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향래의 소야정담(小夜情談)] 오 마이 ‘갓’(GAT)!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1902년 이탈리아에서 온 젊은 외교관 카를로 로세티가 한국에서 7개월간 머물면서 남긴 사진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눈에 띈다. 한복에 갓을 쓴 남성들이 칠판을 바라보며 2차 방정식을 공부하는 모습이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수학교실에는 학생들도 갓을 쓰고 있다. 이 보다 앞선 1887년부터 이듬해까지 초대 주미전권공사를 지낸 박정양이 미국에서 활동한 사진이 최근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당연히 도포에 갓을 착용하고 있다. 130여년 전 '갓 쓴 외교관' 사진은 우리 공사관원들이 미국의 기관을 공식 방문한 가장 오래된 워싱턴 인증샷이다. 박정양은 청(淸)나라에서 벗어난 자주 외교를 꿈꿨던 최초의 주미공사였다. 청의 압력으로 귀국한 후에는 독립협회를 지원하기도 했다. 박정양을 수행했던 월남 이상재가 남긴 편지글에도 갓 쓰고 외교사절로 갔던 이들의 고군분투가 담겨있다.

지난해에는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들어섰다. 대리석으로 제작한 성상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조선 선비의 모습이다. 김대건은 1846년 25세의 나이로 순교한 최초의 한국인 사제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아시아 성인의 상을 세운 것은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처음이다. 김대건 신부가 세계의 성인이 되면서 '갓'도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날 서양인들의 '꼬레아'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게 '갓'과 무관하지 않았다. 한국의 갓에 주목한 최초의 유럽인은 놀랍게도 200년 전 유럽을 석권했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조선에서 가져온 그림을 보고 갓의 화려함과 위엄에 감탄했다고 한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도 갓을 쓴 조선인을 '의장을 갖춘 범선' '모자의 나라 사람들'이라며 사진과 기록으로 남겼다.

작은 키를 보완하면서 패션의 이미지까지 갖춘 예술성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사실 그럴만 했다. 갓은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의 전유물이었다. 갓은 신분의 상징이었고 비싼 명품이었다. 갓을 만드는데는 다양한 공정과 각별한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옛 선비들은 갓을 소중히 다뤘다. 선비는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갓을 썼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갓을 벗고 탕건 등을 썼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방안에서도 갓을 벗지 않았다. 갓을 쓰고는 뛰지도 않았다. 그래서 갓을 쓴 선비의 걸음걸이를 유장하다고 했다. 섬세하게 짜인 갓의 양태(챙)는 반짝이는 햇살을 반투명의 은은한 그림자로 걸러준다. 선비의 얼굴과 도포에 우아하고 세련된 기품과 한국적 미학을 드리우는 것이다. 선비가 추구했던 중용지도(中庸之道)의 형상화이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갓의 나라였다. 갓은 양반계급의 의관이었고 유교적 이상사회를 지향했던 선비문화의 상징이었다. 갓을 쓴다는 것은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는 것을 넘어 유교적 가치관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갓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나타날 만큼 역사상 유서깊은 모자이다. 수천 년간 이어진 우리의 상투 문화와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역사 드라마 등을 통해 친숙한 검은색 흑립(黑笠)은 조선 중기에 등장한 것이다.

세계 곳곳에 챙이 달린 모자는 많이 있었지만, 갓만큼 다채로운 복식문화를 꽃피운 것은 없었다. 갓은 가히 한국의 미를 대표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갓은 구한말 단발령으로 상투와 망건이 없어지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명품이자 조선의 자존이었던 갓은 망국의 상징으로 전락하며 쓸모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런 갓이 부활하고 있다. 한류를 타고 k복식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대중문화에서 갓이 화려한 장식과 다양한 컬러의 의복과 어울려 재현되면서 세계인이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군도'와 드라마 '킹덤'에서 세계인들은 조선시대의 모자인 '갓'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한국의 복식문화에 매료되었다. SNS의 각종 리뷰에서는 '팬시한 모자' '아름다운 모자'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또한 영어의 'God'과 발음이 같아 'Oh My Gat'이라는 역설적 언어유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머리에 쓰던 갓이 사라졌다고 마음 속의 갓마저 내팽개칠 수는 없다. 그것은 선비가 지향하던 고결한 정신세계와 내면의 품격마저 도외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22대 국회가 개원을 하고 국민이 수여한 최고 권위의 명품 갓을 쓴 선량들이 등원을 했다. 우리 국회가 의관을 정제한 선비가 출사(出仕)한 'Oh my Gat'의 전당이 아니라, 경향의 잡배가 준동하는 'Oh my God'의 시정(市井)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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