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상 최대 규모의 신도시, 세종에는 '길과장'(길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과장), '카국장'(카카오톡으로만 보고를 받는 국장)이라는 말이 있다. '행정 중심지' 세종의 행정 비효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후 3년 동안 행정기관이 줄줄이 이전했다. 2019년 행정안전부가 이전한 후로 외형상 서울에 남은 부처는 외교부와 국방부, 여성가족부 정도다. 한국개발연구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15개도 세종에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내세웠지만, 이 정도면 가히 '행정수도'라 할만하다.
그럼에도 현실은 150㎞ 떨어진 서울에 종속적이다. 균형발전 논리로 행정부 건물을 세종에 몰아놓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서울에 있어야 한다. 장관은 보통 서울사무소에 상주하고, 실·국장은 매일같이 서울과 세종을 오간다. 과장급 이하 공무원들은 장관은 물론 실·국장도 만나기 어렵다. 행정부를 통괄하는 대통령실, 행정부를 감시·견제하는 국회와의 관계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세종 근무 일수는 공무원 급수에 비례한다"(2급 국장은 주 2일, 3급 과장은 주 3일 세종에서 일한다는 뜻)는 우스개까지 나왔을까.
이 식상하다면 식상할 이야기를 세종살이 두 달여 동안 많이도 느꼈다. 어느 부처 과장은 식사 자리에서 "오늘처럼 청사에 있는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고 했고, 다른 부처 국장은 전화 통화에 "오늘은 서울 출장 중이니 내일 오후에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누군가는 "정부 서울청사에 가보면 '간판 없는 사무실'이 많다. 거기 누가 있나 들어가 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고, 한 인사는 "국무위원 중에 세종으로 주소를 옮긴 사람은 세 명뿐"이라는 말로 현실을 보여줬다.
심지어 "언론에 제공하는 보도자료는 실장(1급)들이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대변인실로 넘기라는 공문이 왔다"면서 "'길 위의 과장'들이 후배들을 붙잡고 가르칠 시간이 없어지면서 페이퍼워크가 약해졌다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보도자료에 들어가는 자기 부처 장관 이름까지 틀리는 지경"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개선하느냐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에 막혔던 대통령실과 국회를 이전한 '완전한 행정수도' 건설이다.
대구경북은 4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통합 여정의 역사적 첫걸음을 내디뎠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통합 추진을 위한 첫 모임에서 연내 대구경북 통합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2026년 7월 1일 통합 자치단체를 출범시킨다는 로드맵이 제시됐다. 또한 참석자들은 국토균형발전, 수도권 일극체제 타파, 지방행정 체계 개편 등의 목표 의식에 공감하며 특별법 제정, 중앙 정부의 대대적인 업무 권한 이양 등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합의가 공감대 형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 결실로 이어지려면 통합 대구경북의 '완전한 자치권' 확보가 필수다. 이 자리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우리(단체장)가 하는 일은 중앙 공직자를 만나서 사정하는 일만 주로 하고 있다"고 한 말을 아로새기고, 단순한 통합이 아닌 '완전한 자치권'이 부여된 질적 통합이 이뤄지도록 차근차근 지혜롭게 추진해야 한다. 정치적 허영이나 공명이 앞서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길과장, 카국장을 낳은 행정중심복합도시도 애초 건설 취지는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고, 국가균형발전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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