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가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10조원 규모의 저출생 대책 특별회계 신설을 추진한다. 7개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별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예산을 통합해 효과가 검증된 저출생 대책에 재원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신혼부부가 아이 세 명을 낳으면 20년 후 시세보다 20% 저렴하게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는 장기전세주택을 보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끝 모르게 추락하는 출산율을 반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분기 합계출산율 역대 최저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이 0.76명으로 1년 전보다 0.06명 감소해 역대 최저 기록을 또 새로 썼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연령별 출산율은 30대에서 크게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출생아 수는 6만47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천994명(6.2%) 줄었다.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0.76명으로 지난해 1분기(0.82명)보다 떨어졌다.
출생아가 통상 연초에 많고 연말로 갈수록 줄어드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남은 기간 합계출산율은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연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분기별로는 1분기 0.82명, 2·3분기 각 0.71명, 4분기 0.65명이었다. 통계청이 장래인구추계에서 전망한 올해 합계출산율은 0.68명(중위 시나리오 기준)이다.
이런 출산율이 계속될 경우 2045년부터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 인구가 자연감소를 보이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됐다. 2052년에는 부산·울산·경남·대구 등 4개 시도 인구가 2022년보다 2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총인구는 2022년 5천167만명에서 2024년 5천157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52년 4천627만명을 기록한다. 17개 시도 중 15개 시도에서 인구가 감소한다. 서울 인구만 149만명 감소한다. 부산(-85만명), 대구(-58만명), 광주(-29만명), 대전(-22만명), 울산(-29만명) 등 주요 광역시도 30년 후 인구가 크게 줄어든다.
출생아수 감소와 기대수명 증가로 전국 중위연령은 2020년 43.7세에서 2022년 44.9세로 높아졌다. 이는 30년 뒤인 2052년 58.8세로 높아질 전망이다. 지역별로 보면 전남(64.7살), 경북(64.6살), 경남(63.5살), 강원(63.0살) 등 9개 시·도에서 60살을 넘어선다. 해당 지역 인구의 절반 이상이 60살 이상이라는 얘기다.
◆추락하는 출산율 반등이 안 되는 이유는
조앤 윌리엄스(72)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JTBC 인터뷰에서 "큰 전염병이나 전쟁 없이 이렇게 낮은 출산율은 처음 본다. 숫자가 국가비상사태라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산율 감소에 따른 인구 감소가 국가비상사태를 부를 정도로 심각함에도 반등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과 '출산' 간 부정적인 관계에 대한 연구 보고서가 잇따라 나왔다. 통계개발원이 지난 4월 발간한 '경제 사회적 요인에 따른 출산 격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이 취업하거나 맞벌이인 가구에서 그렇지 않은 가구보다 상대적으로 자녀 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최근 20년간(2003∼2023년)의 가계동향조사를 이용해 25∼44세 배우자가 있는 가구의 소득과 경제활동 상태 등 요인과 출산 간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작년 기준 맞벌이 가구에서 자녀 수는 1.36명으로, 비맞벌이 가구(1.46명)보다 적었다.
특히 고소득인 소득 5분위에서 비맞벌이(1.75명)와 맞벌이(1.43명) 가구의 자녀 수 차이가 0.32명으로 컸다. 반대로 1∼2분위에서는 맞벌이 가구의 자녀가 소폭 많았다.
연구진은 "저소득층에서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자녀·출산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가구가 많아 맞벌이 가구 자녀 수가 많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여부별로 살펴봐도 유사했다.
여성 취업 가구(1.34명)보다 비취업 가구(1.48명)의 자녀 수가 0.27명 많았다. 5분위에서는 그 차이가 0.34명으로 나타났다.
자료를 토대로 회귀 분석한 결과 지난해 여성 소득의 계수는 -0.04로 자녀 수와 부(-)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여성 소득이 100% 증가할 때 자녀 수는 약 4% 감소하는 것이다. 반면 남성 소득은 자녀 수와 양(+)의 상관관계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여성의 자녀 출산을 위해 경력 단절이 아닌 육아휴직 제도 등을 통한 경력의 연속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경력 단절로 대표되는 고용상 불이익, 즉 '차일드 페널티' 증가가 2013∼2019년 출산율 하락 원인의 40%가량을 차지한다는 분석을 지난달 내놨다.
연구에 따르면 그간 30대 여성의 평균 경력단절 비율은 꾸준히 감소해 왔으나 주로 자녀가 없는 경우에 집중됐다. 이런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육아와 돌봄이 여성에게 치우친 점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KDI에 따르면 한국은 남성의 가사 참여도를 뜻하는 여성 대비 남성의 무급노동 시간 비율은 23%에 그친다. 일본(18%)과 튀르키예(22%) 다음으로 낮다. OECD 평균은 52%로 우리나라의 두 배 이상이다.
IMF는 지난 21일 한국과 일본에 대한 '포커스'를 발간하며 여성이 결혼과 출산 후 승진 지연, 가사 분담 문제를 겪는 현실을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만혼(晩婚)과 늦은 출산이 흔해졌고 출산 감소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IMF는 한국과 일본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5배 더 많은 무급 가사·돌봄을 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양국의 사회 규범이 여성에게 부담을 집중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탓에 많은 여성 근로자가 저임금의 임시직·시간제로 일하고 있고, 긴 근무 시간과 원격근무 제한 등으로 근무 방식도 가족 친화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계급화 현상 청소년에게도 영향
소득 계층 간 결혼과 출산의 차이가 나는 '계급화' 현상은 청소년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경제적 차이에 따라 결혼 인식에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소득층 청소년이 결혼에 대해 더 부정적이었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공개한 '2023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 소득 200만원 이하 청소년 10명 중 7명(69%)은 '결혼을 해야 한다'는 문항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월 소득 600만원 이상 가구의 청소년은 같은 질문에 61.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이 결혼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전체적으로 옅어지고 있지만, 소득이 낮을수록 그 추세가 더 뚜렷하고, 가팔랐다.
월평균 가구 소득 200만원 이하의 청소년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2020년 62.5%에서 지난해 69%로 3년 만에 6.5%포인트 늘었다. 반면 가구 소득 600만원 이상의 청소년은 2020년 58.9%, 지난해엔 61.2%로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소폭 늘었다.
최근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노동 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 재직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결혼·출산 확률도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보다 낮다고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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