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In] 북한 MZ세대인 장마당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고난의 행군 시기를 유·소년기에 겪어, 자립심 강해
◆한국 및 외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큰 세대
◆장마당세대를 겨냥한 대북 정책 수립해야

지난 2일 경기도 시흥시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관계자가 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경기도 시흥시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관계자가 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에 대해 탈북민단체가 대북 전단으로 맞서면서 남북한 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이 오물 풍선 테러를 재개할 경우 대북 확성기를 즉각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은 남한의 대북 확성기 설치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우리에게 북한의 핵무기에 못지않은 파괴력을 가진 고도의 전략 무기다. 대북 확성기는 휴전선 인근에 근무 중인 북한군이 탈북하는 계기로 작용해 왔다.

대북 확성기는 1980년대 이후 태어나 K-문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장마당세대에 가장 큰 파장을 던진다. KB경영연구소는 최근 북한 장마당세대의 특징과 동향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장마당세대는 이전 세대와 어떻게 다르며, 북한의 내부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까?

◆장마당세대, 그들은 누구?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북한의 청년층을 일컫는 말이다. 북한 내부 혹은 해외에서 노동자나 장마당 상인, 무역 일꾼으로 일하며 북한경제에서 실질적인 소득 창출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20대 청년층을 '새세대'로 부르며 사회주의 혁명과 경제 발전, 체제 수호의 역할을 완수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들은 체제 순응보다는 장마당 거래와 무역 활동을 통한 '자립'을 중시한다.

특히 장마당세대는 소득과 소비를 주도하는 한국의 MZ세대와 비슷한 출생 시기, 개인을 중시하는 성향 등이 유사해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장마당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유·소년기에 겪었다. 배급제가 무너지고 장마당을 통해 극한의 생존을 경험했다. 일부는 성인이 되어 국가 주도 공·밀무역이나 장마당 상품의 유통 실무자, 또 일부는 '돈주'로 활동한다.

장마당을 통해 시장경제 원리를 체득해 휴대전화 구매, 외부 문화 빠른 접촉, 중국 은행에 차명 계좌 개설 등 기존 세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둘째,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당국의 통제에 맞서기도 한다. 소득 창출을 위해 해외 파견 근무나 직장을 선호하고 처벌을 각오하고 밀무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월 중국 길림성 의류 제조 및 해산물 가공 공장 임금 체불로 북한 노동자 수백 명이 기물 파손 등 거칠게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월엔 중국 요녕성 의류 가공 공장에서 귀국 일정 지연으로 북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벌였다. 이 사건들의 핵심 주동자들이 20~40대인 장마당세대였다.

셋째, 한국이나 외국의 정보, 소식, 대중문화에 큰 호기심을 보인다. PC, 휴대전화를 다룰 줄 알거나 프로그램 개발에 능숙한 덕분에 K드라마와 교양 프로그램 등을 자주 접한다고 한다.

특히 '노트텔'이라는 중국산 전자기기는 액정·DVD 플레이어·USB 단자가 있어 외부 영상 시청이나 음악 감상에 용이해 장마당세대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넷째, 젊은 여성들은 자립을 위해 비혼을 선호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양육비 부담으로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남한처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창립 78주년을 맞아 지난 1일 열린 개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첫 강의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창립 78주년을 맞아 지난 1일 열린 개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첫 강의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딜레마에 빠진 북한 당국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미북회담 결렬 이후 남북교류협력 중단을 천명했다.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통해 주민들의 외부 문화 접촉 차단에 집중하고 있다.

이어 청년교양보장법(2021년),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 등을 잇따라 제정했다. 평양문화보호법은 괴뢰말투사용죄, 괴뢰말투유포죄 등에 대해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사법 통제 강화에도 장마당세대들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영향을 받아 '자기야', '남친', '여친', '사랑해', '스트레스' 같은 한국식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고 데일리NK가 보도하기도 했다.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나이 어린 여성이 혈연 관계가 아닌 나이 많은 남성에게 '오빠'라고 부르면 김정일 정권에서는 '계도'에 그쳤지만, 김정은 정권은 '형사처벌'을 강화한다. 외부 문화 유입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 통제에 집단 반발 사례도 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지난 1월 함북 청진시 수남구역에서 비사회주의 풍조를 단속하는 규찰대가 스키니 바지를 입은 여성을 단속하고 벌금형에 처한 바 있다.

당시 현장 주민들은 "최고 지도자와 딸은 긴 머리에 가죽 잠바, 선글라스는 껴도 문제가 되지 않는 데 인민은 바지 하나를 마음대로 못 입게 한다"며 항의하며 규찰대와 충돌했다고 전했다.

또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집단 시위를 벌였다는 뉴스도 전해진 바 있다.

[그래픽] 대북 확성기 음향 전달 범위
[그래픽] 대북 확성기 음향 전달 범위

◆장마당세대, 북한 변화 주도할까

장마당세대가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응보다는 변화와 자립을 원하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북한 체제 변화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할 지는 알 수 없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북한이탈주민들을 해마다 100명가량 조사할 결과 MZ세대인 장마당세대가 더 개인주의적이거나 자본주의에 친화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오히려 김정은과 주체사상에 대한 지지도가 다른 세대보다 높다. 북한 체제의 지속가능성도 더 길게 본다고 한다. 북한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도 북한 거주할 때는 다른 연령층보다 찬성도가 높다고 한다.

이 같은 결과는 북한 남성들의 경우 통상 20살부터 30살까지 10년 동안 군대에 복무하는 경험이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외부 문화를 접했거나 북한에서 장사를 한 경험이 있는 장마당세대는 자본주의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다고 한다. 집단보다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강하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대북정책은 장마당세대의 행동 양식과 변화 흐름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 당국과 장마당세대 간 보이지 않은 전투를 북한 체제 변화의 디딤돌로 활용해야 한다. 장마당세대를 겨냥한 의식화 및 조직화 사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북정책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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