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는 그 기원을 중국의 전통악기인 생(笙)에 두고 있다. 기원전 1천100년부터 쓰였다고 하는 생은 밑부분에 금속제 리드(떨림판)가 달린 여러 개의 대나무 관을 박통에 박아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내는 악기로, 하모니카처럼 비브라토, 벤딩, 트릴링 등 다양한 기법으로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뛰어난 표현력으로 인해 생은 중국 왕실에서 인기를 얻었고, 곧 다른 아시아 국가로 보급됐으며, 우리나라의 전통 관악기인 생황도 생이 토착화된 것이다.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서 무역상에 의해 생은 유럽에도 전해졌으며, 이를 보고 여러 사람이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악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중에 아코디언의 기본형태를 발명했다고 알려진 부시만은 날숨으로 단음만 연주하는 하모니카의 원형을 만들었고, 이어서 몇 년 후에 리히터라는 사람은 들숨과 날숨 모두를 이용하여 소리를 내는 뱀퍼라는 이름의 악기를 만들었는데, 이는 오늘날 블루스 음악에서 많이 사용되는 하모니카와 유사하다.
하모니카의 대량 생산은 1829년 빈에서 시작돼 유럽의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갔다. 독일의 트로싱엔에서 시계공인 메스너와 그의 사촌이 남는 시간에 하모니카를 만들어 크게 성공하자, 이를 본 호너라는 트로싱엔의 다른 시계공도 메스너를 찾아와 제작 기술을 배워 하모니카 사업을 시작했다. 호너는 사업가로서 뛰어난 수완을 가져, 경쟁자들의 사업을 인수했고, 1862년에는 가장 큰 시장이 된 미국으로 하모니카를 수출하기 시작해, 1877년까지 70만 개에 이르는 하모니카를 판매했다고 한다.
하모니카의 대중화에는 미국의 남북전쟁이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 있다. 하모니카는 전쟁터의 군인들이 휴대하기에 좋았고, 남군과 북군 모두는 하모니카로 자신들을 위로하고 지루함을 달래려 했던 것 같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하모니카가 군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지, 미군들에게 지급되었던 컴포트 키트(생활용품 모음)에는 바느질 도구, 면도용품 등을 따로 넣는 주머니와 함께 하모니카를 넣는 주머니가 따로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연합군과 적군을 막론하고 하모니카는 전쟁의 고통을 잊게 하는 완화제였다. 1945년의 기록에 의하면, 전쟁 중에 물자가 부족해 하모니카 생산이 줄자, 한 미국 병사는 태평양 어딘가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여기서는 해가 지고, 밤이 되어도, 한참이 지나서야 취침 시간이 됩니다. 불을 켤 수 없어, 장기나 카드놀이는 꿈도 못 꿉니다. 그래서 온갖 기억으로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뇌의 한 부분에는 한때 하모니카로 인한 흔적이 남겨져 있고, 주변에는 하모니카에 능통한 토스카니니가 적어도 세 명이나 경쟁 중입니다. 감미로운 음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그중 한 사람이 하모니카를 연주할 때면,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요. 98센트짜리 4부 합창단과 교향악단 덕분에 참호 안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시겠지요? 연주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 외로운 장병들은 숨을 죽이고 감정에 휩싸인 채 모여듭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지만, 하모니카를 보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합니다."
하모니카는 깜깜한 밤의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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