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시간에 조금 늦거나, 지각하면 다음날 고객 백들을 하루 종일 정리하는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 합니다."
대구 인근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 골프장 캐디의 푸념이다. 이 캐디는 기자에게 "좀 불합리한 제도라고 생각이 들지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골프장에 정식적으로 항의할 생각은 없다"며 "제가 빈틈없이 잘 하면, 별 문제는 아니다"고 애써 해명했다.
인권침해의 소지마저 있는 것이 소위 캐디들이 말하는 '벌땅' 제도다. 사업자 입장인 골프장과 고용된 근로자인 캐디 사이에 암묵적으로 맺어진 계약이라 외부 사람들은 이를 알 필요도 없지만, 분명 전형적인 갑-을 노예계약(?)으로 해석할 소지조차 있다.
캐디들은 라운딩 시작 전 1시간 30분 전에 대기를 하고 있다가 경기팀에서 이름을 부르면 바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조금 늦어 지각을 하거나 화장실을 다녀온 경우에도 대기를 타고 있는 캐디를 배정한 후 지각한 벌칙으로 다음날 캐디 백을 정리하는 노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 노동은 물론 무보수로 해야 한다. 허리가 좋지 못한 몇몇 캐디들은 한번 '벌땅'을 받고 나면, 또 '벌땅'을 받았을 경우 그만 두고 다른 골프장 캐디를 알아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게다가 '벌땅'을 여러 차례 받은 경우 경기팀으로부터 찍히는 것도 있지만 동료 캐디들로부터 놀림을 받아야 하는 부담까지 생긴다.
이 골프장을 한달에 한번 정도 가도 한 아마추어 골퍼는 "몇 달 사이에 똑같은 캐디를 2번 만나서 이 얘기를 듣게 됐다"며 "지금 같이 노동자의 권리가 신장된 시대에 어떻게 골프장에서 인권 침해의 소지까지 있는 '벌땅' 제도를 운영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이 골퍼는 "이런 골프장에서 이런 제도를 운영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골프장에서 캐디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 역시 이 골프자에서 만난 남자 캐디에게 슬쩍 물어본 결과, '벌땅'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걸로 확인했다. 하지만 대구의 다른 골프장의 경우 한두군데를 제외하고는 '벌땅' 제도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한 골프장 관계자는 "경기팀과 캐디들이 서로 합의 하에 운영하는 벌칙 제도의 일환"이라며 "골프장 경영방침과는 관계가 없으며, 다소 개선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캐디들이 손쉽게 현금 장사(18홀 라운딩에 14만원+α)를 하는 전문직 알바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육체적 감정 노동자로 진상 내장객들을 만나면, 마음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특히나 다소 예쁘장한 여성 캐디의 경우 가벼운 성희롱을 당하기 일쑤다. 기분은 나쁘지만 크게 문제삼을 일이 아닌 말장난성 희롱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캐디들의 불안정한 고용 행태와 대우에 대해, 김현덕 계명대 스포츠마케팅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만의 독특한 캐디 문화에서 파생되는 일들로 미국이나 유럽처럼 노캐디 문화가 정착될 필요가 있다"며 "골프장 역시 책임 경영이라는 입장에서 캐디들의 노동 여건과 복지에 대해 좀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탓에 실제 대구경북 뿐 아니라 수도권과 제주권에도 노캐디 골프장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전체 골프장의 컨트롤 센터에서 각 홀마다 카트들이 이동해야 하는 시간마저 조절해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일부 고급 골프장의 경우 플레이어 1명당 로봇 캐디들이 필드 위를 따라다니면 돕는 시스템도 운영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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