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이 14세, 스탈린 등 역사상 독재자들은 대중을 통제하고 존경을 얻고 권력을 과시하고 자신을 기념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활용해 왔다. 히틀러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미학을 활용하고 자신의 통치를 문화적 차원에서 정당화했다. 예술은 권력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었다. 그는 제3제국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문화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이 책은 정치인이 아닌 예술가로서 히틀러의 기록을 모았다. 정치 이외에 삶이 없었다는 견해와 달리 히틀러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인종주의만큼이나 강렬했다. 저지에 따르면 히틀러가 사회를 파괴한 건 예술가의 눈에 비친 이미지에 따라 사회를 재창조하려는 그의 미적 본성 때문이었다. 모든 절대 권력자들은 예술을 조작하고 거대한 건물을 지어 압도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기 주장과 자기 숭배를 동기로 삼는다. 그런데 히틀러는 이들과 차원이 달랐다.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데 미학을 활용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지배를 규정하고 정당화한 사람도 그가 유일하다.
히틀러는 자신을 본질적으로 예술가로 여겼다. 젊은 시절 그는 화가를 꿈꿨고, 빈 미술 아카데미에 두 번 지원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러한 실패는 그의 자아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로 인해 그는 예술가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경로를 찾게 됐다. 바로 정치였다.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히틀러는 예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독일과 유럽을 재건하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건축, 회화,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비전을 펼쳤으며,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국민을 결집하고자 했다.
히틀러의 예술 정책 핵심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든 독일인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매료돼 있었고, 건축 분야에서는 알베르트 슈페어와 헤르만 기슬러 같은 건축가를 통해 거대한 공공건물과 기념비적인 구조물을 설계하고 건설했다. 음악에 있어선 리하르트 바그너의 숭배자였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통해 독일 민족의 영혼을 표현하고자 했다. 단순한 예술적 동경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확산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히틀러의 예술가적 면모는 리더십 스타일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뉘른베르크 당대회를 비롯한 장대한 퍼포먼스와 상징적 연출을 즐겼다. 그의 연설은 철저히 연출된 이벤트였으며, 이를 통해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밤 시간대의 조명을 활용한다거나 빨강과 검정의 스바스티카 깃발로 연단을 장식하는 등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대중의 감정을 조작하는 데 능숙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성공의 중요한 요소였다. 이런 퍼포먼스가 대중들에게 정치 참여 감각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능력은 그가 대중을 파괴적인 전쟁으로 이끄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예술에 관한 히틀러의 관심은 사적이고 또 진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매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 그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플라톤처럼 예술을 통제하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비극이 있다. 차라리 그가 무솔리니처럼 예술에 아무 관심도 없고 무지한 속물이었더라면, 그는 덜 파괴적이었을 것이다."(책 606쪽 중)
이 책은 미적 이상을 구현하려는 히틀러의 뒤틀린 욕망이 어떻게 세계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건축가, 예술 후원자이자 수집가, 바그너 숭배자, 아우토반 건설자'로서의 히틀러와 '인종주의자, 파시스트, 살인광'으로서의 히틀러를 신선하고 간결하며 설득력 있게 통합한다. 나치즘에 대한 완전한 이해의 열쇠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688쪽, 3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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