이시 대통령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5세) 최고지도자의 후계자로 사실상 낙점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란 최고지도자는 전체주의 국가인 이란을 통솔하는 최고 권력자로서 안팎 어려움에 맞서 체제를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국장인 알리 바에즈는 "체제 내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라이시를 후계자로 키우다가 갑자기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 초안을 다시 그리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일단 라이시 대통령을 대신할 유력한 최고지도자 후보로는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55)가 거론된다.

하지만 최고권력을 지닌 성직의 세습을 두고 이란 내에서 논란이 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싱크탱크 요크타운연구소의 샤이 카티리 선임 연구원은 "전임 최고 지도자들이 세습 권력에 정통성이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며 "지금 와서 최고지도자 세습을 이란인들에게 설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고지도자 승계 구도를 다시 짜는 과정은 이란에 닥친 안팎의 위기 속에 이뤄지고 있어 더 주목된다.

이란 내부에서는 경제난, 개인적 자유에 대한 통제, 사생활 억압 때문에 국민의 불만이 누적된 상태다. 히잡 의문사를 계기로 촉발된 전국적 반체제 시위가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수십년간의 '그림자 전쟁' 양상에서 벗어나 직접 충돌하는 첨예한 사태까지 벌어지고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중국, 러시아가 맞서는 진영구축이 심화하고 있다.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이란 전문가인 트리타 파르시는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란이 불안정한 시기에 들어가면서 긴장 완화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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