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입법기관인 제10대 유럽의회 선거가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9일까지 실시됐다. 선거 결과 우파정당이 약진해 유럽 정치 지형의 '우향우' 속도가 한층 빨라질 전망다. 또 우파의 돌풍으로 EU가 안고 있는 이민·환경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주요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중도우파 유럽국민당 제1당 유지
유럽의회가 10일 발표한 잠정 예측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제1당 격인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은 전체 720석 중 191석(26.53%)을 얻어 유럽의회 내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당초 1차 예측 결과에서는 181석이었으나, 개표가 먼저 끝난 회원국 집계 결과 등이 반영되는 과정에서 예상 의석 수가 더 늘어났다.
제2, 3당은 어느정도 자리를 지켰다. 제2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은 135석(18.75%)을 차지, 의석 비중이 현 의회(19.7%)보다 소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제3당인 중도 자유당그룹(Renew Europe)은 현재 102석(14.5%)에서 크게 줄어든 83석(11.53%)에 그칠 것으로 점쳐졌다.
친환경 기후정책 추진에 앞장섰던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현재 71석(10.1%)에서 크게 줄어든 53석(7.36%)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강경우파와 극우 성향 정치세력은 약진했다. 강경우파 성향 정치그룹인 유럽보수와개혁(ECR)은 현재 69석(9.8%)에서 71석(9.86%)으로, 극우 정치그룹 '정체성과 민주주의(ID)'는 49석(7.0%)에서 57석(7.92%)으로 의석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기존 정치그룹에 속해 있지 않은 '무소속' 극우·민족주의 성향 정당의 약진도 눈에 띈다. 독일대안당(AfD)은 독일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 2위를 차지, 유럽의회에서 적어도 16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한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소속 정당인 중도 성향 르네상스당이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에 참패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30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민·환경 등 EU 정책 변화 가능성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세력이 약진하면서 EU 주요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이민 문제기 뜨거운 감자다. 미 CNBC 방송은 유럽의회가 활동하게 될 향후 5년 동안 국경 통제 강화, 역외 이민자 강경 단속 등 문제가 EU 의제의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역외 이민자들의 관문 역할을 하는 EU 남부 국가들과 독일, 북유럽 등 북부 국가들 사이에 뚜렷한 이견이 있는 만큼 이주민 단속을 어떻게 이행할지가 향후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물가 등급과 지지부진한 경제 성장으로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이번 선거로 추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르미다 판 리즈 선임연구원은 유럽의회가 이미 우파 성향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부 기후정책 관련 법안에서 후퇴하는 등 EU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탄소중립 정책이 "진짜로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수개월간 유럽 곳곳을 휩쓴 '트랙터 시위'에 놀란 EU는 이미 농가에 대한 환경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한 바 있다. CNBC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2035년까지 내연 기관 차량 판매를 금지하려는 계획이 철회되고, 재생에너지 중시 정책이 후퇴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친러시아, 친중 성향인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 차원의 공동 지원 기조가 불투명해지고, EU 공동 방위비 부담 확대에 대한 이견이 분출될 소지도 있다고 CNBC는 예상했다.
안보 분야에 있어 긴밀한 우방 미국과 핵심 교역 상대국인 중국이 첨예한 무역 전쟁을 벌이는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선거 결과로 EU가 최첨단 산업과 친환경 산업 등에서 보호주의와 개입주의를 더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U 정상들 17일 새 지도부 구성 논의
EU 입법기관인 유럽의회 선거가 종료됨에 따라 향후 5년간 EU를 이끌 새 지도부 구성 작업이 본격화한다.
EU 27개국 정상들은 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비공식 정상회의를 열어 이번 선거 결과를 토대로 지도부 구성 논의에 착수한다. 이후 27∼28일 정례 정상회의에서 EU 행정부 수반인 집행위원장 후보를 확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EU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EU 지도부 구성 권한은 전적으로 EU 27개국 정상들로 구성된 이사회에 있다. 그러나 EU 기본법 격인 리스본 조약은 '집행위원장 지명 시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고려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EU는 조약의 취지를 반영하기 위해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정치그룹(교섭단체) 대표 후보를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로 우선 고려하는 슈피첸칸디다트(Spitzenkandidat·선도후보) 제도를 도입했다.
이날 발표된 선거 출구조사 결과 유럽국민당(EPP)이 무난히 1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EU 정상들은 EPP 선도 후보인 현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65)을 후보로 지명할 가능성이 크다. EU 정상 중 다수가 EPP에 참여하는 각국 정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잠정 예측 결과 발표 직후 연설에서 "유럽 시민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건 강력한 유럽"이라며 "좌·우 극단에 맞서는 요새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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