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굿바이 클롭" 그가 떠나기 전에 직접 가본 리버풀 테마여행

쇠락한 항구도시에 문화로 도시재생
리버풀 FC 홈구장 투어 쏠쏠한 재미
‘비틀즈의 도시’ 답게 관련 명소 즐비

지난 5일(현지시간) 리버풀과 토트넘의 2023-2024 EPL 36라운드 경기가 열린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 스타디움의 모습.
지난 5일(현지시간) 리버풀과 토트넘의 2023-2024 EPL 36라운드 경기가 열린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 스타디움의 모습.

얼마 전 영국 프로축구 구단 리버풀FC의 9개 시즌을 이끌어가며 팀에게 또 다른 전성기를 안겨준 위르겐 클롭(Jurgen Norbert Klopp) 감독이 고별전을 치렀다.

"클롭이 떠나기 전에 직관 한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 첫 만남보다 오래된 인연과의 이별이 훨씬 어렵듯, 중학생 때부터 리버풀을 응원해 온 동생의 말 한마디에 우리 남매는 올해 예정에 없던 영국 여행을 떠나게 됐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런던과 달리, 리버풀에선 축구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들은 3일 간 뭘 하면 좋을지 감이 안 와 각종 여행기를 파헤쳐 얻은 정보를 나눠보려 한다. 살면서 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복잡한 수도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던 영국의 유서 깊은 항만도시 리버풀에 다녀왔다.

영국의 서부에 위치한 리버풀은 런던에서 기차로 약 3시간을 달리면 도착한다. 오른쪽은 리버풀의 관문 라임 스트리트 역.
영국의 서부에 위치한 리버풀은 런던에서 기차로 약 3시간을 달리면 도착한다. 오른쪽은 리버풀의 관문 라임 스트리트 역.

◆쇠락한 항구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영국의 서부에 위치한 리버풀은 런던에서 기차로 약 3시간을 달리면 도착한다. 우리나라 지형에 비교하자면 런던은 밀양, 리버풀은 인천과 위치가 유사하다. 북대서양과 인접한 지리적 장점으로, 산업혁명 이후에는 영국 최대의 무역 항구로 성장했다. 첫 항해 중 침몰해 1천517명이 숨진 비운의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실제 모항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에 이어 석탄에서 석유로 산업구조가 변모하면서 도시는 20세기 중반부터 쇠퇴기를 겪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고자 시에서는 기능을 다한 건물이나 시설물에 문화, 예술을 접목시키는 도시재생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리버풀 대표 선착장인
리버풀 대표 선착장인 '알버트 독'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재탄생했다. 1864년 비싼 선박과 화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이곳은 1980년대 재개발을 통해 리버풀을 대표하는 복합문화단지로 자리 잡았다.

리버풀 대표 선착장인 '알버트 독'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재탄생했다. 1864년 비싼 선박과 화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이곳은 1972년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폐허로 남겨졌다. 부두의 역할은 끝났지만, 1980년대 재개발을 통해 세계적인 예술 재단 테이트의 미술관을 비롯해 해양 박물관, 노예 박물관 등의 명소와 식당,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리버풀을 대표하는 복합문화단지로 자리 잡았다.

옛 건물과 현대 건물이 조화로운 알버트 독의 전경.
옛 건물과 현대 건물이 조화로운 알버트 독의 전경.

한때 해상 무역 중심지로 잘 나갔던 과거를 간직한 옛 창고 건물에서, 오늘날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으니 성공한 사업 사례인 셈이다. 실제로 이곳은 연간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고 있다. 도심에서 도보로 2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리버풀에 왔다면 맑은 날과 흐린 날 모두 방문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산업혁명 때부터 이어져 온 붉은 벽돌의 건물이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하늘과 푸른 하늘에서 각각 다른 건물인 것처럼 어울리기 때문이다.

흐린 날의 알버트독도 운치 있다. 세계적인 예술 재단 테이트의 리버풀 미술관도 있다.
흐린 날의 알버트독도 운치 있다. 세계적인 예술 재단 테이트의 리버풀 미술관도 있다.

◆8천km 저편에서 오게 만든 명문 구단

처음으로 돌아가 이 도시와 인연이 닿을 수 있게 해준 축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팀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태도에 대단히 화가 난다. 나는 축구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확신한다." 수천km 떨어진 세계 각지에서도 유니폼을 챙겨 이곳을 찾는데, 종주국 영국 사람들은 축구를 상상 그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리버풀 FC의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 투어를 신청해 1일 콥(리버풀 서포터를 지칭하는 말)이 돼보았다.
리버풀 FC의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 투어를 신청해 1일 콥(리버풀 서포터를 지칭하는 말)이 돼보았다.
안필드 구장 주변 바닥 블록, 건물 외벽 등 곳곳에 새겨진 구단의 역대 기록과 트로피 자랑(?)을 발견할 수 있다.
안필드 구장 주변 바닥 블록, 건물 외벽 등 곳곳에 새겨진 구단의 역대 기록과 트로피 자랑(?)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리버풀과 토트넘의 2023-24 EPL 36라운드 경기가 있기 하루 전날, 리버풀 FC의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 투어를 신청해 1일 콥(리버풀 서포터를 지칭하는 말)이 돼보았다. 입장 전 구장 주변을 둘러보는데 바닥 블록, 건물 외벽 등 곳곳에 새겨진 구단의 역대 기록과 트로피 자랑(?)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잉글랜드 구단 중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 구단이자 유일하게 빅 이어(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우승컵의 별칭)를 영구 소장(3회 우승 또는 통산 5회 우승)한 클럽이 리버풀이다.

본격적인 투어를 위해 입구로 들어서면 오디오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아쉽게도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투어를 위해 입구로 들어서면 오디오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아쉽게도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는다.

본격적인 투어를 위해 입구로 들어서면 오디오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아쉽게도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지만, 태블릿의 안내에 따라 자율적으로 구경하면 된다. 투어는 구장 위까지 올라가서 경기장 전경을 찍고 내려와 가까이서 다시 경기장을 보는 순서로 진행된다.

올해 2월 증축을 완료한 이곳은 메인 스탠드와 맞은편, 양옆의 스탠드까지 모두 합해 총 6만725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올해 2월 증축을 완료한 이곳은 메인 스탠드와 맞은편, 양옆의 스탠드까지 모두 합해 총 6만725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빌 샹클리-밥 페이즐리-조 페이건-케니 달글리시-제라르 울리에-라파엘 베니테즈, 그리고 위르겐 클롭으로 이어지는 리버풀 감독 '명예의 전당' 구간을 지나면 벌써 경기장 전경을 내려다볼 시간이다. 올해 2월 증축을 완료한 이곳은 메인 스탠드와 맞은편, 양옆의 스탠드까지 모두 합해 총 6만725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삼성 라이온즈 파크가 2만4천석 정도이니 얼마나 큰 규모인지 체감된다.

스타디움 투어에서는 프레스룸 등을 구경하며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스타디움 투어에서는 프레스룸 등을 구경하며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실제 선수들처럼 입장 전
실제 선수들처럼 입장 전 'THIS IS ANFIELD' 액자도 꼭 터치해야 한다. 기자는 아쉽게도 액자에 닿는데 실패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프레스룸, 인터뷰 공간, 선수들 라커룸이 있는 드레싱룸 등을 구경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리버풀 팬이라면 입장 전, 실제 선수들처럼 'THIS IS ANFIELD' 액자도 꼭 터치해야 한다. 다른 포토존보다도 이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가장 길었다. 가장 낮고, 가까운 곳에서까지 경기장 구경을 하고 나면 투어는 끝이 난다. 가격은 23파운드(한화로 약 4만원)로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즐길 거리가 풍성하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만 모인 곳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에너지가 가득한 공간이다.

얼마 전 축구팀 리버풀 FC의 9시즌을 이끌어가며 팀에게 또 다른 전성기를 안겨준 클롭 감독이 고별전을 치렀다.
얼마 전 축구팀 리버풀 FC의 9시즌을 이끌어가며 팀에게 또 다른 전성기를 안겨준 클롭 감독이 고별전을 치렀다.
리버풀 시내의 한 대형서점엔 비틀즈와 리버풀 FC 공간이 따로 마련돼있다.
리버풀 시내의 한 대형서점엔 비틀즈와 리버풀 FC 공간이 따로 마련돼있다.

◆5파운드 받고 점심공연에 선 소년들은…

리버풀 시내의 한 대형서점엔 비틀즈와 리버풀 FC 공간이 따로 마련돼있다. 축구팀은 연고지라 그렇다 해도, 비틀즈는 왜?

1960년 리버풀에서 그 전설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멤버 네 명이 전부 이곳 출신이지만, 비틀즈가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리버풀이 곧 비틀즈의 도시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버풀을 통하는 관문인 공항도 '리버풀 존 레논 공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영국 최초로 사람 이름이 붙은 공항이다. 아직까지도 이들의 흔적을 찾아 방문하는 팬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는 비틀즈와 관련된 명소도 즐비하다.

우선 세계 최대 규모의 비틀즈 박물관인 '비틀즈 스토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 알버트독의 재개발 과정에서 개관한 곳 중 하나이다. 입장료는 20파운드(한화로 약 3만4천원)로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충분히 둘러본다면 3~4시간 정도 소요될 만큼 비틀즈의 역사를 잘 재현해 놓았다. 실제로 멤버들이 사용했던 악기, 의상, 손으로 쓴 악보 등도 전시돼있어 다녀온 팬들은 그 돈이 아깝지 않다고.

알버트독 인근의 비틀즈 동상.
알버트독 인근의 비틀즈 동상.

또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비틀즈 팬이라면 꼭 가봐야 할 성지 '캐번클럽'도 있다. 이곳은 리버풀에서 결성한 비틀즈가 초기에 주로 활동했던 라이브 클럽으로, 1961년부터 2년간 무려 292번이나 공연을 한 곳이다. 당시 5파운드를 받고 점심시간 무대에 올랐던 네 명의 소년들은, 2년 뒤 마지막 공연에서 300파운드의 출연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퀸, 롤링 스톤스, 오아시스 같은 전설부터 아델 같은 최근 아티스트들도 이곳을 거쳐갔다. 지금까지도 입장료 5파운드에 술과 라이브 공연을 즐길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비틀즈 동상 뒤편의 영국 최초 마천루인 로얄 리버 빌딩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제5의 멤버가 된 듯한 기분은 덤이다.
비틀즈 동상 뒤편의 영국 최초 마천루인 로얄 리버 빌딩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제5의 멤버가 된 듯한 기분은 덤이다.

기자 본인처럼 비틀즈의 유명한 노래들만 알고, 문화를 향유한 세대는 아니라면 인증샷 명소에서 사진만 남겨보는 것도 좋다. 알버트독 인근의 비틀즈 동상에선 뒤편의 영국 최초 마천루인 로얄 리버 빌딩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비틀즈 제5의 멤버가 된 듯한 기분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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