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농삿일로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힘들때마다 꿈속 찾아와 웃음꽃

손옥희 시인의 어머니 고(故) 신경란 씨

손옥희(오른쪽) 시인이 39세 때 친정집 큰방에서 어머니(신경란)와 함께한 모습. 손옥희 씨 제공
손옥희(오른쪽) 시인이 39세 때 친정집 큰방에서 어머니(신경란)와 함께한 모습. 손옥희 씨 제공

7년 전 떠나가신 어머니가 너무 그립습니다. 저는 경북 포항시 장기면 영암2리라는 조그만 어촌 마을에서 5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종갓집 외동아들이라 귀하게 자라셨고 젊은 시절 군청에서 근무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열일곱에 흰 고무신을 싣고 예물로는 재봉틀을 가지고 시집을 오셨습다.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데려다주시고 가시며 고생할 딸 때문에 울며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직장을 그만두셨고 일을 할 줄 모르셨습니다. 농토가 너무 많아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께서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5남매이지만 집안이 너무 엄격해서 다른 집 형제들이 편하게 장난치며 사는 모습이 늘 부러웠습니다. 그래도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큰언니는 시집을 가고 큰오빠가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농토 반을 팔아서 대구에 집을 사서 작은 언니, 작은 오빠를 데리고 살고 저는 부모님과 살았습니다.

어린 내 눈에는 늘 고생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며 그 삶이 힘든 일상이라서 가슴이 아파 몰래 울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가산을 모두 팔고 대구에 이사를 왔는데 다 팔고 온 돈을 모두 사기를 당했습니다.

남들에게 돈 10원도 빌리지 못하시는 아버지는 모든 것을 절약하며 사셨습니다. 큰오빠와 작은 언니가 돈을 벌어서 집안을 먹여 살리고 작은 오빠와 나는 학교에 다녔기에 늘 어머니는 돈 걱정을 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몸이 약해 자주 코피를 흘리고 아파도 병원에 못가 2, 3일씩 누워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웠지만 늘 곰국을 끓여주시고 인진쑥을 끓여 마시게 하고 환으로 만들어 끊임없이 나를 먹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날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다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버스 노선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 양쪽에 목발을 잡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는 우산들 손이 없어서 비를 맞으며 서있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나중에 커서 시집가면 장애인과 결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모님께 말을 했더니 크게 반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우시며 반대하시고 저는 16일을 굶으며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굶어 죽을까 봐 결국 허락해 주셨고 저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을 갔습니다.

결혼하고 1년 반쯤 지나서 갑자기 남편이 귀가 들리지 않고 귀 때문에 어지러워 힘든 삶을 이십몇 년을 살았습니다. 그 삶을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저기 먼 곳에 가시기 5년 전까지 울다 가셨습니다.

살아생전 부모님께 용돈 한 푼 제 손으로 드린 적이 없고 어버이날 생신날을 챙겨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도 남편에게 눈치한번 준 적 없습니다. 항상 시부모님께 잘하고 남편에게 잘하고 자식 하나있는거 잘 키우라는 말씀을 볼때마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남편이 인공와우 수술을 해서 어지러운 증세가 사라지고 말도 잘 알아듣는데 어머니가 안계십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멀리 떠나시고 꿈속에 빛난옷을 입고 활짝 웃으며 오셨습니다. 지금도 제가 힘들때마다 꼭 꿈속에 찾아오십니다. 그곳에서도 제 걱정을 하시나 봅니다. 늘 그립고 보고싶은 어머니. 이제 제 걱정 그만하시고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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