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코커스파니엘, 슈나우저가 사라졌다…유행 견종의 그늘

말티푸·폼스키…유행 견종 전국구 거래
새로운 인기 견종 나타나면 보호소 직행
"믹스는 싫어" 견종 차별 불러 일으키기도

미디어에 등장하며 인기를 끈 유행 견종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박 2일
미디어에 등장하며 인기를 끈 유행 견종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박 2일 '상근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쿄로', 동물농장의 '웅자', 삼시세끼의 '산체'.

TV프로그램인 1박 2일 '상근이'가 유명해지자 큰 개를 키우는 사람이 늘었고, 슈퍼맨이 돌아왔다 사랑이네의 '쿄로'가 등장하자 다리 짧은 견종이 유행했다. 동물농장의 스타견 '웅자'는 코커스패니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삼시세끼의 '산체'는 장모 치와와의 입양률을 폭증시켰다.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견종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요즘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이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간혹 보인다 하더라도 보호자 품에 안기거나 개모차를 타고 간신히 콧바람을 쐬러 나온 노령견들이 전부. 인간이 선호하는 견종에 따라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또 태어나고 있다.

강아지 농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유행 견종들. 포메, 말티즈, 푸들 등 인기 견종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강아지 농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유행 견종들. 포메, 말티즈, 푸들 등 인기 견종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대별 인기 견종, 유행 끝나면 보호소로?

"제가 일했던 기간만 해도 많은 유행이 지나간 것 같아요. 얼마 전만 해도 말티즈와 푸들을 교배한 '말티푸'가 인기였는데 요즘에는 포메라니안과 시베리안허스키를 교배한 '폼스키'가 유행이거든요" 펫샵에서 10여년간 근무 했다는 이모 씨의 증언이다. 이 모씨는 유행 견종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는 상상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오프라인 펫숍도 많지만, 요즘은 SNS를 통해서도 강아지가 많이 거래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예쁘게 교배된 아기 강아지 사진을 SNS에 올리면 전국 어디서든 연락이 옵니다"라며 "오늘도 서울에 폼스키 한 마리가 입양돼서 가는데 제가 직접 서울까지 운반해요. 이렇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운송비가 꽤 드는데도 구매를 하더라고요. 서울에 폼스키가 많더라도 본인 마음에 드는 폼스키가 저희 가게에 있었다는 말이죠"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현실은 유기견조차 대부분 인기 견종이 선호된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한 현실은 유기견조차 대부분 인기 견종이 선호된다는 점이다.
한 때는 웰시코기가 유행했다. 하지만 웰시코기는 생각보다 큰 덩치에 털도 많이 빠져 반려견으로 키우기 꽤나 어려운 견종이다. 이에 유행이 끝나자 유기견이 속출했다.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왔던 웰시코기.
한 때는 웰시코기가 유행했다. 하지만 웰시코기는 생각보다 큰 덩치에 털도 많이 빠져 반려견으로 키우기 꽤나 어려운 견종이다. 이에 유행이 끝나자 유기견이 속출했다.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왔던 웰시코기.

패션, 가전, 인테리어도 유행이 도는 판에 견종 유행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견종 유행은 유기견 확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한바탕 유행이 지나간 강아지들은 유독 유기견 보호소나 파양 문의 게시글에 자주 등장한다. 10여년 전 KBS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인기를 끌었던 '상근이'가 대표적 사례다.

상근이는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의 유행을 일으켰지만, 국내 주거 환경에서는 키우기 힘든 대형견이었다. 인기는 금방 사그라들었고 유기견 보호소에서 해당 견종이 자주 발견되자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10년 전 상근이 사태는 저희 보호소 또한 체감했던 일입니다. 해당 견종의 자견을 분양받아 키우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는데, 심지어는 작은 원룸에서 키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견종은 대형견입니다. 어릴 때는 귀여워서 키울 수 있겠지만 점차 체격이 커지면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거죠.

이에 유기하는 개체 수가 폭증하면서 당시 유기견 보호소에 그레이트피레니즈 견종이 쏟아지듯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대다수는 안락사를 당하곤 했죠" 유기동물 구호단체 팅커벨프로젝트의 황동열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유행견종에 대한 문제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4년 쯤 지나자 연예인 주병진씨가 키우는 웰시코기 세 마리가 큰 인기를 얻더라고요. 웰시코기는 대형견종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큰 중형견인데다가 털이 무척 많이 빠지는 품종입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분양 받았던 사람들이 웰시코기를 유기하더라고요. 시보호소에서 공고기간이 지난 채 안락사가 된 웰시코기들이 무척 많았습니다"며 "당시 팅커벨프로젝트에서도 웰시코기들을 한 마리라도 더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나네요"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현실은 유기견조차 대부분 인기 견종이 선호된다는 점이다. 포항시 동물보호센터장은 "안타깝게도 유기동물 입양센터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일단 시민들 시선에서 품종을 구분할 수 있다면 해당 동물은 어렵지 않게 입양갈 수 있는거죠"라며 "반면 소위 시골잡종이라 불리는 믹스견들은 특출나게 성격이 좋거나 호감갖게할 외모가 아니라면 쉽게 입양보내기 어렵습니다. 3~4년씩 보호소에서 입양가지 못하고 지내는 애들 거의 전부가 품종견이 아닌 믹스견인거죠. 당시 어떤 견종이 유행하느냐에 따라 해당 견종의 입양이 제일 잘 이루어 지는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특정 견종에 대한 인기가 편중되다 보니 이른바
특정 견종에 대한 인기가 편중되다 보니 이른바 '인기견'이 아니거나 혹은 '품종견'이 아닌 강아지들은 애견업계에서 보이지 않는 '견종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견종 차별로까지 이어져 "믹스견 금지"

특정 견종에 대한 인기가 편중되다 보니 이른바 '인기견'이 아니거나 혹은 '품종견'이 아닌 강아지들은 애견업계에서 보이지 않는 '견종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펫프렌들리를 표방하는 업장임에도 중대형견과 믹스견 출입을 제한한다는 운영지침을 세운 경우가 많다.

출입제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도사견, 핏불테일러 등 동물보호법이 규정하는 맹견들인데 여기에 진돗개 등 사납다고 여겨지거나 체구가 큰 견종들이 '임의로' 추가되는 것. 카페나 식당 등은 공지사항을 통해 '(다른 반려인들과의) 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진도믹스를 키우고 있는 강 모씨는 얼마 전 찾은 펜션에서 겪은 불편한 경험을 토로했다. "우리 애는 잘 놀고 있는데 저기서 소형견 세 마리가 막 짖더라고요. 그리고 사장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이 '무섭게 생겼으니 주의 좀 해주세요' 라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조심해서 놀고 집에 와서 규정을 살펴 봤는데 12kg 이하 강아지만 입장 가능하다는 공지 밑에 괄호로 '진도믹스/대형견 혼종의 경우엔 9kg 미만'이라는 별도 조항을 하나 더 마련해 뒀더라고요. 대형견을 분리하려는 의도는 받아들이겠지만은 굳이 비품종견, 그러니 믹스를 차별하는 조항에는 정말 화가 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출입제한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특정종에 대한 편견과 배제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믹스견을 키우고 있는 장 모씨는 "저희 개는 믹스이긴 하지만 시바견이나 웰시코기 등과 무게도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한 중형견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견종 차별하는 분들을 자주 마주쳐요"라며 "친구는 시바견을 키우는데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유행 견종은 자주 봤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경험인 것 같아 기분이 찝찝했어요. 심지어 우리 강아지가 친구의 시바견보다 더 작거든요"라고 말했다.

거기에다 검은 털까지 지녔다면 차별은 극대화 된다. 실제로 블랙 푸들, 블랙 리트리버, 블랙 치와와는 꽤나 선호되는 품종이다. '유니크'하다는 것이 이들의 인기 비결. 하지만 검은털에 믹스가 따라 붙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면 '검은 개 증후군(검은색 털을 가진 개의 입양을 기피하는 현상) 이라 불리우는 조건들은 중·대형 믹스견에게 향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견주 김 모 씨는 "우리 개는 예전에 대표 검은색 견종 슈나우저가 유행 할 때도 무섭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밤에 나갔더니 보이지 않으니 데리고 나오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고요"라며 "이런 차별이 유행을 더욱 조장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 경험을 하다보면 견주들도 너무 힘들거든요.

그러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죠. '흔한 비숑이나 말티를 끌고 다니면 이런 일은 안 생기겠지'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조차 우리 강아지에게 미안합니다. 절대 그럴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죠"라고 말했다.

유행에 뒤쳐지더라도, 주류가 아니라 차별 받더라도 '진짜' 견주들은 '내 강아지'를 가장 사랑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품종견은 그 무엇도 아닌 '내 강아지'라는 견종입니다. 우리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못생겼다고, 공부 좀 못한다고, 말썽 좀 부린다고 내 새끼를 다른 새끼와 바꾸나요? 강아지도 똑같습니다. 저희에게 유행 견종은 항상 '내 강아지'라는 견종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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