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3시쯤 김천 증산면 무흘구곡전시관. 김천 시내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차로 40분이 걸려 도착했다. 석가탄신일 휴일임에도 관광객은커녕 주민들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2017년 12월 세워진 전시관에는 안내 직원이 보이지 않았다. 작은 책상 위에 출입자명부와 볼펜 하나만 놓여있었다. 한쪽 벽면에 있는 '문화체험실 소식통' 게시판은 텅 비어 있었다.
1층 전시실도 초라했다. 첫 전시부터 조명이 꺼져 어두컴컴했고, 일부 스크린 화면과 키오스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무흘점빵, 무흘문고, 문화체험실로 구성된 2층 역시 불이 꺼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무흘구곡이란 조선 중기 학자인 한강 정구가 경북 성주와 김천에 걸쳐 흐르는 제1곡 봉비암부터 제9곡 용추까지의 절경을 읊은 시를 가리킨다. 무흘구곡의 총길이는 35.7㎞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긴 구곡이다.
무흘구곡전시관은 3대 문화권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무흘구곡 경관가도'의 대표 시설이다. 이 사업에 2012~2017년에 걸쳐 국비 75억원을 포함해 모두 116억원이 투입됐다. '무흘구곡의 다양한 가치를 관광 자원화한 문화 공간 조성을 통해 선조들이 풍경 향유 방식을 발견한다'는 취지다.
100억원 이상의 혈세를 들였음에도 무흘구곡전시관은 무관심 속에 방치된 모습이었다. 지난해 방문객은 578명에 그쳤다.
전시관을 둘러본 뒤 방문한 제5~9곡 역시 관광 명소화에 실패한 모습이었다. 각 곡엔 관련 시비(詩碑) 조형물과 포토존 안내판, 벤치 정도만 있을 뿐이라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기 힘들었다. 제7곡 만월담처럼 화장실이 없거나, 제8곡 와룡암같이 주차장이 없는 등 기본적인 시설마저 갖추지 못한 곳들도 있었다.
이날 오후 4시쯤 방문한 제5곡 사인암에선 오랫동안 방치돼 지저분한 텐트 옆에서 식사하는 나들이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 식수대는 일부 기둥이 뽑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후 방문한 제7곡 만월담 역시 장애인전용 주차면의 주차블록이 깨지거나, 두 개 중 하나가 없는 등 관리가 미흡했다. 입구에는 버려진 누더기 이불이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 4월 2일 첫 방문 때 본 나뭇가지에 걸린 까만 비닐도 그대로였다.
제7곡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엔 경북 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된 '한강 무흘강도지' 입구가 있다. '쓰레기 불법투기 금지'라고 쓰인 팻말이 있음에도,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쓰레기가 경관을 해쳤다. 배출 요일 및 시간을 준수하지 않아 경고스티커가 붙은 쓰레기 봉지도 보였다. 제9곡 용추폭포의 경우 연석 4개가 분리된 채로 방치돼 있기도 했다.

대부분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근린공원 역할도 못 하고 있음에도, 무흘구곡전시관과 5~9곡에 사용되는 시설유지보수비로만 매년 평균 6천만원 상당의 세금이 쓰이고 있다.
꼭 필요한 시설 보수만 하고, 지자체에서 홍보 및 활성화 방안 마련에 관심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김천시는 무흘구곡 관련 홍보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도 않고, 전시관 리뉴얼 계획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천시 관계자는 "무흘구곡전시관은 시 차원에서도 2층 체험실 대관 활성화 계획 등을 수립했지만 지리적 특성상 이용객이 많지 않아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천 사례처럼 시설의 노후‧방치는 3대 문화권 사업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제다. 관광지들은 개장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시설이 낡고 정책적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개장한 41개 사업 중 이미 5년 이상 지난 곳이 65.9%(27곳)에 달한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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