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아들 구본훈씨가 참전용사인 아버지 구자기 씨 그리며

"6월이면 아버지에게 한국전쟁 이야기 듣던 때가 생각납니다"

구본훈(앞줄 가운데)씨의 결혼식 모습.사진 왼쪽이 어머니이며 그 뒷쪽이 아버지 구자기씨.구본훈씨 제공
구본훈(앞줄 가운데)씨의 결혼식 모습.사진 왼쪽이 어머니이며 그 뒷쪽이 아버지 구자기씨.구본훈씨 제공

해마다 6월이 다가오면 저는 아버지가 더욱 더 생각이 납니다 그것은 6.25 한국전쟁 때문입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우리집 아랫방은 아버지 또래의 사랑방이라 저 어릴적 밤이면 모여서 한국전쟁때의 일들을 이야기 하는걸 많이도 듣고 자랐습니다. 1926년생이신 우리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꼭 74년 전인 1950년 6월25일 일요일 그때는 농번기라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에 한창 바쁜 철인데 느닷없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해 8월. 미군과 한국군이 동네에 들어와 모두 피난을 가라고 하기에 식량을 이고 지고 대구로 피난을 가셨다지요. 가족이래야 반 년 전 태어난 큰 딸과 아버지, 어머니 셋 뿐이었답니다.

마침 6남매 중 막내인 아버지를 장가보내고 2년 전 대구 남문시장 부근으로 이사를 가 계신 큰아버지댁으로 피난을 갔답니다. 이 집에서 4형제 가족들이 피난살이를 했다고 합니다.그 얼마 후 징집영장이 나와 그때 나이 25세인 아버지께선 대구남산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답니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딸아이를 업고 남산학교 담장 너머로 수많은 군인들이 훈련 받는것을 보면서 가슴을 조이셨다고 생전에 자주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여기서 1주일 동안 제식훈련과 총 쏘는 법을 훈련받고 곧장 영천신령전장에 가셨죠. 영천전투는 다부동전투와 함께 대구와 부산을 방어하기 위한 필사의 전투였답니다 수많은 전우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전장에서 바로 눈 앞에서 보는게 얼마나 두려웠을까 생각해 봅니다.

구사일생으로 그 곳에서 살아남아 북진을 해 평북 덕천까지 갔지만 중공군의 침입으로 후퇴를 하다 개성부근에서 눈사태를 만나는 바람에 아버지는 동상과 생인손을 앓으셨죠. 그 탓에 아버지는 마산 제1육군병원으로 후송돼 1951년 5월2일자로 의병제대를 하시게 됐습니다. 하지만 또 2차 징병을 당해 모병 됐다가 제대를 하게 되시는데 이때 받은 제대증에는 육군총참모장 대장 백선엽 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우리집 아랫방엔 그 옛날 아버지 친구분들이 밤이면 모여 이야기를 하시는데 피난길 총을 어깨에 걸치고 다닐만한 사람은 피난길 옆 정차해 놓은 트럭에 마구잡이로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전세가 불리하고 급하니까 모병관이 나이도 묻지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키와 덩치만 좀 크면 무조건 붙들고 차에 실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군인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이렇게라도 했겠지요.

어느 날은 아버지 친구께서 무릎위로 바지를 올리시더니 여기를 한 번 만져봐라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총알이 그대로 박혀 수술을 안 하고 그냥 살아오신 흔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친구 중 한 분은 딸아이 하나 두고 전사하여 그 집 아지매는 한평생 두 가족이 살았습니다. 또 어느 친구분은 전쟁터에서 포탄 파편에 눈을 다치셔 평생 검은 안경을 쓰고 다니셨습니다. 그밖에 많은 동네분들이 전사를 하여 그 집의 기둥엔 '충절의 집' 이란 글씨를 철판에 새겨 걸어두었습니다.

아버지가 6.25 참전을 하셨기 때문에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증서를 대통령으로부터 받았고 또 아들 손자가 병역을 마쳤기에 우리집은 병역명문가증서와 병역명문가패를 받았습니다. 거실벽과 책상위에 놓아진 명문가패를 볼 때면 아버지가 더욱더 생각 납니다.

아버지 지금은 고향땅 선산에 어머니와 함께 조부모님 곁에 모셔져있지만 이 아들은 언젠가 나라에서 보살펴주는 국립묘지인 영천호국원으로 두 분을 모셔야지 늘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 이 아들 장가보내시고 겨우 쉰네해 사시고 돌아가셔 살아생전 아들 노릇 한 번 못한 것 같아 아들 한없이 후회됩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

若我再生於彼世(약아재생어피세) 만약 제가 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其席卽言兩親子(기석즉언양친자)그 자리에서 곧 말하겠어요.아버지,어머니의 아들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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