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탈당설이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탈당해 거국 내각 구성 등의 방식으로 정국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진화에 나서는 등 탈당설에 선을 긋고 있다. 정치권도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 중대 결심할 수 있다"
대통령 탈당설이 불거진 데는 홍준표 대구시장 페이스북 내용이 역할을 했다. 홍 시장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여당이 대통령을 보호하지 못하고 지리멸렬 하면 윤 대통령은 중대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당으로서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과 한 몸이 되어 윤 대통령을 보호하지 못하고 중구난방으로 제각각일 때 윤 대통령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은 여당조차 되지 못하고 소수당으로 전락하게 되고 잡동사니 정당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홍 시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시점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해병대원 특검법 재의 표결 이틀 전이었다. 안철수 의원 등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재의 표결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예고한 탓에 여권에 긴장감이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4·10 총선 이후 홍 시장이 윤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이 알려진 탓에 홍 시장의 대통령 탈당설은 윤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해병대원 특검법이 부결되면서 홍 시장이 여당 내부 결속을 노린 정치 레토릭(수사)으로 이해되지만 여권에 던진 파장은 만만치 않다.
탈당설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거취와도 관련이 있어서다. 윤 대통령과 갈등설이 불거진 한동훈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될 경우 대통령이 탈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잇따라 대통령 탈당설에 입장을 밝히면서 진화에 나섰다.
황우여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28일 '윤 대통령 탈당설'에 대해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면 대통령이 탈당을 생각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이 있다면 내 임기 내에서는 그건 반대한다. (대통령과 여당은) 한 몸으로 가야 하는 게 우리의 헌법 구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윤계'인 이철규 의원도 "대통령은 우리당 1호 당원이고 정권 교체에 앞장선 사람이다. 특정인이 당대표가 된다고 탈당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 우리 당을 갈라치기하려는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탈당 잔혹사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이 잇따라 탈당을 했다.
역대 대통령이 탈당한 이유는 차기 대선 주자와 갈등이 가장 컸다. 겉으로는 '선거 중립', '국정 전념' 등으로 치장했지만 물밑에는 신구 권력 간 갈등이 존재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2년 9월 민주자유당 명예총재직을 내려놨다. 역대 대통령이 임기 중 탈당한 첫 케이스였다. 노 전 대통령의 탈당은 당시 김영삼 후보의 중립 내각 요구, 김대중 후보의 탈당 요구로 이뤄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15대 대선을 41일 앞두고 탈당했다. 이회창 당시 후보와 극심한 갈등이 원인이었다. 1997년 10월 이회창 당시 후보는 검찰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하자 기자회견을 통해 YS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포항에서 'YS 인형 화형식'까지 불거졌다. YS는 11월 탈당을 통해 여권과 결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16대 대선을 227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최규선 게이트와 세 아들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당에 부담이 커지자 2002년 당적을 포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7대 대선을 294일 앞두고 탈당했다. 임기 말 지지도 추락이 대선판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여당의 공세에 밀려 당적을 정리했다. 그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내가 당에서 나올 이유가 어디 있었느냐. 당에서 사실상 쫓겨났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탈당 없이 임기를 마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인용 9개월 뒤 탈당이 아닌 출당 형식으로 당에서 나왔다.
◆탈당 가능성 없어
역대 대통령 탈당 전력을 보면 윤 대통령도 탈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현재로선 탈당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첫째,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 탈당한 역대 대통령은 임기 1년 미만을 앞두고 당적을 버렸다. 2022년 5월 10일 취임한 윤 대통령 임기는 2027년 5월 9일까지다. 3년이 남았다. 당적을 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적을 버리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국회에 우군이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 탈당 후 신당 창당도 현실적이지 않다. 취임 후 곧바로 신당 창당에 나섰으면 상황이 달라졌다. 힘이 더 있고, 지지율이 더 높았던 취임 직후가 신당 창당의 적기였다.
둘째, 탈당을 하면 거대 야당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22대 국회에서 거대 야권은 김건희 여사 특별법, 해병대원 특별법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법적 근거도 없는 '탄핵'을 들먹이며 대통령을 위협하고 있다.
탈당을 하게 되면 이 같은 상황을 대통령실이 직접 통제해야 한다. 현재는 여당이 야당과 협상이라도 가능하지만 탈당 순간 대화도 쉽지 않다. 여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대통령을 쫓아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탓에 동반 탈당 의원 규모도 기대에 못 미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탈당은 정치적 도박이다.
결국 윤 대통령은 108석의 여당을 관리하면서 거대 야권의 압박을 견디며 버텨야 한다. 여당을 이끌고, 야당과 협상을 벌이는 고도의 정치력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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