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누구일까요?"
도슨트(미술관 내 작품 설명 자원봉사자)의 질문에 학생들이 여기저기 손을 들며 작품 속 인물들을 가리켰다. 지난 25일 오전에 찾은 대구학생문화센터 e-갤러리에는 '르네상스를 알면 미술이 보인다'전이 열리고 있었다.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를 향해 학생·학부모 10여 명이 고개를 들고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르네상스 시대로 떠나는 여행
'르네상스를 알면 미술이 보인다'전은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자체 기획한 전시로, 김정민 교육연구사를 중심으로 13명의 지역 현직 교사들이 직접 전시 기획에 참가했다.
지난해 열린 '한국미술사'와 '조선미술사' 전시에 이어 이번 전시 주제는 '르네상스'다. 르네상스는 14~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 부흥 또는 문화 혁신 운동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화를 이상으로 삼아, 중세 시대 신(神)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관점으로 돌아간 것이 특징이다.
갤러리에는 르네상스 3대 거장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부터 치마부에의 '성모자상', 브루넬리스키의 '두오모 성당의 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까지 총 32개의 명작들이 전시돼 있다.
학생들은 여권 모양의 팸플릿을 들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등 마치 세계 여행을 하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도슨트가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는 작품 해설을 들려주기 때문에 미술작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걱정을 버려도 좋다. 또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온 가족 미술 나들이' 프로그램에는 전시 기획에 참여한 교사가 직접 작품을 소개하는 도슨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시에 참여한 초등학교 3학년 조서연 학생은 "전시를 보는 중간중간 작품에 대한 퀴즈를 내고 맞추는 활동이 재밌었다"며 "도슨트를 통해 작품과 작가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으니 작품에 대해 이해가 더 잘 됐다"고 말했다.
◆미술 즐기며 수학·과학도 배워
이번 전시는 현직 교사들이 전시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미술 교사뿐만 아니라 국어·수학·과학·역사 교사들도 함께 모여 전시의 완성도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전시 기획 테스크포스(TF) 팀을 꾸려 전시 4개월여 전부터 주제를 정하고 사전 조사를 진행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작품을 중심으로 각자 파트를 나눠 조사한 후 자료를 취합, 전시를 위한 미술작품을 선정하고 작품 관련 체험활동을 구상했다.
학생들이 작품을 보면서 교과목에 나오는 다양한 원리들을 학습할 수 있도록 교과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 작품을 통해 2차원 평면에 공간감을 더해주는 원근법과 소실점의 원리를 배우고,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에 나온 볼록 거울을 통해 오목렌즈와 볼록렌즈의 과학적 원리를 배우는 식이다.
또 뒤러의 '멜랑콜리아'에 나온 마방진(가로·세로 4칸씩 이루어진 정사각형에 1부터 16까지의 수를 겹치지 않게 넣어 가로·세로·대각선 위에 놓인 네 수의 합이 모두 같아지게 하는 수의 배열)을 통해 수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통해 1대 1.618 황금비율과 빛의 특성을 연구한 광학까지 알 수 있다.
이날 도슨트로 참여한 구경민 도원중 교사는 "초등학생 관객들이 많아서 수학·과학적 원리들이 어려울 수 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배경지식을 쌓아두면 상급학교에서 배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 온 학부모 김현아 씨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을 미술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접하다 보니 아이들이 실생활에서 더 잘 적용할 수 있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활동 통해 이해도 높여
전시를 관람한 후 학생들은 팸플릿에 있는 활동지를 통해 전시에서 익혔던 내용들을 한 번 더 복습한다. 미술작품을 보며 다양한 원리들을 학습하는 교과 연계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작품에 나타난 속담 찾기, 개념에 대한 괄호 채우기, 명암 나타내기 등 활동지를 다 채우면 여권에 도장을 받듯이 팸플릿에 도장을 찍을 수 있다.
특히 갤러리 곳곳에 미술작품과 관련된 풍성한 콘텐츠가 마련돼 있어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 구분하기, 모나리자 포토존에서 사진 찍기, 볼록·오목 거울 체험하기, 미니 판화 제작하기, 미술작품으로 만들어진 퍼즐 맞추기 등 르네상스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활동들이 조성돼 있다.
학생들은 도슨트의 전시 소개가 끝난 후에도 오랜 시간 갤러리에 머물며 체험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중학교 1학년 김민준 학생은 "초등학생 여동생 두 명과 함께 지난주에 왔는데 퍼즐이 너무 재밌어서 또다시 전시회를 찾았다"며 "체험활동을 하다 보니 미술작품들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학생문화센터는 다음 달 14일까지 '르네상스를 알면 미술이 보인다'전을 개최한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오는 8월에는 현직 교사들이 참여한 전시 2탄인 '인상주의를 알면 예술이 보인다'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배호기 대구학생문화센터 관장은 "르네상스는 우리와 관련이 없는 과거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현재 진행형인 것 같다"며 "e-갤러리에서 14~16세기 르네상스로의 여행은 끝이 나지만 전시장을 찾는 학생들의 르네상스는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응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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