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최경철 편집국 부국장 겸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최경철 편집국 부국장 겸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인자 우예 되겠심니꺼?"

포항 영일만 유전 소식이 윤석열 대통령 육성으로 전해진 뒤 알고 지내던 여러 포항 사람들에게 "대박이 터졌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입을 맞춘 듯 소극적으로 들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산유국으로 올라서는 꿈같은 일이 포항에서 벌어지게 될 판이다. 엄청난 관련 산업 투자 물결이 밀려올 것이며 경제성까지 판명될 경우, 단군 이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적적 장면도 목격될 것이다. 그런데도 포항 시민들은 조심스러워했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지난 몇 년간 포항 시민들이 보낸 혼돈의 시간이 워낙 길었기에 시민들은 깜짝 놀랄 만한 좋은 일이 생겼다 해도 경계심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일 터.

포항 시민들은 포항이 잉태시키고 키워 낸 포스코로부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세월을 겪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포스코그룹이 나고 자란 포항을 버리고 경기도 성남에 포항 본원보다 수십 배나 더 큰 부지에다 수조원을 들여 미래기술연구원 분원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결국 의사결정을 뒤집긴 했지만 포스코그룹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 본사를 서울에 두기로 한 의사결정도 포항 시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포항 시민들은 일치되고 단결된 목소리, 그리고 질서 있는 모습으로 포스코에 대해 "잘못된 결정을 고치라"고 요구해 왔다. 그리고 이강덕 시장이 이끄는 포항시도 시민들의 전폭적인 동의와 지지에 힘입어 포스코의 '탈포항' 시도에 대해 합리적 논거를 통해 엄하게 질타하면서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포스코의 태도 변화를 일궈 냈다.

이런 가운데 포항은 포스코에 의존하는 '철강 일극 중심' 산업구조를 바꾸는 데도 온 힘을 기울였다. 물론, 포스코그룹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지만 포항은 에코프로그룹 유치 등을 통해 2차전지 산업 생태계를 포항에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발판으로 포항은 지난해 2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됐으며 수십조원의 투자가 몰리면서 글로벌 2차전지 산업 집적지로 도약 중이다. 이뿐 아니다. 포항은 수소에너지·AI(인공지능)·바이오 산업에도 도전하고 있으며 이제 원유·천연가스 생산 기지로서 막대한 인프라 구축 투자와 관련 기술 인력 집적이 기대되고 있다.

포항 영일만에 유전이 발견되자 "땡잡았다"라는 부러움 섞인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다. 포항에 큰 행운이 찾아온 것은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우유 브랜드명으로 잘 알려져 있고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는 루이 파스퇴르를 호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과학적 발견의 절반은 운에 의한 것이지만, 그 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했다. 세상에 우연은 찾기 어려우며 고통 속에서 준비하고 인내하다 마침내 얻어 내는 게 행운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바로 대입하기는 어렵지만 포항은 수도권의 위세에 밀려 키워 놓은 포스코의 본사 기능마저 뺏길 지경에 놓일 만큼 퇴행을 거듭해 왔지만 치열한 자구 노력 끝에 이제 운이 따라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구경북(TK)을 비롯한 지방의 처절한 노력에 이제 행운이 동반할 때가 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옛말치고 그른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지방은 불운했지만 그렇다고 불행으로 마감할 수는 없다. 포항이 행운의 출발점에 섰다. 그다음 행운의 바통은 통합된 TK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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