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판도라 상자를 연 7명의 여인들, 판도라들의 포트럭 (pot-luck)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 판도라의 죄는 '호기심 '이었다. 얄궂은 제우스는 열어보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모든 것들이 담긴 선물 상자를 인간세계에 내려 보내지만, 한 여인은 그것을 열었다. 그리스의 이 신화는 인간사 불행의 근원을 그 상자를 열어버린 여인의 호기심에 두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상자 속 희망으로 위안 삼게 한다. 성경이나 신화에서 문제시하였던 여인의 호기심은, 사실 긴 역사 속에서, 신의 창작 행위와 구별되는 매우 인간적인 문명의 진화와 예술 행위의 원천이었다.

만약 제우스가 카메라를 여인에게 선물한 것이라면 어떤 저주를 함의하며 무엇을 당부하였을까. <판도라들의 포트럭>에 함께하는 7인 판도라들은 호기심(好奇心)으로 어두운 상자를 열어, 찾거나 가꾸어 낸 자신의 이야기를 음식 대신 가져온다.

그리고 사진에 관한 제우스의 여러 가지 상상의 당부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창작 행위에 관한 호기(豪氣)를 도모하는 파티를 전시로 대신한다. 7인의 작품에 관한 감상의 포문을 열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여성사진가협회(회장 최인숙)의 특별기획전시전인 판도라들의 포트럭 (pot-luck) 전시가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강남에 있는 김영섭사진화랑에서 진행된다.
한국여성사진가협회(회장 최인숙)의 특별기획전시전인 판도라들의 포트럭 (pot-luck) 전시가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강남에 있는 김영섭사진화랑에서 진행된다.

김연화의 각기 다른 <감자에서 싹이 나서>, <숨은그림찾기> 등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연작은 할머니가 생전에 사셨던 가정집이 철거되는 현장에서 수집한 폐기물로 구성한 정물사진이다. 중심 사물을 감싸며 화면을 채우는 검정은 배경색인 동시에 시야의 저 멀리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이 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야기를 쌓듯", 파쇄의 잔해들을 새로운 오브제로 가져와 바닥과 어두운 허공 위에 쌓아 올렸다. 위태롭게 균형을 추구하며 쌓아진, 부조화 속에 조화를 이루는, 그러나 곧 사라질 이 조형물에는 삶의 특별함을 집어삼키는 일상성의 승리에 순응하고 또 대응하는 작가의 사색이 담겨 있다.

김종옥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 뒷동산에 피어 있던 진달래와 가족의 정을 상징하는 밥그릇을 조합하여 <꽃밥>을 만들었다. 보통 꽃은 먹을 수 없는 생물이지만 그의 사진 속에서는 기억을 먹고사는 사람의 정서를 상징하는 매개물이다. 진달래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공중에 부유하며 또한 바닥에 뒹굴기도 한다. 이는 살아 있는 것, 즉 박제된 덩어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선명하게 요동치는, 밥처럼 살게 하는 영양분을 제공하는 기억이다.

김종옥,꽃밥 #1,30x3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김종옥,꽃밥 #1,30x3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김주영의 <그날>에는 자연의 빛깔과 인공의 빛깔이 공존한다. 매직 아워(magic hour)라는 짧은 시간에 놓인 골목길은 아직 어둠을 거부하는 하늘의 푸른빛과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잠시의 마법이 걸린 신비한 풍경이 된다. 그 찰나를 영원으로 새기고자 그 시간을 기다리며 그 골목을 서성였던 작가의 호흡과 발걸음이 우리를 그 풍경 안에 함께 하게 한다.

신은 이제 인간에게 빛의 바통을 터치하며 휴식을 취할지도 모른다. 하늘에는 달과 별, 혹시 남아 있는 구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곧 인간은 오롯이 인공의 빛에 기대어 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낭만적 시선은 한낮에 훤히 보였던 경관보다 밤에 짙은 음영 속에서 아스라이 불 켜진 누군가의 창가로 향한다.

김주영,그날,53x78cm,Archival Pigment Print, 2021
김주영,그날,53x78cm,Archival Pigment Print, 2021

박정선의 작품은 자화상이며, 소제목은 Red, Blue, Yellow 등의 색상 명이다. 이들은 작가가 과거에 각인된 여러 상황과 그로 인해 발현된 감정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색이 주는 뉘앙스로 은유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작가는 20대부터 쓴 일기를 다시 보며, 타인 또는 외부 세계와 관계를 형성하며 변곡점을 맞이했던 자신을 추적하고, 지금에 자신과 대면하고자 사진 속 공간을 무대 삼아 만남의 장을 마련한다.

그때는 몰랐던 자신을 이해하고 끌어안아 현재 자신과의 동일성을 찾으려는 작가의 자의식은 자신의 페르소나 일부를 사라지게 하거나, 대체한 배경 또는 꽃과 같은 상징적인 사물과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식 구성에서 드러난다. 그의 말처럼 "과거의 정체성 분열"은 이제 재구성으로 걸러지고 승화된 조각들이 되어, "내적 평화"를 형성하는 유의미한 부분이 된 것이다.

박정선, 2024 Her #1,68x 68cm,Archival Pigment Print 2024
박정선, 2024 Her #1,68x 68cm,Archival Pigment Print 2024

윤재경의 <器物/기물> 연작에 등장하는 사물은 그 자체의 고유한 물성이나 용도에 관한 이해를 떠나서 바라보는 이의 심리적 감응을 발현하는 대상이다. 작가는 동양적인 사발이나 물건에서, "균형과 평형" 의 기운을 찾아 닮으려 하고, 자기 마음의 상태에 " 평온과 평정"을 찾는다고 한다.

윤재경, 器 物 #08, 90x67cm,Archival Pigment Print,2023
윤재경, 器 物 #08, 90x67cm,Archival Pigment Print,2023

이는 대상과 자아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시도와 수행으로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모든 물체는 유일한 기물(奇物)로 변환된다. 빛을 조절하여 암흑의 공간에 사물의 가장자리 일면을 감추고, 나타나며 사라지는 연기를 피운 시도는, 그의 체험담이 감상자의 시각장 안으로 전달되는 주요한 효과가 된다.

이미경,모의고사1,2,3시리즈,각125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이미경,모의고사1,2,3시리즈,각125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0

이미경 <꿈의 조각> 연작은 작가와 고3 수험생활을 막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과의 공동작업이다. 작가는 인생의 주요한 변환 시점을 성취한 학생들에게 일종의 의식(儀式)의 장을 열어주었다. 학생들은 "환희와 기쁨" 그리고 그와 함께 밀려오는 "아쉬움과 허탈함" 을 영어, 수학, 한국사 등 이미지와 텍스트가 담긴 교과서를 비정형으로 해체하여, 던지고, 부치거나, 임의의 형태로 재조합하는 행위로 응답하였다.

작가는 다시 이 의식의 잔재이자 증거품을 평면과 입체로 콜라주하고, 조명을 통해 눈길이 가는 중심과 주변을 조절하여 이야기의 요소들을 톤을 강렬하게 구성하였다. 그는 이 작업에 함께한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조성옥의 작품에 두드러진 색상과 명도는 사진 장치에서 노출과 화이트 밸런스 측정과 재현을 위한 18% 표준 반사율에 근거한 회색 톤과 유사하다. 이 회색은 이미지의 계조와 색상이 중성적인, 즉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 고요한 상태 위에는 기하학적인 무늬의 부조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작가는 "모든 기쁨과 모든 슬픔이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알아내고 싶었다." 고 한다. 그의 말처럼,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뀌는 변덕스런 감정 기복의 농도와 색깔을 섞고 또 섞는다면, 모든 것이 무화(無化)된 회색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무화되지 못한 감정의 서사 찌꺼기는 이러한 문양으로 응고되어 남지 않을까. 이미지는 대부분을 숨기고 말이 없기 때문에, 그 사연을 더욱 궁금하게 한다.

조성옥, Déjà vu: In Shades of Gray#027, 80x 60cm,Archival Pigment Print, 2023
조성옥, Déjà vu: In Shades of Gray#027, 80x 60cm,Archival Pigment Print, 2023

이번 전시는 한국 여성사진가들의 자질향상과 권익신장, 사진 매체의 예술적 탐구, 사진문화에 기여함을 기본 취지로 하는 한국여성사진가협회(회장 최인숙)의 특별기획전시로 6월11일에서 16일까지 김영섭사진화랑에서 진행된다.

임안나(상명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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