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작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11번이나 기준금리를 묶었다.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았다. 이유는 물가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가 되면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하겠다고 한다.
물가가 잡히면 기준금리를 내리겠다? 이상한 말이다. 기준금리를 올려야 물가가 잡히지 않나?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6%로 예상한다. 이 예상이 맞는다면 올해 기준금리 인하는 없다. 소극적이나마 한국은행은 긴축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은 확장적이다. 올해 1분기 '관리재정수지'는 75조원 적자다. 작년 1분기와 비교해서 적자가 21조원 증가했다. 올해 3월 기준 누적 국가 채무는 1천115조원에 달한다. 재정 적자가 증가한 원인은 단순하다. 세수(稅收)가 줄었으나 정부지출은 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56조원의 '세수 펑크'가 있었다. 올해 세수는 작년보다도 2조원 적을 것으로 예측된다. 금융투자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가 폐지되면 세수는 더 줄 것이다. 경기 하락을 막기 위해 예산을 많이 집행한 것도 재정 적자가 증가한 원인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풀었다.
모든 관료와 정치인은 '케인스주의자'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가 호황에서 침체로, 침체에서 호황으로 바뀌는 것을 경기 변동이라 한다. 호황에서 침체로 바뀔 때는 실업이, 침체에서 호황으로 바뀔 때는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케인스주의자'는 재정정책을 통해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침체기에는 세수를 줄이고 정부지출을 늘린다. 호황기에는 세수를 늘리고 정부지출을 줄인다. 정부는 적자 재정과 흑자 재정을 통해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
정부의 경제 안정화에 대해서는 이런 반론(反論)이 있다. 적자 재정으로 공공 부문이 확대되면 민간 부문이 축소될 수 있다. 정부가 빚을 내려고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오르고 소비와 투자는 감소한다. 늘어난 정부지출만큼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면 수요는 그대로다. 그저 공공 부문이 커질 뿐이다.
다른 반론도 있다. 재정 적자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장차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둘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진 빚을 자식 세대가 부담하기를 원치 않는 부모 세대는 저축을 늘린다. 재정 적자만큼 저축이 늘면 정책은 무력화(無力化)된다. 빚을 자식 세대에 떠넘길 정도로 부모 세대가 이기적이어야 재정정책이 효과가 있다.
개인과 달리 국가는 빚을 빨리 갚지 않아도 된다. 30년 또는 50년 후에 갚아도 된다. 국가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 채무를 계속 쌓을 수는 없다. 후손(後孫)이 갚아야 할 빚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부채이자 자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채는 국민 중 누군가가 산다. 국채를 산 사람은 채권자가 되는데 이들에게는 국채가 자산이다. 국민 중 일부는 세금을 내서 국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지만, 다른 일부는 그것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국채 발행으로 국가 채무가 늘지 않는다. 그저 돈이 이 사람 주머니에서 저 사람 주머니로 옮겨갈 뿐이다.
현실에서는 국민만이 국채를 보유하지는 않는다. 많은 외국인이 우리 국채를 보유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외국인이 보유한 국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면, 재정 적자는 다음 세대의 빚이 된다. 다만, 국채로 조달한 돈을 정부가 생산적인 부문에 투자해서 다음 세대의 소득이 증가할 수 있다. 정부투자 수익이 국채 이자보다 크면 다음 세대는 빚을 부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대표적인 '통화주의자(monetarist)'다. '통화주의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재정정책은 효과가 없으니 정부는 균형 재정을 유지하고,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일정 비율로 늘려야 한다.
'통화주의자'는 주류(主流)가 아니다.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재정정책이 유효하다는 생각이 대세(大勢)다.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 물론, 전제 조건이 있다. 국가 채무에는 한계가 있고, 정부는 세금을 생산적인 부문에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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