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젠슨 황, 이재용 그리고 황병우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미국의 엔비디아는 요즘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이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2조9천억달러로, 코스피 전체 시총의 2배에 육박한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대만 출신으로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1993년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 재킷을 걸친 젠슨 황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세계 최고 연예인급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는 한국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의 주가도 움직인다.

삼성전자는 AI 시대의 핵심 메모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시장 1위지만 HBM 시장의 주도권은 SK하이닉스에 내준 상황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도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말처럼 노조는 사상 처음으로 파업을 선언한 상태다.

과거 혁신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삼성전자의 위기가 남 일 같지 않다는 기업이 많다. 방심하고 안주하는 순간 뒤처진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32년 만에 지방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DGB대구은행의 도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대구은행은 'iM뱅크'로 새 출발을 시작했다. 대구은행은 그동안 전국 지방은행 가운데 가장 모범적으로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 방지와 지역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은행은 지역민들에게 이웃과 같은 은행이다. IMF 등 금융산업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지역민들은 합심해 대구은행 살리기 운동에 동참했다.

일각에서는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대구경북을 떠나 영업 환경이 좋은 곳으로 옮겨간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앞으로는 지역민들이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은행산업의 경쟁을 촉진하는 메기가 아니라 미꾸라지가 될 것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황병우 DGB금융지주 회장은 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수도권에 있는 자금을 대구로 환류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구경북에서 안주하지 않고 돈이 몰린 수도권에 진출해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자신감으로 들린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 전환을 외면한 노키아, PC에서 모바일로의 변화를 경시한 인텔, 세계 최초로 노트북을 출시한 도시바 등 한때 세계 경제계를 주도했지만 순식간에 몰락한 기업은 수없이 많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모두 CEO의 리더십에 달렸다. 어려움에 처한 대부분의 기업은 자만심이 지나치고 혁신이 부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AI와 전기차, 플랫폼을 둘러싸고 세계는 기술 패권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기술 혁신과 시장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은 CEO의 필수 덕목으로 떠올랐다.

엔비디아의 비공식적인 기업 모토는 '우리 회사는 폐업까지 30일 남았습니다'라고 한다. 젠슨 황이 첫 제품 실패 뒤 절치부심 끝에 두 번째 제품을 출시했을 무렵, 자금 부족으로 한 달밖에 버틸 수 없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왔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경영 철학도 '끊임없는 위기의식'이었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DGB금융지주 황병우 회장을 비롯해 한국의 CEO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고, iM뱅크가 시중은행 안착에 성공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