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에 직면했던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탄핵안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할 게 확실시되자 스스로 사임했다. 당시 세 가지 탄핵 사유 중 첫 번째는 '사법 방해'였다.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를 도청하려 했던 것보다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지연시키고 거짓 진술한 것을 더 큰 잘못으로 본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도 마찬가지로 사법 방해가 발단이 됐다. 백악관 인턴과의 성관계 등 성 추문 자체보다는 사건 증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증거를 은폐하면서 사법절차를 방해했다는 점을 무겁게 본 것이다. 2016년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러시아와의 대선 개입 공모설에 대한 특검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재임 중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의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는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결정할 정도로 중대 범죄로 다뤄진다. 이 법은 거짓 진술과 증거 은닉 등 수사 과정이나 재판 절차를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으로 사안에 따라 5년 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며, 이 때문에 원래 저지른 범죄보다 사법방해죄로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경우도 많다.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도 사법방해죄가 존재하지만 우리 법에는 없다. 비슷하게 '공무집행방해죄' '위증죄' 등이 있지만 공무 집행 방해는 폭행이나 협박 등에 해당되고, 위증은 법률에 의해 선서를 한 증인에 한정되기 때문에 사법 과정 전반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처벌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법무부와 검찰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사법방해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었다.
최근 사법방해죄 도입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음주 뺑소니'로 여론을 들끓게 만들고 있는 김호중 사태 때문이다.
음주 뺑소니 사고 이후 김호중의 대응은 그야말로 사법 방해의 종합 선물 세트다. 매니저가 김호중의 옷을 입고 경찰에 출석하며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했고, 사고 이후 음주한 것처럼 꾸미려 맥주를 구입해 추가 음주를 했으며, 소속사에서는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폐기하는 등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각종 행위가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술을 마셨다는 정황이 쏟아지는 가운데 음주 사실을 꾸준히 부인한 점, 그럼에도 공연을 강행하는 모습 등은 '괘씸죄'까지 더해져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이원석 검찰총장은 사법 방해 행위에 엄정 대응할 것을 전국 검찰청에 지시했다. 이 총장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사법 방해에 대해 증거인멸 위조 및 교사 등 관련 처벌 규정을 적극 적용하고, 구속 사유 판단에 적극 반영하라"며 "공판 단계에서도 구형에 반영하고, 검찰 의견을 적극 개진하며 판결이 여기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소하는 등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음주 사고 후 추가 음주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이른바 '김호중법'을 법무부에 입법 건의했다.
김호중법이 사법 방해 행위 전체를 처벌하진 못한다. 법적 공백을 이용해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는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이때마다 사법방해죄 도입 필요성도 함께 논의될 것이지만, 이 제도가 또 다른 형태의 검찰권 강화라는 점 때문에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사법방해죄 도입이 결국 검찰의 국민 신뢰 회복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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