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당신만의 우상, 아이돌은 어떤 모습인가요?

안민 작가 개인전 ‘Fictional Idols’
사천왕에서 모티브 얻은 허구의 우상 그려내
6월 16일까지 대구 중구 공간독립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안민 작가.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안민 작가. 이연정 기자
공간독립 전시장 전경. 공간독립 제공
공간독립 전시장 전경. 공간독립 제공

'WANG ANGEL'. 안민(38) 작가의 개인전 'Fictional Idols'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문구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전시장 안에는 작가가 창조한 이 록밴드 '왕천사'의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을 캔버스 위에 망가뜨려 인간의 부도덕한 행위를 고발하고 분노를 표출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만의 '허구의 우상'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차를 가상으로 파괴하는 작업에 한계를 느끼고 변화를 시도했죠. 보통의 사람들이 종교나 좋아하는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을 좋아하고 우상화하면서 위안을 얻는 데 착안해, 나만의 우상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침 록밴드가 등장하는 외국 드라마를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내 취향을 담은 밴드 형태의 우상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거침 없고 과감한 붓질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드럼을 내리치고 몸을 한껏 뒤로 꺾어 기타를 연주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역동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는 "이전 작품에서는 분노라는 감정이 붓질에 담겼지만, 원래 호방한 서예 필치와 흑백 대비가 강렬한 거친 느낌을 좋아한다"며 "감정을 떠나 좋아하는 표현 방식을 살리려 했다"고 말했다.

공간독립 전시장 전경. 공간독립 제공
공간독립 전시장 전경. 공간독립 제공

눈치 빠른 관람객들은 전시를 보다가 알아챈다. 밴드 이름인 '왕천사'를 거꾸로 읽으면 '사천왕'. 그가 자신만의 우상을 만드는 데 모티브를 얻은 소재다. 멤버 이름도 박남살, 서방철, 남혁동, 조북천처럼 동서남북을 담고 있다. 또한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는 대형 작품들은 사찰 입구 천왕문에 자리한 사천왕의 모습과 똑 닮았다.

특히 모든 작품은 캔버스 대신 빛이 투과되는 사인 플렉스(광고판용 PVC 재질 원단)를 사용했고, 어두운 전시장에서 조명은 오로지 작품의 뒤편에만 설치됐다. 작품이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연출은 자연스레 종교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천왕은 일반적으로 평화롭고 온화한 수호신의 이미지와 달리 우락부락하고 악당 같은 이미지가 강하고, 화려한 시각적 요소가 많은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한편으로 이전부터 제가 다뤘던, 부도덕한 이들을 벌하는 강력한 이미지가 딱 들어맞았습니다."

현실의 삶에서 느끼는 염증을 해소하고자 그려낸 작가만의 허구의 우상이자 안식처를 통해, 관람객들은 각자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대상을 떠올려보게 된다. 빠르게 만들어지고 쉽게 사라져버리는 실재의 매개체가 아닌 오히려 허구가 더 믿음직스러운 존재의 역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전시다.

그의 작품은 오는 16일까지 공간독립(대구 중구 공평로 8길 14-7)에서 볼 수 있다. 월, 화는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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