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정호 KAIST 교수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반도체…韓 ‘HBM’ 개발 존재감 키워야”

‘HBM 개발 선구자’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인터뷰
AI 처리 속도·정확성 ‘HBM’이 결정…삼성전자·SK하이닉스 기술력 앞서
장점 살려 건전한 생태계 구축해야
탄탄한 기초학문 기술 강국 공통점…TK 인재 육성 정주 여건 개선 필수
대만·한국 잇는 新애치슨 라인 회자…美 본토 제조시설 완성 땐 배제 우려
위기·기회 공존 도약의 기회 잡아야

지난달 31일 대전 KAIST 본원 나노종합기술원. 김정호 교수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정우태기자
지난달 31일 대전 KAIST 본원 나노종합기술원. 김정호 교수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정우태기자

인공지능(AI)의 시대다. 세계 경제는 AI를 중심으로 재편을 시작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퉈 AI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AI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엔비디아는 세계 시가총액 2위 애플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AI 메모리칩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부동의 1위를 지켰던 삼성전자는 HBM 주도권을 내주고 위기감이 커지자 수장을 교체하고 쇄신을 진행 중이다.

반도체 분야 권위자이자 HBM기술 개발의 선구자인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를 만나 AI기술의 현재와 미래, 한국의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왜 지금 HBM에 대한 관심이 높은가

▶AI가 인간의 정신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가까워졌다. AI 경쟁력이 곧 기업의 가치, 더 나아가 국가의 위상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다만 AI를 구현하는 데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전력 공급을 비롯한 기반이 필요하다.

가장 핵심은 반도체다. 앞으로 AI가 수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인데 처리 속도, 결과물의 정확성을 결정하는 건 메모리 반도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를 읽고 계산하는 데 특화된 메모리가 바로 HBM이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AI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고 HBM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메모리 분야에서 한국이 앞서 있지 않나

▶방심하면 안 된다. 1980년대 일본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지만 이후 상황은 급격히 변했다. 영원한 1등은 없다. 다행히 한국이 메모리 기술을 빠르게 익히고 생산라인을 구축하면서 지금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됐다. 당시 미국은 산업 구조를 재편하면서 설계를 직접 하고 생산은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권에서 맡도록 했다.

현재 미국 정부는 본토에 제조공장을 신설하고 있고 파격적인 지원 정책도 내놓고 있다. 지정학정 불안 요소를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보이지만, 확실한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이 지금은 삼성과 SK에 비해 열세를 보이고 있으나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급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I 반도체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반도체 기술의 발전 덕에 우리는 손 안에 컴퓨터(스마트폰)를 쥐고 있다.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되는 걸 경험했다. 반도체 성능이 약 2년마다 2배로 향상되는 '무어의 법칙'이 적용된 결과다.

현재 AI반도체는 밀집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적층을 하고 연결선을 늘리는 방식이다. 단일한 반도체가 아닌 수 많은 반도체가 모여서 하나처럼 작동해야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패키징'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TSMC와 인텔이 이 분야에서 앞서 있고 한국도 추격을 하는 입장이다.

-엔비디아의 독주가 언제까지 이어질 거라 보는가

▶엔비디아도 지금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이전부터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꾸준히 개발해왔고 AI프로그램 개발에 필수적인 도구인 '쿠다'(CUDA)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엔비디아 GPU로 구동 가능한 쿠다를 중심으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도 파트너십을 구축하면서 동반 성장하고 있다.

젠슨 황이 앞선 안목이 있었고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텼다.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했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운이라고 해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무엇보다 확실한 방향성이 있다. 당분간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시장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빅테크 기업의 투자로 인한 변화도 예상된다

▶반도체 산업의 가장 최상단에 있는 건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챗GPT 개발사)다. 엔비디아가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 주도권을 쥔다. AMD, 인텔이 AI 반도체를 출시하면 시장 점유율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엔비디아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를 사용화하는 데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매출이 안정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수익 모델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지금 당장 AI가 없으면 생활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AI가 없으면 안 되는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기름 값으로 매월 일정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처럼 AI를 이용하는 데 고정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지난달 31일 대전 KAIST 본원 나노종합기술원. 김정호 교수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정우태기자
지난달 31일 대전 KAIST 본원 나노종합기술원. 김정호 교수가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정우태기자

- 한국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보나?

▶지금 상황이 조선시대 말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에게 메모리 반도체가 있다는 사실이다. 강대국의 뜻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렸던 그때를 잊어선 안 된다. 반도체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생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한글과 거북선이 한반도를 지켰다면 이제는 반도체다.

결국 AI도 파운데이션(기본) 모델을 확립해야 기술적으로 종속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네이버, 한글과 컴퓨터 등 걸출한 IT기업들이 독과점을 막는 역할을 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카드는 HBM이다. 이를 잘 이용해 건전한 AI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인재 양성이 중요할 것 같다

▶당연하다. 고령화와 수도권 집중화, 출생률 저하는 가장 시급한 사안이다. 인구 감소 영향도 있지만 '편향성'이 문제다. 반도체 인재가 줄어 산업 역량이 약화되면 국가 경제가 위태로워진다. 눈 앞에 이익만을 보는 가치관이 팽배해졌다. 개인이 신념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첨단 기술로 갈수록 더욱 중요한 건 기초학문이다. 기술강국의 공통점을 보면 모두 기초학문이 탄탄하다.

-수도권 편향 해결할 수 있을까

▶1970~80년대까지 지역마다 대표 기업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됐다. 이후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되면서 청년층 인구가 이탈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수도권·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각 지역의 산업이 탄탄하게 발전해야 균형발전도 가능하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분야별로 다양한 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대구경북이 반도체 육성에 성공하려면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단만 갖고 산업을 육성할 수 없다. 환경을 갖춰야 우수한 인재가 모인다. 학군을 포함해 정주 여건을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자세와 변혁이 필요할 것 같다. 다행히 지역에는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는 우수한 교육기관이 다수 분포해 있다. AI 전환에 맞춰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재를 더 많이 배출할 필요가 있다.

- AI시대 향후 전망은?

▶미국의 전략에 따라 대만과 한국 평택·이천을 지나는 신(新) 애치슨 라인이 회자된다. 현재 흐름을 보면 미국 본토에 제조시설을 갖추게 되면 아시아 국가를 배제한 태평양에 제3 애치슨 라인이 그어질 수도 있다. 영원한 동맹은 없다. 대신 우방이 우리를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존재감을 확실히 키워야 한다.

AI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자의식을 가진 인공일반지능(AGI)이 탄생할 날이 머지 않았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고 있고 위기에 더 가까운 시점이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이 다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김정호 교수는? 세계적인 인공지능 반도체 컴퓨팅 융합 연구의 선구자이자 고속 반도체 설계 전문가. 인공지능 컴퓨터에 필요한 반도체 HBM을 개척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아카데믹(Microsoft Academic)에서 HBM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연구자로 선정됐다. 무어의 법칙을 극복할 3차원 구조의 반도체를 제안해 인공지능 반도체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KAIST에서 다수의 석박사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들 대부분이 테슬라, 애플, 구글, 엔비디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관련 반도체 설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총 600편 이상의 관련 분야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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