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 리뷰] 광주 민주항쟁 5.18 역사의 인식, 극단 하땅세의 ‘만 마디 말 보다’ 오브제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극단 하땅세의 오브제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성북 라이트하우스, 원작 김민정, 연출 윤시중)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쇼케이스(2018)와 이듬해 시범 공연을 거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레파토리 공연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창제작 유통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의 역사를 전국을 누비며 그 시간을 칠해오면서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작품상을 받았다. 이번 공연은 김민정 작가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공동 작업을 통해 공간의 특성을 살렸다. 성북동 라이트하우스에서 오브제 극으로 5.18의 시간을 다시 칠하게 된 것이다.

연극적인 구성도 변화되었다. 전작(前作)은 전남도청에서 칠장이를 하던 영식과 혁(부자)의 이야기에서 도청에서 관리일을 하던 경자(문숙경 분)와 대학생 복희(고은별 분)의 죽음까지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다. 성북동 한 주택가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경자는 전남도청 인근에서 죽어간 딸의 죽음으로 삶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살아간다. 딸아이 복희의 제삿날 그날의 죽음이 입체 동화처럼 역사가 파동된다. 배우들의 놀이성으로 전진하는 속도감도 좋다. 44년의 현재 삶과 과거 광주민주항쟁과 죽음의 기억이 시공간을 초월해 전개되는 오브제 놀이극은 씻어낼 수 없는 역사로 변주된다. 경자의 기억으로 살아나는 현재 삶의 공간에서 내면으로 거세 될수 없는 악몽 같은 기억이 꿈처럼 재생된다. 오브제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의 특징은 역사성을 재현하고자 하는 드라마처럼 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복희와 남편, 아들의 죽음을 가슴으로 묻고 살아온 경자가 살아가는 공간은 그날의 역사로 발화되고 죽음의 기억으로 그날의 잔혹한 시간으로 되돌린다.오브제를 활용하는 놀이성으로 흩어지는 시간에서 우리는, 경자의 현재로부터 과거의 그날까지 동일한 현장을 바라보게 되는데, 성북동 라이트 하우스의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다큐 적이면서도 입체 동화 같다. 특히이번 공연은 공간성과 배우들의 놀이성에 주목해야 한다. 원작의 서사가 이처럼 다양한 공간구조로 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작 공연들과는 다른 이야기다. 객석, 부엌, 화장실, 벽면의 기둥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인물들은 5.18의 그날이 반세기가 다 되어도 소멸할 수 없는 가슴의 역사로 살아가고 있는 경자와 복희 모녀의 이야기이면서도 죽음의 역사(시간)가 되어버린 칠장의 가족의 비극사이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 '위대한 놀이'로 극단 하땅세의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극단 하땅세는 낸시 해스티(Nancy Hasty)의 <연출가>(2010)라는 작품(윤조병 번안, 윤시중 연출, 76 스튜디오)을 창단 공연으로 무대화하면서 이어졌다. <천하제일 남가이>(2012), <파리대왕>(2013), 아시스토파네스의 <새> (2013, 윤조병 번안, 윤시중 연출>로 극단 하땅세를 알렸다. <템페스트>(2014), (2014) <위대한 놀이>(2017), <그때 변홍례>(2018), <시간을 칠하는 사람>(2019)으로 연출가 윤시중 만들었다. <오버코트>(2015), <붓바람>(2016), <외투>(2015) 등은 아비뇽과 국제무대에서 초청이 잇따르면서 하땅세를 대표하는 가족극이 되었다. 특히 <그때, 변홍례>는 극단 하땅세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죽음의 진실을 둘러싼 모순과 권력, 추악한 인간의 욕망과 탐욕, 법과 정의의 부재 등 시대 속에 은폐된 추악함은 한국 사회 수중 속에 침몰되어 있는 진실의 실종과 정의의 부재를 연극적인 놀이성의 은유로 드러냈다.

스탠드 백열등은 등장인물 내·외면의 감정을 조절하는 장치로 다변화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무대를 배치하는 아이디어가 기발했다. 배우들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인물의 감정과 분위기를 스탠드 백열등으로 장면 분위기를 만들고, 인물 감정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밝히며 스크린으로 그림자를 투영해 인간의 감추어진 욕망을 흑백으로 조절하며 흥미로운 연극적 놀이 발상으로 무대를 활보하며 극 중 인물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레파토리 작품으로 하땅세 극장에서 매주 금, 토요일 공연되고 있다. 윤시중 연출은 극장을 개관하면서 극장 활용도 놀이극처럼 극장 공간을 활용하고 개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연극을 보면서 맥주 한잔과 음료, 팝콘을 즐기고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면서 연극을 즐긴다. 80,90년대 동시상영 영화관에 들어선 것처럼. '그때 변홍례'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둘러싸고 매주 진범을 찾아가는 50석 극장은 매주 축제 분위기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 입체동화처럼 재현되는 그날의 기억과 죽음의 역사.

오브제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주택 공간과 오브제 활용이 실타래처럼 오밀조밀하게 엮여 광주 민주항쟁 5, 18에 대한 기억과 복희의 죽음이 성북동 작은 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는 경자의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성북동 라이트하우스는 현실의 삶으로 그려지고 딸을 마주하는 제삿날부터 그날의 역사는 입체 꿈처럼 재생된다. 연출과 배우들의 '위대한 놀이'가 집 외경의 구조와 환경, 내부 공간들이 그날의 전남도청 서사와 맞물려 진행되는데 배우들의 놀이는 몽상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인 현실성을 드러낸다. 장면이 전개되는 구도와 놀이로 활용되는 구성들과 전환들이 돋보인다. 나무 탁자는 산자와 역사의 죽음들이 소환되는 놀이공간이 되고, 5.18 역사의 망자들이 등장해 하얀 전지 종이에 그리는 집, 도청, 길가, 강, 타자기, 분수대 등은 종이를 뚝딱 잘라 오리고 붙여져 입체동화극으로 그날의 시간들이 놀이로 재현된다. 광주 민주항쟁의 과거는 현재가 되면서도 현재는 과거의 시간으로 멈춰져 있다. 치유될 수 없는 역사는 무대의 시공간도 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 그날을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공간의 구조와 설정은 이렇다. 경자가 살아가는 현재의 집이다. 벽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며 걸려있고 그 아래는 부엌으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우측으로 화장실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밥솥이 놓여있다. 객석 좌·우측에는 동네가 한눈에 들어오는 창문이 보인다. 연극과 현실의 경계는 없어보인다. 창문 틈으로 골목길을 알리는 동네 소음들이 기억의 시간을 칠해준다. 극이 시작될 때쯤 배우들은 관객들한테 작은 꼬깔 종이로 물도 나눠주고 화장실과 부엌 체험도 시킨다. 경자(문숙경 분)는 부엌에서부터 삶의 일상처럼 움직인다. 방 안으로 들어와 작은 커피머신으로 투박하게 커피를 내린다. 방 한가운데 있는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정도 보이는 제사상으로 활용되는 나무 탁자는 복희의 삶의 흔적들이 배어 있는 오브제로 상징되면서도 전남도청과 금남로의 무덤가로 변주되는 죽음의 공간이다. 기억의 통증을 거세할 수 없는 칠장이 가족으로 대물림되는 듯 말이다.

경자는 탁자 모서리 밑으로 페인트 통을 고정하더니 놋쇠 그릇을 올리고 예쁜 소품을 올린다. 밖에서 트럭 운전사 과일 파는 소리에 참외를 사와 올리고 두툼한 초에 불이 밝혀진다. 참외는 씻어낼 수 없는 복희에 대한 기억이다. 마지막 장면에 밥솥으로 참외가 쏟아져 나오는 동화적인 장면으로 연출되는데, 밥솥은 시간의 역사이며 복희의 무덤이다. 역사의 오류로 짓눌려온 복희의 죽음은 밥솥의 타이머처럼 시간이 지나도 쌀밥으로 익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이다. 탁자는 딸아이(복희)와 경자, 칠장이 가족사로 죽음의 역사가 오브제 놀이극으로 그날을 마주하게 된다. 놀이가 서사로 변주되고 배우들은 공간을 마법처럼 움직인다. 서사(극) 놀이라고 할까.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한 15분 정도 관객은 경자가 살아가는 일상을 그대로 보게 된다. 이웃 할머니 집을 방문해 투명 인간처럼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몸이 뒤틀리기 시작할 때쯤 연출도 감각적으로, 극으로 전환되는 타이밍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놀이가 서사가 되고 서사는 파편적인 놀이로 흩어지면서도 칠장이 가족이 붓질로도 지워낼 수 없는 시간이 꿈처럼, 경자의 기억으로부터 쏟아진다. 칠장 가족의 붓질은 소멸할 수 없는 역사다. 그날의, 참혹한 죽음은 지워지지 않는 피로 멈춰버린 시간인 것이다. 칠장이 가족한테 '칠'의 행위는 '1980년 5,18일에 멈춰져 여전히 시간을 가슴으로 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어 장면은 할머니가 전남도청에서 근무하던 과거, 딸아이를 출산하던 생일파티, 도청 여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남편의 기억과 딸의 성장부터 복희의 죽음이 탁자로 멈춰지면서 진실이 사라진 역사처럼, 사라진 벽면의 벽시계는 어느새 4시15분쯤을 가리킨다. 경자와 복희, 칠장이 가족이 경험한 그날의 시간만큼, 관객도 그날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방안의 창문에 비를 내리게 하는 장면, 탁자에서 진행하는 종이극 놀이 속에 꼬깔 종이컵들을 활용해 마술처럼 도청 앞 분수대도 만들고 종이를 자르고 붙이면 도청 공간이 된다. 타자기로 변주되는 오브제 놀이를 지나고 밥솥에서 복희가 좋아하던 참외가 쏟아지는 장면을 지나면 마지막 장면은 죽음의 무덤가가 된 나무 탁자 위를 덮는 하얀 이불에 덮인 복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사이 연출은 진압군을 우회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군복 색상의 우비를 쓰고 등장시키는 기발함도 보인다. 1시간 10분 정도 한편의 입체 동화를 읽은 것처럼 꿈처럼 느껴지면서도 시간을 칠하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경자와 복희 모녀의 서사는 한 칠장이의 기구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입체 동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이번 윤시중 연출의 '시간을 칠하는 사람'( 작 김민정)이 광주 아시아 전당, 밀양아리나와 전국을 다니며 시간을 칠해 왔지만, 극단 하땅세의 성북 라이트하우스 공연은 전작과는 연출구도가 완전히 다르다. 공간에 따라 서사와 놀이를 다른 각도에 활용하며 다른 연극적 체험을 하게 하는 윤시중 연출을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인터뷰 때 그를 "위대한 놀이의 승부사"로 정한 것처럼 이번 오브제극 '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극단 하땅세 배우들의 놀이성은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로 입체 동화책 한 권을 뚝딱 만들 정도로 기발하고, 감각적이다. 특히배우 문숙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에서 원숙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번 성북동 라이트 하우스에서의 금남로와 전남도청의 체험은 환타 지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특히 지붕 위로 물을 뿌려 실제 비가 오는 효과를 내며 경자의 지붕 위의 기억을 소환하고, 수박 참외 트럭 소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 보면, 극단 하땅세의 위대한 놀이는 종점(終點) 이 없는듯 하다. 오브제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연극전공자들과 아동, 청소년들을 포함해 가족 모두가 볼만한 작품이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시간을 칠하는 사람. 극단 하땅세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기예술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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