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발해조선의 역사(25)

발해조선·상나라·고죽국이 숭배한 세 발 달린 검은 새 '삼족오(三足烏)'

한나라 때 건립한 무씨사당 화상석에 새겨진 삼족오, 무씨사당은 치우족의 사당이다.
한나라 때 건립한 무씨사당 화상석에 새겨진 삼족오, 무씨사당은 치우족의 사당이다.

원시사회에서 인류는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신비한 역량을 지닌 식물이나 또는 동물을 자신들 씨족의 조상신 혹은 보호신으로 여겨 숭배했는데 이를 토템이라고 한다.

'시경'의 상송(商頌) 즉 상나라를 찬미한 시가 가운데는 "하늘이 현조에게 명하여 내려와서 상나라를 탄생시켰다(天命玄鳥 降而生商)"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현조란 우리말로 바꾸어 말하면 검은 새를 가리키는데 검은 새가 어떻게 상나라를 탄생시킬 수 있겠는가.

'좌전' 소공 17년 조항에 "소호(少昊) 시대에 봉조씨(鳳鳥氏), 현조씨(玄鳥氏), 청조씨(靑鳥氏), 단조씨(丹鳥氏) 등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는 상고시대에 새를 토템으로 한 여러 씨족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시경'에 말한 "검은 새가 상나라를 탄생시켰다"라는 기록은 검은 새를 토템으로 한 현조씨족에 의해서 상나라가 건국된 사실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겠다.

'시경' 상송에 나오는 현조를 봉황이라고 할 경우 소호시대에 봉황을 토템으로 한 봉조씨가 이미 존재했으므로 이와 중복된다.

주희는 '시경'의 주석에서 "현조는 제비이다(玄鳥 鳦也)"라고 하였는데 상나라를 탄생시킨 현조를 제비라고 할 경우 상징성이 너무 빈약하다.

그러면 상나라를 건국했던 현조씨족이 토템으로 했던 현조는 과연 어떤 새일까.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가 아닐까 여겨진다.

다른 동물은 다리가 둘이거나 넷인 데 반해 삼족오는 특이하게 다리가 셋으로서 신비하다. 이 세 발 달린 검은 새는 어떤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역량을 지닌 새라고 믿어 씨족사회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특별히 3수를 숭배했던 동이족의 사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중국지도에 하북성 노룡현을 경유하는 청룡하, 옛 현수가 보인다
중국지도에 하북성 노룡현을 경유하는 청룡하, 옛 현수가 보인다

필자는 발해만의 하북성 진황도시 북대하 노룡현 일대, 옛 고죽국이 있던 지역이 발해조선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누차에 걸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시경'의 상나라 탄생을 찬미한 시가에 등장하는 "현조생상(玄鳥生商)"의 전설이 공교롭게도 노룡현 지역에서 유행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왜 노룡현에서 이런 전설이 유행하는 것일까. 사마천 '사기' 삼대세표(三代世表)에 "설의 어머니가 자매들과 현구수에서 목욕했다(契母與姊妹 浴于玄丘水)"는 기록이 보인다.

설(契)은 상나라를 건국한 국조로 말해지는데 그의 어머니가 자매들과 함께 현구수에서 목욕했다는 것은, 먼 옛날 상나라의 조상들이 현구수 부근에 거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현구수란 어떤 강인가. 현수(玄水)로 비정된다.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경내를 구비쳐 흐르는 청룡하가 바로 고대에는 현수로 불렸다.

'수경주(水經注)'에 "현수가 서남쪽으로 고죽성(孤竹城) 북쪽을 경유하여 서쪽으로 유수에 유입된다(玄水 又西南徑孤竹城北 西入濡水)"라고 말했는데 지금의 청룡하인 옛 현수는 난하(灤河) 즉 옛 유수(濡水)의 지류로서 도림구(桃林口) 장성(長城)을 경유하여 노룡현 경내로 진입하였다.

'수경주'에 말한 현수가 경유한 고죽성은 현재의 노룡현이고 노룡현은 고조선의 발상지이다. 그러므로 노룡현의 청룡하를 배경으로 유행하는 현조 전설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고조선의 발상지에서 유행하는 삼족오 전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북성 노룡현의 삼족오 전설,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다

하북성 노룡현에서는 "현조생상"의 전설을 하북성의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신청하였고 2009년 중국 정부에서는 이를 승인하였다. 비물질문화유산이란 우리나라로 말하면 무형문화유산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노룡현의 삼족오 전설이 하북성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노룡현의 청룡하 즉 옛 현수 유역을 '시경'에서 말한 현조 전설의 발상지로 보는 데 중국 정부가 동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은나라의 도성 유적 은허(殷墟)는 하남성 안양에 있지만 은나라의 산실 즉 발상지는 옛 고죽국 고조선 지역, 현재의 노룡현 일대라는 사실을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공인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현재의 노룡현은 4,000년 전 고조선이 여기서 건국했고 상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기 전 여기서 터전을 닦았으며 다시 백이 숙제의 나라 고죽국이 뒤이어 여기서 건국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사달(朝陽)에서 발견된 '중화용조(中華龍鳥)'는 고조선의 삼족오다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발해만의 노룡현을 중심으로 삼족오 전설이 유행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발해만 일대는 조류의 지상낙원으로 불린다.

특히 하북성 노룡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요녕성 조양시(朝陽市)가 있는데 조양의 조(朝)는 아사, 양(陽)은 양달로서 조양은 우리말 아사달의 한자표기로 본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악산 아사달은 단군조선의 제2기 도읍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조양시 조류화석박물관에 전시된 중화용조 화석
중국 조양시 조류화석박물관에 전시된 중화용조 화석

그런데 이곳 조양시 즉 아사달에서 세계최초의 조류화석이 발견되었다. 중국 정부에서는 이 새를 '중화 용조中華龍鳥'라 명명하였고 여기에 요녕조양조화석국가지질공원(遼寧朝陽鳥化石國家地質公園)을 건립하여 세계적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세계 최초의 조류화석이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중화'라는 명칭을 앞에 붙인 것이고, 새는 새이지만 일반 새와는 다른 특이한 새이기 때문에 '용조'라고 호칭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조양은 중원과는 멀리 떨어진 동북방의 고조선 아사달 지역이다. 특히 고조선의 토템은 삼족오였던 점을 감안 한다면 이 세계 최초의 새는 중화 용조라기 보다는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고조선의 삼족오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조양시는 노룡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발해조선의 중심지대인데 이 일대는 상고시대에 조류의 서식지였고 지금도 새들의 지상낙원으로서 조류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발해조선이 새를 토템으로 했던 것은 이런 지역적 특성과도 관련이 깊어 보인다.

◆삼족오는 발해조선, 상나라, 고죽국의 토템이다

"후예가 태양을 향해 활을 쏘니 태양조(太陽鳥)인 삼족오가 떨어졌다(羿焉彃日 烏焉解羽)"는 기록이 '초사(楚辭)' 천문편(天問篇)에 나오는데 삼족오는 중원이나 한족의 유물유적 가운데서는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현재 발해유역의 고조선 발상지 하북성 노룡현에 삼족오 전설이 유행하고 있고 단군조선의 수도 아사달로 여겨지는 조양시에서 삼족오 화석이 발견되었다.

태양을 숭배했던 발해조선 사람들은 삼족오를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조 또는 태양에서 온 사자라고 믿고 이를 태양숭배의 연장 선상에서 숭배하였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는 고구려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삼족오 토템을 계승한 것이다.

한나라 때 건축한 산동성의 무씨사당 화상석(畫像石)에도 삼족오가 보인다. 무씨사당은 상나라 시조 치우 후손들의 사당이고 치우는 현조씨족의 수령이다.

상나라의 조상들은 동북방에 거주하던 동이족이며 이들은 고조선과 함께 태양조인 삼족오를 토템으로 삼은 조이족(鳥夷族)이다. '시경'에 말한 상나라를 탄생시켰다는 현조는 제비가 아니라 삼족오이고 그 역사의 현장은 노룡현이다.

태양을 숭배한 고조선과 상나라의 태양조 토템, 즉 삼족오 토템은 고죽국으로 전승되었으며 그 역사 전설이 오늘날 노룡현의 청룡하 유역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발해만의 고조선이 삼족오의 발상지라는 것은 조양시의 조류화석이 발견됨으로써 고고학적으로 입증됐다. 하북성 정부가 노룡현에 전해오는 현조 설화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노룡현이 삼족오의 발상지임을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고조선의 토템이 곰이라는 반도사학의 주장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shimbg20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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