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우영의 새론새평] 대선 평가의 기억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0년 남짓 전 한 정당의 대통령선거 평가를 제의받고 며칠 동안 고민의 늪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무거운 과업이었고 꼬리표를 달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컸다. 그러나 선거 평가의 기틀을 세워 정치 발전에 기여하리라는 공의심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게다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평가를 전폭 지원해서 당을 혁명적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리고 석 달 가까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절박함과 좌절의 시간을 겪었다. 패배의 원인을 들추어내며 퍼즐을 맞추는 일은 간난신고 그 자체였다. 어찌 되었건 소임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온 뒤 대선평가보고서는 당 홈페이지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금번 총선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한 국민의힘이 평가를 결단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패한 것도 서러운데 치부를 드러내겠다는 각오를 세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화도 없다.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 엄중한 평가는 패한 정당이 마땅히 들어야 할 독배다. 더 중요한 점은 반쪽 평가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총선 평가의 범위에 정부를 향한 민심의 부침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 집권 초기에 지지율 30%대에 턱걸이한 정부를 앞세워 승리한 집권당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임 물리기 공방에 민심은 싸늘하다. 적대적 분열을 멈추고 평가의 원칙부터 세워야 한다. 첫째 원칙은 평가자의 적절성이다. 금번 총선을 이끈 지도부의 일원이 평가의 책임을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당권 욕심을 드러냈다면 평가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다시 말해 부적격 평가자라는 말이다.

조정훈 총선백서 TF 위원장은 인재영입위원으로 활동했고 당권 의지를 내비치다 마음을 접었다. 다수의 당내 인사가 주축이 되고 외부 위원이 들러리를 선 모양새도 좋지 않다. 이런 진용은 개혁적 의사결정을 저해하기 쉽다. 아울러 정치학자와 데이터 분석가 외에 전문성을 갖춘 평가자가 보이지 않는다. 자칫 물타기용 인선이라는 비판을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 원칙은 평가 목표의 적절성이다. 선거 패배의 원인을 복기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22대 총선에 국한된 평가는 문제 해결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에서 치러진 거의 모든 선거에서 패하고 대선에서 겨우 승리했다. 그마저 야당 후보의 비리 의혹에 기댄 승리였다. 그리고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와 22대 총선에서 연패했다. 개헌 저지선을 지킨 것이 기적이었다.

더욱이 대통령 임기 단축 공약과 집권당 내의 대통령 탈당 요구는 레임덕을 예고한다. 이처럼 패배의 DNA가 들어박힌 허약한 보수 정당은 한국 정당사에 국민의힘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이 구조화된 패배를 벗어나기 위해 구태를 부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셋째 원칙은 평가 시각의 적절성이다. 답안을 미리 써 놓고 끼워 맞추는 것이 평가는 아닐 터이다. 따라서 평가도 전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는 저열하기 짝이 없다. 국민은 안중에 없이 진영 지키기에 혈안이 된 탓이다.

총선에서 패한 일차적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에게 물어보라. 현 정부 집권 동안 당정 관계가 어떠했는지도 국민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연판장 돌리기로 당내 민주주의가 어떻게 몰락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 모든 내부 폐습을 외면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보수 정치에 미래는 없는 것이다. 평가의 척도는 바로 민심이다.

집권 2년 동안 비대위만 네 번째인 정당을 정상 집단으로 여기는 국민은 없다. 양당제가 아니라면 국민의힘은 변방으로 내쳐졌을 것이다. 그래서 양당을 비난하면서도 결국 양당을 선택하는 국민의 혜량에 용서를 구하는 것이 평가의 출발점이다. 또한 여지없이 무너진 보수의 가치와 정체성을 복원하는 시간이 곧 평가의 시간이다.

국민의힘은 통치자의 사당이 아니라 정부와 동행하는 공당이다. 이 순리를 벗어나면 '지난 대선은 친문 때문에 졌고 이번 총선은 친명 공천 때문에 이겼다'는 개딸 식의 궤변으로 평가가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유불리만으로 평가 결과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정쟁 속에 보수 재건의 초석이 되어야 할 평가보고서는 누더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의 대선 평가의 기억은 여전히 절박함으로 남아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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