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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이상헌 세종본부장

이상헌 세종본부장
이상헌 세종본부장

고금리, 고물가로 서민경제 어려움이 커지면서 현금서비스 등 신용카드 대출연체율이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카드 대출연체율은 지난 2월 말 기준 3.4%로 10년 만에 가장 높다. 20년 전 카드 사태 때의 역대 최고치(3.8%)를 경신할 가능성도 있다.

40조원에 이르는 카드론 잔액은 이미 역대 최다를 기록 중이다. 신용점수가 낮은 취약 계층이 제2금융권 대출마저 막히자 어쩔 수 없이 카드대출로 내몰린 탓이다.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위험이 시나브로 확대되고 있다.

신용카드의 개념은 에드워드 벨라미가 1888년 쓴 베스트셀러 '뒤돌아보며'(Looking backward)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공상소설에선 자본주의가 아니라 계획경제의 결제 수단으로 등장한다. 1인당 연간 배급 규모 안에서 쓴 만큼 차감되는 방식이다.

신용을 기반으로 돈을 빌리고 갚는다는 설정도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20세기가 되면 과학기술 발달로 유토피아가 이뤄져 화폐는 개념만 있지 유통되진 않는다고 묘사한다. 요즘 역대급 이자 수익으로 비판받는 금융 관련 직종은 모두 사라진다.

소설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자면 미국 보스턴에 사는 주인공은 깊은 최면에 빠졌다가 113년 뒤인 2000년에 깨어난다. 세상은 24시간 음악방송 등 온갖 첨단 문명의 이기로 풍요롭다. 심지어 비가 오면 거리마다 방수 지붕이 펼쳐져 우산을 쓸 필요가 없다.

이 '멋진 신세계'의 근간은 사회주의다. 기업들의 무한 경쟁 끝에 단 하나의 자본만 살아남아 모든 산업은 국유화되고, 노동 조직은 군대 방식으로 운영된다. 시민들은 45세까지 같은 임금을 받고 일한 뒤 은퇴해 즐거운 인생 2막을 산다.

물론 사회주의를 장밋빛으로 그린 벨라미의 상상은 옛 소련을 통해 실패한 아이디어로 판명 났다. 폭력적 혁명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지만 국민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그의 복지 이상(理想)만이 여전히 유효할 뿐이다.

인간이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것은 현실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벨라미나 카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레닌이나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조선에 율도국(栗島國)이라는 이상향을 만들어 낸 허균 역시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을 터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인을 위시한 우리 사회 지도자들은 원대한 목표는커녕 소박한 꿈조차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빈부 격차 등 사회 갈등 해소에 애쓰기보다 자신과 소속 정파의 이익을 키우는 데에만 골몰한다. 한마디로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다.

각 정당이 발의한 22대 국회 1호 법안들은 참으로 가관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해병대 채 상병, 한동훈 특검법 어디에 표류하는 민생을 구하겠다는 고심이 담겼나! 기존 정책을 그러모은 여당의 '5대 분야 패키지 법안'은 궁금하지도 않다.

벨라미는 "다음 천 년 동안 인간이 어떤 발전을 이룩할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지난 100년 동안 이룬 진보를 뒤돌아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고 믿는다"고 했다. 100년 뒤 후손들이 우리에게 결코 좋은 평가를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당장 내년조차 예견하기 힘든 판국에 100년 뒤 모습을 대비한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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