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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51>금관조복 차림의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화

미술사 연구자

이한철(1812-1893?)·유숙(1827-1873),
이한철(1812-1893?)·유숙(1827-1873), '이하응 초상(금관조복본)', 비단에 채색, 132.1×67.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정본(正本) 초상화 6점 중 '금관조복본(金冠朝服本)'은 왕의 아버지인 대원군의 신분과 잘 어울린다. 금관조복은 문무백관이 조정에 나아가 임금에게 하례를 올리는 조하(朝賀)를 비롯한 국가적 의식에서 입는 가장 특별한 예복이다. 동짓날이나 정월초하루 같은 주요 명절에, 각종 제사에, 왕의 즉위나 왕실인물의 탄생일 등의 경축행사 때 이렇게 입었다.

위의를 갖추는 옷차림이라 관에 이금(泥金)을 칠해 금관으로 부르지만 원래 이름은 양관(梁冠)이다. 이하응은 가운데의 금색 줄인 양(梁)이 5개인 오량관을 썼다. 품계에 따라 한 줄부터 최고 다섯줄까지 있었고 봉황을 비롯해 상서로운 무늬를 아로새겼다. 양관을 가로지르는 비녀에도 금을 입혀 도드라진 금빛에서 광채가 난다.

조복의 맨 위에 입는 옷은 붉은색 비단으로 만든 적초의다. 깃과 소맷부리 등에 짙은 색으로 굵게 선(縇)을 둘렀고, 이 가선의 끝을 다시 좁고 흰 선(線)으로 마감해 장식미와 함께 진중한 위엄을 줬다. 가슴께엔 각대를 둘렀고 넓은 소매 속의 맞잡은 손으로 상아홀을 들었다. 화면 오른쪽의 소맷자락 아래로 패옥(佩玉)의 끝 부분이 살짝 보인다. 조복의 여러 갖춤 중 옥 장신구인 패옥이 가장 인상적이다.

패옥은 말 그대로 패용하는 옥이다. 구슬 끈에 꿴 옥 조각들을 허리 좌우에 길게 늘어뜨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로 부딪쳐 잘가당잘가당 소리를 내게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몸가짐을 가지런하게 해주는 소리였다. 패옥은 정신을 집중시키고 경거망동을 제어하는 매개물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군자라면 반드시 옥을 몸에 찼다. '예기'에 "군자무고(君子無故) 옥불리신(玉不離身)", 곧 "군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옥을 몸에서 떼지 않는다"라고 했고, 공자도 상중(喪中) 일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옥을 찼다. 고대 중국의 패옥 관습이 조선에서 예복의 갖춤 중 하나로 보존된 것이다. 패옥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옷차림은 금관조복이지만 초상화의 양식은 조선 초기부터 왕명에 의해 제작돼 온 공신상을 따랐다. 전신상인 것, 손잡이가 동그랗게 말린 교의에 앉은 의좌상인 것, 등받이에 호피를 두른 것, 왼쪽 얼굴이 80% 정도 보이는 좌안8분면인 것, 족좌대 위에 발을 얹은 것 등이 그렇다. 바닥과 족좌대의 상판은 길상무늬를 짜 넣은 화문석이다. 화문석을 얼굴의 각도처럼 약간 사선으로 처리해 안정적인 공간감을 연출했고, 족좌대엔 '쌍희 희(囍)'자를 문양으로 넣었다.

이하응의 초상화 중 '금관조복본'은 유일하게 복본까지 제작돼 서울역사박물관에도 한 점이 소장돼있다. 금관조복은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형식미에 깊은 의미까지 담긴 옷이다. 조선왕조 의례의 품격은 어느 나라 못지않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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