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밝은 눈 클리닉] 안과질환의 검진과 경과관찰에 대한 철학적 생각

윤정현 대구 아이백안과 원장
윤정현 대구 아이백안과 원장

현대 물리학의 최신 흐름인 양자물리학에서 양자 중첩이란 개념이 있다. 1935년 등장한 사고(思考) 실험 중 하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살펴보면 외부에서 볼 수 없는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와 감마선에 의해 50%의 확률로 깨질 수 있는 독이 든 병이 같이 있다고 가정했다. 과연 그 안의 고양이는 살아 있다고 해야 할까, 죽었다고 해야 할까? 지적 생명체인 관찰자가 관찰하기 전에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상태를 중첩이라고 한다. 즉, 미시세계의 양자 중첩상태가 거시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렇다면 눈 안의 상황을 관찰자인 의사가 확인하지 않으면 중첩상태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안구 내의 상황은 관찰자의 관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결코 관찰할 수 없다. '단기간의 경과 관찰로 현 상태가 나빠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중첩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더 끔찍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높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물론 단기간의 경과관찰을 하면 병의 진행이 지연된다는 것은 미신에 가깝지만, 관찰을 통해 중첩상태를 확정시켜야만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 만약 안과적 질환을 발견하거나 질환이 진행한다고 판단된다면 안과의사들은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듯이 말이다.

당뇨병으로 인한 안과적 합병증 유무 확인 검사로 초기 비증식성 당뇨병성망막병증을 진단받은 60대 환자가 있었다. 3개월 간격으로 경과관찰을 하다가 어느 순간 오지 않았다. 그리고 3년 뒤에 시력이 떨어진다며 다시 왔는데 이미 증식성 당뇨병성망막병증으로 진행된 후였다.

그동안 왜 방문하지 않으셨냐고 여쭤봤더니, 그동안 잘 보여서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정기적인 경과관찰을 했더라면, 초기 당뇨병성망막병증에서 더 진행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레이져광응고술 등을 포함한 적절한 치료로 병의 진행을 막아 시력의 퇴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증식성 당뇨병성망막병증으로 진행한 이상 시력을 되돌리기 힘들었다. 이런 환자들에게 나쁜 사실을 통고했을 때마다 그들의 늦은 후회에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정기적인 경과관찰을 하지 않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질환은 당뇨병성망막병증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예로는 시야의 중심부위가 굽어져 보이거나 안 보이는 질환인 황반변성이 있다. 황반변성도 정기적인 경과관찰을 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시력이 저하되어서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때 시행한 빛간섭단층촬영술이란 검사를 해보면 상당히 진행되어 황반에 반흔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적절한 치료를 했더라면 상당한 황반의 반흔을 막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만 남는다.

한편 시야의 주변부 부위부터 서서히 안 보이게 되는 녹내장의 경우 중심시야가 살아 있어 처음에는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 정기적인 경과관찰을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시야가 좁아지고 삶의 질이 떨어져 안과를 다시 방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녹내장은 진행이 가속화되면 뇌신경 줄기의 일부인 시신경이 손상된다. 뇌세포가 그렇듯이 손상된 시신경세포는 재생되기 어렵기 때문에 감소된 시야와 시력은 되돌릴 수 없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각막, 망막, 시신경, 안와 등의 질환에서 경과관찰을 하지 않아 시력을 잃은 안타까운 이들이 많다.

안과는 몇 세 이상, 무슨 검사를 하라는 지침은 따로 없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특별히 불편하지 않더라도 1년에 한번쯤은 안과적 검진받기를 권한다. 안과적 기기의 발전으로 광각안저검사로 넓은 범위의 망막을 동공의 산동없이도 확인할 수도 있어 시신경, 망막질환의 선별검사를 할 수 있다. 더욱이 당뇨, 황반변성, 녹내장을 포함한 치명적인 안과적 질환이 있는 환자라면 안과의사가 제시한 경과관찰 기간에 방문해야함을 기억해야 한다.

윤정현 대구 아이백안과 원장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