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오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 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을/ 외로이 이 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 갑니다."
가곡 '그 집 앞'은 1933년 이은상이 작사하고 현제명이 작곡했다.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소월의 시가 생각난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대로/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가는 길' 부분),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못 잊어' 부분),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먼 후일'부분)
시든 노래든 반복이 만들어 내는 리듬은 아름답다. 삶이 일상 반복의 연속이듯. '그 집 앞'은 4분음표로 이어지는 단순한 멜로디와 화성의 반복이 주저와 망설임의 정을 가지런히 질서화한다. 단순함은 연민의 정을 깊게 풀어내는 측면이 있다. 한데 왜 그 집 앞을 눈에 띄지 않게 지나야만 했을까. 여러 차례 다시 가면서도 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을까. 그 시대엔 모두 수동적이고 자기표현이 서툴렀던 것일까. 그 심정을 알 듯도 하지만 그리움이나 미련이라고 얼버무리기엔 가슴이 답답하다.
2절엔 굵은 빗줄기 속을 우산도 없이 간다. 비는 화자의 눈물을 감추는 장치가 된다. 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노래 '레인 앤 티얼즈(Rain and Tears)'에 이런 가사가 있다. "Rain and tears are the same(비와 눈물은 같은 거예요)/ But in the sun you've got to play the game(하지만 태양 아래선 감춰야 하죠)". 아폴리네르의 시 '언덕'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울고 울고 또 울어보자/ 달이야 보름달이건/ 까짓 초생달이건/ 울고 울고 또 울어보자/ 햇볕에서는 참 많이도 웃었다니까."
남자라고 왜 울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하지만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통념 때문에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마음을, 속 편하게 우는 심지어 눈물을 무기로 삼는 여자가 어떻게 알 것인가. 한데 노래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어쩌다 그 집 앞을 지나간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그 집을 향하고 있다. 간절한 그리움의 표현이지만 그렇게라도 스스로 심리적 안정과 자기 위안을 삼으려는 행위이다.
이 노래가 갑갑해 보이는 이유는 궁핍한 시대 현실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자유가 없는 현실은 식민지인을 소심하고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자신감과 결단력, 감정처리 능력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그 시대인들의 공통적인 모습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풍요의 시대엔 누구도 자기표현을 억제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억압받던 시대의 소극적이고 소심한 정서로는 공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삶이 윤택해지면서 한국인의 성격은 자기표현이 분명한 외향성으로 바뀌어 갔다. 전 국민의 연예인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거리낌 없이 노래와 춤, 장기를 펼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눈물과 한의 노래들은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지면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마음속의 '그 집 앞'이 있을 것이다. 주위를 배회하며 망설이다가 용기가 없어 사랑을 놓친 애잔한 사연들을 그 시대만 해도 이 노래가 대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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