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11시. 대구 중구에 위치한 카페 러브모드는 입장을 기다리는 방문객 수십여명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구름 인파를 따라 걷자 겨우 보이는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의문의 사진 행렬이 펼쳐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노랫소리.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OOO 생일축하 합니다"
OOO는 다름 아닌 아이돌의 한 멤버. 이날 '카페 러브모드' 에서는 아이돌 OOO를 위한 생일카페가 열렸다. 생일카페. 줄여서 '생카'라 불리는 이 문화는 아이돌 팬덤에서 시작된 것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최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카페를 대여해 그 곳을 아이돌의 사진이나 굿즈로 꾸미는 것을 말한다. '덕질'을 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다소 새로운 세상일 터. 이에 기자는 '생일카페' 세상을 직접 찾아 세세히 탐구하고 왔다.
◆생일카페 직접 가봤더니 "새로운 문화 참 재밌네"
"와! 전시회 같아요" 생카를 경험한 기자가 내뱉은 첫 마디. '카페 러브모드'의 내부는 아이돌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생카'의 의도는 자신이 덕질하는 '최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생일파티를 준비할 때를 생각해보라. 그가 좋아하는 음식, 그가 좋아하는 선물로 가득 채우지 않았던가. '생카'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카페 러브모드 대표 이지영 씨는 "행사 날짜와 콘셉트가 정해지면 해당 아이돌이나 캐릭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서 전체적인 꾸밈, 소품 그리고 음료나 디저트 등 메뉴를 정해요"라고 말했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팬들을 보며 기자는 생각한다. '생일자가 오는 것도 아닌데, 생일 카페에 왜 이렇게 많은 팬들이 오는거지?' 실제로 10대로 보이는 청소년들은 양손에 종이가방과 노래 앨범을 들고 들뜬 표정으로 입장했다. 또 몇몇은 아이돌의 포스터와 굿즈 등 사진 앞에서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빴다.
생카를 주최한 진OO 씨(29)는 "가까이서 좋아하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하니 같은 마음인 팬들과 함께 축하해주고 싶어서 생카를 열게 됐어요. 내가 이 아이돌의 디렉터가 된것처럼 기획하고 실현해본다는게 새롭고 재밌는것 같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카페 내부에는 아이돌 얼굴이 박힌 종이컵과 사진, 스티커, 앨범, 손목띠들 등이 즐비했다. 이를 '특전'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의뢰인이 준비해 오는 경우가 많고, 이는 구입도 가능하다. 이날은 럭키드로우 행사도 열렸는데 스크래치 카드를 긁어서 나오는 상품. 아니 '특전'을 받을 수 있었다. 꽝이 없다는 말에 기자도 긁어보는데, 팬이 아니더라도 또 하나의 문화를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생일 주인공에 따라 콘셉이나 내용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뉴진스의 민지와 해린은 5월 생이기 때문에 '여름과 함께 찾아온 소녀들' 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웹툰에서 농구선수로 그려진 박병찬의 생일에는 농구대가 설치됐고, 뮤직비디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던 플레이브 은호의 생일에는 오토바이가 세워졌다.
행사 성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엔시티드림 7주년 행사에는 멤버도 7명, 행사도 7일 동안 열어보자고 생각하니 '7'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 컨셉으로 정해졌다고. "777이라는 숫자를 보니 슬롯머신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카지노를 콘셉트로 꾸밈을 진행했어요"
◆사장님도 덕질 N년차 "손님 마음 누구보다 이해"
'카페 러브모드'에 손님이 줄 잇는 이유에는 이 대표의 덕후력도 한몫한다. 덕후는 덕후가 알아 보는 법. 이 대표도 사실 덕질 N년차다. "덕후로서 서울에 집중돼 있는 행사들이 참 안타까웠어요" 실제로 생일카페는 서울이나 경기도 쪽에 밀집됐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콘서트나,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생활이 수도권에 몰린 이유와 비슷할 테다.
"그래서 생일카페 주 방문자인 1020 친구들이 대중교통으로도 편하게 올 수 있는 시내 중심가로 위치를 정했고, 전시가 메인인 생일카페의 목적에 맞게 원하는 콘셉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인테리어에 집중했습니다"
보통 주말 예약이 많아 생일 카페는 한 달에 평균 4건 정도 의뢰가 들어온다. 즉 상시매진이라고 보면 되는데, 의뢰가 들어오면 이 대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덕질'이다. "만화나, 웹툰, 애니, 아이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일 카페 예약이 들어와요. 그러면 아이돌이면 직캠을, 만화면 만화책을 탐독해요. 웹툰 203화를 3일만에 다 본 적도 있답니다" 행사를 여는 주최자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행사의 주인공은 생일 당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일 당사자에 대한 확실한 공부 덕분에 카페 러브모드의 '생카'는 '들인 돈이 아깝지 않다'는 후기들이 줄잇는다.
'덕후력 만렙' 이 대표는 손님들과 통하는 것도 많다. 생일 카페는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길면 1년 전에도 예약 문의가 들어온다. 행사의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준비 기간이 긴 영향이다. 이 때문에 사장님과 손님은 오랜기간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하는데 이런 관계 형성에 있어 카페 러브모드는 큰 메리트를 지니고 있다.
"생일 카페 의뢰가 들어오면 제가 더 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에요. 저도 누군가의 팬이고, 덕질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손님들과의 소통이 수월한 편이죠" 행사가 끝나고도 인연을 이어가는 손님만 수십명이다. 올 2월 생카를 의뢰했던 민OO 씨(26)는 "사장님이 덕질에 대해 이해도가 있으셔서 척하면 척! 이에요. 덕질에 대한 기본 지식이나 정보가 있으니 조언도 많이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평상시엔 일반 카페, 인근 직장인들 사이 '커피 맛집'
카페 러브모드는 행사가 없는 평일에는 일반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생일 카페로 방문했던 손님들이 재방문 하는 경우도 많지만, 인근 직장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카페라고. "생카 행사 중에도 예약제가 아니면 카페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들어왔다가 당황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라며 즐기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커피도 커피지만 시그니처 메뉴가 특히 인기있다. 바로 '블루 밀크티'. 블루밀크티는 밀크티에 블루베리가 있는 음료로 과일이 씹히는 재미가 있다. 지영 씨가 직접 만드는 쿠키나 푸딩 같은 디저트 메뉴도 인기다. 처음 오픈 했을 때는 컵케이크나 마들렌, 휘낭시에 같은 구움 과자들도 판매를 했었지만 이벤트 위주의 카페를 운영하다보니 모든 면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현재는 일부만 판매 중이라고.
생일 카페를 나오는 길. 생일 카페를 받는 주인공이 부럽기도, 열어주는 팬들의 열정이 멋있기도…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그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누가 내 생일 카페도 열어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슬며시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내 본다. "혹시 일반인도 생일카페를 여는 경우가 있나요?" 우스갯 소리로 던진 말이었는데 돌아온 답변은 꽤나 묵직했다.
"일반인은 아니지만, 얼마전 서울에서는 세종대왕 탄신일 때 세종대왕 생일카페가 열렸어요. 세종대왕님은 모두가 존경하시는 분이시잖아요. 누군가는 '덕질'하는 이들을 보고 유난이다 유별나다 생각하겠죠.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그 대상이 아이돌일 뿐인 개 아닐까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동경하고 사랑하고 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부모님일 수도 있고, 존경하는 선생님일 수도 있고요. 다양한 문화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뢰도 언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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