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커스On] 文정부 '국가채무비율 통계 왜곡', 어떻게 일어났나

◆감사원 감사에서 국가채무비율 통계 축소 왜곡 드러나
◆홍남기 전 부총리가 주도…축소 왜곡 거듭 지시
◆재량지출 대신 총지출 증가율 경제성장율과 연동시켜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축소 왜곡했다고 지난 4일 발표했다. 연합뉴스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축소 왜곡했다고 지난 4일 발표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축소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최근 문 정부 당시 기재부가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3%에서 81.1%로 줄였다고 발표했다.

문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해 집값 통계를 조작했다는 감사 결과에 이어 또 다른 통계 왜곡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 국가채무비율이 2016년 말 36%에서 문 정부 시절인 2021년 말 46.7%로 악화되면서 논란이 적지 않았다.

감사원은 축소 왜곡을 주도한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향후 재취업과 포상 등의 불이익을 받도록 그의 비위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통보했다. 기재부 간부들에게는 주의를 주라고 기재부에 요구했다.

◆향후 재정 상태 진단이 목적

기획재정부는 2015년 구 국가재정법 시행령에 따라 최초로 '2016~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실시했다. 이어 2020년 3월 개정된 국가개정법에 따라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이하 2020 장기재정전망)'을 진행했다. 장기재정전망 결과는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장기재정전망은 현 제도·정책이 유지될 때 미래의 재정상태를 진단하는 게 목적이다. 진단을 토대로 지출 구조조정, 연금 개혁 등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재부는 2020 장기재정전망 준비를 위해 장기재정전망협의회(이하 협의회)를 개최했다. 협의회는 민간 전문가, 관계부처 국장 등으로 구성됐고, 장기재정전망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 등을 수립하는 법적 기구다. 협의회는 2019년 8월 '장기재정전망 추진 계획'을, 2020년 2월 '장기재정전망 공통지침'을 마련했다.

이 지침에는 재량지출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해 추계하도록 했다. [재량지출은 총지출(재량지출+의무지출) 중 국방비, SOC 투자, R&D(연구개발), 경기 대응, 공무원 인건비 등 정부가 재량을 가지고 규모를 결정할 수 있는 지출을 의미]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 달 넘에 이어진 통계 조작

기재부는 2021년 회계연도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탓에 2020년 6월부터 실무 준비에 본격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통계가 왜곡 축소됐다. 감사원 보고서는 어떻게 통계가 왜곡됐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욱이 기재부는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장기재정전망협의회가 검증하도록 한 절차도 빼버렸다. 기재부 주무 국장이 홍 부총리 지침을 이행하기 위해 협의회의 심의·조정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방법을 바꿨다. 실무자들이 반대했지만 주무 국장은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2020년 6월 17일~7월 7일

=기재부는 장기재정전망협의회가 지침으로 정한 '재량지출이 경제성장률에 연동돼 증가한다'는 전제 하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변화를 시뮬레이션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최소 111.6%, 최대 168.2%로 산출됐다. 2015년 실시한 전망은 62.4%였다.

기재부는 7월 8일 청와대 정례보고를 앞두고 이 결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5년도 장기재정전망 당시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62.4% 수준으로 전망했으나 5년 뒤인 2020년도 전망 시 100%를 초과한다고 할 경우 외부의 지적을 받을 우려가 있다.'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채무비율 왜곡 축소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문 정부 시절 마지막으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홍 전 부총리. 연합뉴스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채무비율 왜곡 축소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문 정부 시절 마지막으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홍 전 부총리. 연합뉴스

▶7월 8일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등장한다. 홍 전 부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보고서 자료대로 청와대에 정례보고를 했다. 청와대는 오후 5시쯤 "의미는 크지 않으면서 사회적 논란만 야기할 소지가 있다'는 코멘트를 기재부에 전달한다.

▶7월 14일

=청와대 코멘트를 전달받은 후 기재부 기류는 바뀌기 시작한다. 통계 축소 왜곡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기재부 2차관은 이날 '2060년 국가채무비율 153%'라는 전망 결과를 보고받는다. 그는 "부총리에게는 여러 가지 안으로 보고하라"며 신규 검토할 것을 추가 지시했다.

▶7월 16일

=축소 왜곡의 핵심적인 사안이 결정된다.

기재부 실무국은 시뮬레이션 결과 부총리에게 2가지 전망치를 보고했다. 당초 검토안 153.0%와 신규 검토안 129.6% 등이다.

이 자리에서 홍 부총리는 "129.6%의 국가채무비율은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두 자릿수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또 "총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100%로 적용해 전망하라"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시했다.

애초 국가채무비율은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하는 게 핵심 전제다. 홍 부총리는 국가채무비율 계산의 핵심적인 전제까지 왜곡하면서 정권 코드 맞추기를 자청했다.

이에 대해 재정기획심의관이 '전제를 변경하면 재량지출 증가율이 음수(재량지출 감소) 구간이 나타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개의치 않고 정책 의지를 강조하며 재차 지시했다.

▶7월 17일~7월 20일

=기재부 실무국은 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국가채무비율을 낮추는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총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100% 연동, 경제성장률 대비 총지출 증가율, 관리재정수지 채무전환비율 등 다양하게 전제한 9가지 시뮬레이션을 새로 마련했다.

▶7월 21일

=홍 부총리는 청와대 정례보고에서 "현재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30% 정도 나온다. 두 자릿수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이 내용은 이틀 후인 23일 재정기획심의관을 통해 기재부 실무진들에게 공유됐다.

▶8월 19일

=실무진은 9가지 시뮬레이션 가운데 '총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100%에 연동'하는 부당한 전제를 적용해 산출한 국가채무비율 전망치 81.1%를 최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최 부총리는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다"며 승인했다.

▶8월 21일

=기재부 실무진은 '국가채무비율 축소를 위한 전제 및 방법 변경'에 따른 비판을 우려했다. '총지출 증가율=경제성장률' 전제가 합리적이라는 대응 논리 개발을 논의했다.

▶9월 2일

=기재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20년 43.5%에서 2060 년에 81.1%가 된다는 최종 전망 결과를 발표했다.

▶9월 3일

=국가재정법에 따라 이 같은 결과를 국회에 제출했다.

연도별 국가채무 추이
연도별 국가채무 추이

◆왜곡 지적받은 전망치

국가채무비율 전망치 축소 의혹은 일찌감치 제기됐다.

지난 2020년 10월 7일 국회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기재부는 희한하게 마술을 부린다.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그림"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윤희숙 의원은 "인위적으로 찌그러트려서 2060년에 80%가 나오게끔 만든 것이다. 장기재정전망이라는 것의 기본 원칙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는 당시 "기획재정부가 확장 재정을 위해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를 고의로 축소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9월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의 전망은 '어느 정도 조정'을 가정하고 있다. 정부의 이전 기준에 따른 예측에 의하면 200~220%까지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조세재정연구원과 함께 장기재정전망을 한 결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148.2%라고 했다. 참고로 2020년 국회예산정책처의 결과는 158.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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